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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1월은 또 한해를 시작하는 의미가 중심이다. 이런 맥락에서 '신년 연하장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새가 어떤 새일까?'라는 질문을 받는다면 어떨까? 아마도 망설임 없이 말할 수 있는 새가 학(鶴)일 것이다.

연하장에는 으레 두루미 한 쌍이 날아가거나, 새끼를 거느리고 넓은 장소에서 먹이 찾거나, 머리를 깃에 묻고는 잠을 자거나, 암수가 마주보며 목을 길게 빼어 허공을 향해 울거나 등이 눈에 익숙하게 비친다. 새해를 알리는 동물 가운데 왜 하필이면 학이 단골로 모델이 되었을까? 그 이유는 학이 가장 길상(吉祥) 혹은 상서(祥瑞)로운 조류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자 상서는 '복되고 좋은 것'의 의미를 담고 있다. 새해 벽두에 누가 두루미 그림을 싫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치매예방, 친화력, 게임 화투에서 확인된다. 화투는 1년 열두 달을 상징하여 각 달에 해당하는 그림이 그려져 있다. 그중 1월에는 학과 소나무가 그려졌다. 하필이면 새해가 시작되는 1월의 그림에 학과 소나무가 그려졌을까? 먼저 학과 소나무의 공통점부터 알고 나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둘은 십장생(十長生) 소속이다. 십장생은 죽지 않고 오래 산다는 열 가지를 일컫는 말이다. 열 개중에 두 가지를 1월에 함께 그렸다는 것은 1월이 중요한 달이며 동반상승을 부각시키는 효과를 극대화한 것이다.

그림을 살펴보면 두루미의 고개가 오른쪽으로 돌려 태양을 쳐다보는 그림을 확인할 수 있다. 학이 고개를 돌려 바라보고 있는 곳에는 붉은 태양이 위에 그려져 떠오르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림에서 학이 돌린 고개와 떠오르는 태양의 위치와 구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무심코 지나 칠 수 있지만 상당한 의미가 있다. 오른쪽은 동쪽을 시작을 나타낸다. 태양이 솟아오르는 동쪽과 같이 오른쪽은 처녀, 전진, 시작, 개척, 도전 등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두루미는 지극히 양(陽)의 새다. 태양 같은 붉은새 단조(丹鳥)라 부르는 이유이다. 태양 역시 양이다. 그 이름마저 태양(太陽)이다. 새해 1월의 달력에 학과 소나무를 함께 그린 숨겨진 의미는 학의 트럼팻같은 높은 소리의 울음과 소나무의 사시사철 푸름의 상생효과를 부각시킨 셈이다. 지혜로운 선조들은 두루미를 두고 '천년 학'이라 불렀다. 천년의 수명을 갖는 다는 상징적 의미이다. 병 없이 오래 살기를 바라는 무병장수 정서에서 탄생된 덕담이며 스토리텔링인 셈이다.  

화투 1월의 학과 소나무의 그림을 학골송자(鶴骨松姿)라 부른다. 이는 학의 모습과 소나무의 자태를 표현한 말이다. 굽히지 않는 의지 즉 불굴의지를 나타낸다.

신년 초에 쉽게 볼 수 있는 벽사진경 문구는 비단 글로서 표현되는 것이 아니다. 송학도(松鶴圖)는 벽사진경을 표현하는 대표적 그림이다. 소나무는 벽사수(?邪樹)며, 학은 진경조(進慶鳥)이다. 송학도의 소나무와 학은 자연에서 결코 함께 어울림이 없지만 인문학적으로는 십장생중 소나무와 학이 만나 어울렁 더울렁하여 좋은 것의 의미를 더한다. 학과 소나무의 만남은 출산민속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전개하면, 왼편으로 꼰 새끼 금줄에 청색의 솔잎과 붉은 색의 고추를 다는 민속 역시 십장생 송학도 소나무의 상록(常綠)과 학의 단정(丹頂)에서 비롯됐다. 엉뚱하게 솔잎은 여아(女兒), 고추는 남아(男兒)를 드러낸 것으로 알고 있음에 웃지 않을 수 없다.

만약 그렇다면 이란성 쌍둥이를 낳은 셈이다. 선조들의 지혜에서 전승된 문화를 후대에서 오해했기 때문이다. 금줄에 달려있는 소나무의 푸름과 두루미의 붉음은 출산속에서 중요시 여기는 산모와 아기의 건강을 염려한 금역의 장소를 알림과 동시에 벽사진경을 강조한 것이다. 새해는 새로운 한해를 시작하는 1월로부터 시작한다. 새해와 1월을 상징하는 새가 학이 새삼스럽지 않는 이유이다.

지난 24일, 태화강 동굴피아 분수광장에 한 쌍의 학이 두 날개를 활짝 펴고 날아들었다.
남구청에서 학성(鶴城·울산의 옛 지명 중 하나)의 정체성인 학의 조형물을 설치한 것이다. 울산에서 처음 설치된 학 조형물인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연말보다 연초 1월에 설치한 것도 설득력이 있다. 학은 여명(黎明)을 알리는 야금(野禽)이다. 넓은 습지의 어둠을 청아한 울음으로 밝히는 정확한 알람시계 같은 역할의 새다. 또한 이른 새벽 책상을 마주하고 낭낭한 음성으로 책을 읽는 선비중의 선비 조대(措大)선비이다. 학은 높이 날고, 오래 날고, 멀리 난다. 이런 연유로 새해의 새로 선정되어 전승되고 있다. 학은 습지성이 강한 종이며 자연성이 높고, 넓은 습지환경에서나 서식할 수 있는 대형 물새 종이다. '구고학명'이라는 사자성어가 이를 잘 대변하고 있다. 학은 야생에서 경계심이 강한 물새로 인식된 이유는 사람이 해친 트라우마(Trauma)를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학은 사람과 친숙한 새로 다정다감하며 사람을 잘 따른다. 가까이 다가와 '골골골' 혹은 '갸르릉' 거림은 좋다는 의미이며, '쉿쉿'하면 경고의 의미이다. 학을 사육하면서 쌓은 경험에서 알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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