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울산신문
  • 승인 2018.02.08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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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시골집 안방 벽엔 두레상이 걸려 있었다. 검은 칠을 입힌 상이 벽 한쪽을 커다랗게 차지했다. 식사시간 외에는 벽에 박은 대못에 다리를 접은 두레상을 걸어 고정시키고 방의 공간을 넓게 쓰는 것이었다.

 

계획을 세우기 보다는
판을 짜는게 안정감을 준다
투박하지만 만만한
방안에 걸려있던 판처럼


할머니는 두레상을 꼭 판이라고 명명했다. 끼니때가 되면 "판 패야지." 하며 두레상을 벗겨 내려 폈다.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일인용 밥상으로 각각 독상을 받았다. 할아버지, 아버지의 일인용 상은 어딘지 높여 부르는 듯한 '상'이라고 표현했다. 하지만 할머니와 어머니, 여동생과 내가 둘러앉아 먹는 여자들만의 두레상은 '판'이었다.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일인 상은 옻칠을 몇 겹이나 입혀 윤이 반들반들 나는, 정성들여 귀하게 만든 상이었다. 하지만 두레상은 '여자들'이 사용하는 것이어서인지 상의 윗면이나 상다리가 섬세한 조각도 없이 밋밋하게 만들어진 '판'이었다.

'판'이 들어간 데는 윤택하고 고상한 것보다 마구잡이로 드센 느낌이다. 장터의 장판, 굿판, 화투판, 노름판, 싸구려판, 막판 인생 등엔 삶에 떠밀려 괜히 바빠진 왁자함이 연상된다. 마뜩찮은 정치, 정치보다는 정치적 권력을 거머쥐려는 정치인들을 싸잡아 정치판이라고 일축해버린다. 이런저런 판에는 아무리 나부대어도 안겨 오지 않는 갈망과 채워지지 않는 갈증 같은 것이 진하게 감싸고 있다.

하지만 할아버지, 아버지의 일인용 상처럼 들여다보면 얼굴이 거울 같이 비치던 고급 칠기는 아니지만 두레상도 검정색을 두껍게 입힌 견고한 판이었다. 한지 바른 벽을 배경으로 노랗게 들기름 먹인 장판바닥 위에 펼쳐지는 판은 든든해 보였다.

덩그렇게 놓인 두레판을 대하면 손맛 좋은 할머니의 김이 나는 음식들이 기대되듯 장날을 기다려 장판에 갈 땐 원하는 바를 얻고자 하는 바람을 갖는다. 장꾼이든 장을 보러 가는 쪽 모두 나름의 이득을 강구하려는 기대감이 깃발처럼 나부낀다. 장판엔 생선비늘처럼 퍼덕이는 삶이 있다. 서로의 이익을 사이에 둔 흥정하고 획득해내어 좋아하는 활기가 넘친다. 싸구려 패딩코트와 명품을 본뜬 졸품 비닐가방을 팔아 늦은 점심으로 사먹는 뜨거운 국밥 한 그릇에도 훈훈한 만족감이 내비친다. 증명되지 않는 굿판마저 집안의 귀신 대접을 잘 하였으니 재수를 갖다 줄 거라는 소망으로 원기가 돈다. 퇴폐적이지만 노름판에도 한탕주의의 욕망이 변질된 활력소로 너울댄다.

모판, 장기판, 바둑판 등을 대함에도 심중이 고요하기만 하던가. 연두색으로 소복소복 자란 모판은 한 해 농사에 대한 농부의 마음을 설레게 하며 부지런을 떨게 한다. 선명하게 새겨진 장기판 앞에 앉으면 장기를 딱딱 놓아 상대편 영역을 점령하고 싶은 마음이 은근히 용솟음친다. 바둑판 또한 만만찮다. 우아한 손놀림으로 바둑판 속의 우주를 다스리고 싶은 내심이 뭉근히 차오른다.

복잡다단하고 애매한 세상에 명백함을 딱 부러지게 세우는 판이 있다. 삼판양승제다, 한마디 외치면 세 판의 경기 중 두 번의 승리로 승패의 확고부동함이 어리어 있다. 경기에 지고 난 뒤에 시시비비를 들이대며 너절하게 굴지 말라는 단호함도 서려 있다. 손바닥에 침을 퉤퉤 뱉으며 목에 힘줄을 세워 내지르는 판도 있다. 이판사판 판이다. 언뜻 막다른 지경에 이르러 세상살이의 끝이라는 것처럼 들리기도 하겠지만 마지막 죽을힘을 다해보겠다고 혼신의 힘을 쏟아 끌어 모은 용기도 팽배해 있는 것이다. 판은 허술한 삶이 기를 쓰고 용트림해보는 팍팍한 현장이다. 그럼에도 생에 대한 질펀한 욕구가 쓰러질 줄 모르는 희망으로 번뜩인다. 

시골집 안방의 두레상은 광채도 나지 않는 무광 칠을 입혀 짠 판이었지만 명절날에도 온 식구가 모이면 우리 집안 여인들이 맛있게 식사를 하며 일상을 이어나갔다. 가늠할 수 없고 밀린 잠 같던 삶에 고유하고 명징함이 숨어 있음을 시장기로 확인 받곤 하던 판이었다. 할머니와 어머니는 근면과 성실로 집안을 반듯하고 번영되게 꾸리며 더욱더 화평한 집안을 모색하였다.

안간힘으로 얽어매어 살아가는 것 같은 장판이며 싸구려판에도 엄숙하도록 염원하며 찾아다니는 판이 있다. 살판이다. 세상사 중에 살판난 일보다 더 좋은 게 있을까. 살판 하나 잡기 위해 두 눈 부릅뜨고 헤맨다.

새해도 벌써 첫 달을 보내고 2월도 며칠이 지났다. 언젠가부터 계획을 세우기보다 판을 짜는 게 훨씬 안정감이 들기 시작했다. 내게 있어 계획은 왠지 허세부터 섞여드는 것 같아 스스로 민망해지곤 한다. 할 일의 절차, 규모 따위의 밑그림을 그리며 포부도 구상해야 하나 싶으면 난데없는 자격지심이 고개를 쳐든다. 할머니는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일인 상을 행주질 자국도 용납하지 않았다. 맑은 유리 같이 닦아 조심스럽게 시렁 위에 올렸다. 계획은 그 고급 상 같이 성가신 데가 있다.

방안 벽에서 후딱 내려 사용하고 행주 자국이 좀 나 있어도 개의치 않던 두레판처럼 내게 맞는 만만한 판 한 판 짜노라면 안도감이 스며온다. 이 판이 아니다 싶으면 새판을 만들면 되려니 하는 여유도 따라 붙는다. 새해마다 혹은 때때로 원하는 판을 짜본다. 거창한 계획이 아니고 쉽게 다가갈 수 있어 외려 실천의 확률이 높다. 
저마다 소중하게 간직한 밑그림을 한 판 한 판 짜내어 살판난 세상을 만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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