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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간만에 울산에 반가운 뉴스 하나가 들려왔다. 다름 아닌 현대중공업 노사가 설 명절을 앞두고 2년간 끌어오던 임단협을 마무리했다. 현대중공업 노조가 지난 9일 2차 잠정안에 대한 조합원 찬반투표의 최종 가결을 선포하자 동구를 비롯한 울산시 모두가 환영일색이다. 일시금이 4,000억원 이상 풀리게 되면 그동안 개점휴업이던 지역 상권에 단비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장기간의 조선경기 침체로 울산 경제가 활력을 잃어버린 상황에서, 임단협 마저 2년이나 해를 넘기며 가뜩이나 어려운 지역 경제에 큰 부담을 준 게 사실이다. 일감절벽으로 인한 희망퇴직 등으로 근로자수가 줄며 동구의 인구는 자치구 출범 이래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으며, 상권 위축, 부동산 가격 하락 등이 뒤따랐다.  때문에 울산시와 동구, 상공회의소, 시민사회단체 등에서는 지난 2년간 임단협의 조기 타결을 한 목소리로 호소해 왔다.

현대중공업의 노사분규가 계속되는 동안 동구는 물론 울산 전체가 장기침체에 허덕였다. 조선소 근로자들이 하나둘씩 떠나면서 근처 원룸은 텅텅 비고, 인구는 19개월 연속 감소했다. 원룸촌을 돌아다니다 보면 '즉시 입주 가능'이라는 안내 전단을 여기저기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 지역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이 지역 원룸의 공실률은 60%에 달한다고 한다. 원룸 건물의 경매가도 한때 7억을 호가했지만, 현재 4억5,000만원 선으로 뚝 떨어졌다. 땅값도 떨어지고 있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기준 방어동의 지가는 전년 대비 -3.2%를 기록했다. 일산동은 -2.2%, 미포동과 동부동, 서부동은 -1.3% 하락하는 등 동구 대부분의 땅값이 떨어졌다. 울산시 전체가 이 기간 3.4% 상승한 것과 대비된다.

울산 동구는 주택 매매도 줄었다. 2014년 총 4,345건이었던 주택 매매 건수는 지난해 2,506건으로 급격히 감소했다. 동구의 부동산 시장이 한파를 겪는 것은 조선업체 구조조정에 따른 인구 감소가 결정적 원인으로 분석되고 있다. 실제로 2015년 이후 퇴직하거나 일자리를 잃은 현대중공업과 현대미포조선, 협력업체 근로자는 2만7,000여 명에 달한다. 근로자들이 일자리를 잃고 떠나면서 동구의 인구가 함께 줄어들었다. 이 모두가 현대중공업의 장기불황과 고질적인 노사분규가 빚어낸 참상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임단협을 마무리하게 된 것을 울산시민과 함께 환영한다.

지금 조선업 경영환경을 보라. 조선해운시황의 회복이 늦어지고 있는 가운데, 일감부족 심화와 함께 원자재가격 인상, 환율 하락 등이 겹치며 여전히 불투명하기만 하다. 이미 국가별 수주잔량에서 1위는 중국에 내준지 오래다. 심지어 최근 우리의 전유물이라 할 수 있는 초대형 컨테이너선을 중국에 뺏긴데 이어 해양플랜트마저 가격 경쟁력을 앞세운 싱가포르 경쟁사에 연이어 고배를 마시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 때문에 이번 임단협 타결은 단순히 현대중공업만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 조선의 재도약을 위한 전기(轉機)를 마련한 것이라고 믿기에 여간 다행스런 일이 아니다. 이제 대립관계에서 벗어나 원가 경쟁력 회복을 통한 수주경쟁력 제고에 노사가 손을 맞잡아야 한다. 이를 통해 '조선강국'의 실지(失地)를 반드시 회복해 주길 바란다.

지난 수년간 극심한 조선경기 침체로 현대중공업도 끝 모를 부진에 시달렸다. 2016년 수주는 역대 최저 수준에 머물렀고 지난해 매출은 전년의 절반 수준까지 떨어졌다. 그나마 비핵심 사업 정리와 각종 자산 매각은 물론, 인력 구조조정까지 실시하는 등 뼈를 깎는 자구노력을 쏟은 덕분에 다른 조선업체에 비해 비교적 상황이 양호한 편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2016년 수주 부진에 따른 일감 부족 현상이 지난해 하반기부터 본격적으로 나타나며 2017년 4분기에 다시 적자를 기록했고, 올해는 큰 폭의 매출감소와 함께 실적 악화가 우려된다. 이처럼 초유의 위기 속에 내부 경쟁력 강화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히 요구되는 상황에도 불구하고, 그간 임단협을 둘러싼 노사 간의 갈등이 지속되며 커다란 사회적 이슈가 되기도 했다. 위기극복에 노사가 한마음으로 똘똘 뭉쳐도 모자랄 판에 장기간의 파업과 농성이 잇따르며 이미지 추락에 따른 고객이탈 등 직간접적인 피해에 대한 우려가 컸던 것 또한 사실이다.

무엇보다 이번 임단협 마무리는 현대중공업 노사가 거듭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현대중공업은 19년 연속 무분규라는 자랑스러운 노사문화 전통을 갖고 있다. 또한 한적한 어촌마을에서 세계 1위의 자랑스러운 조선회사를 일궈낸 저력을 지니고 있다. 임직원이 다시 힘을 모아 위기극복에 매진한다면 머지않아 지금의 위기 상황을 이겨내고 새로운 도약을 시작할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마침 세계 조선 경기가 긴 부진의 터널에서 벗어나 다시 살아날 조짐을 보인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린다. 모처럼 찾아온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면 기술과 품질, 생산성 등 모든 측면에서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 비 온 뒤에 땅이 굳듯, 현대중공업 노사는 한층 성숙된 노사 신뢰와 화합을 바탕으로 수주 대박, 실적 개선 같은 즐거운 소식만 전해오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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