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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권력기관 개혁안 발표 이래 여론이 뜨겁다. 이미 개혁 대상이 된지 오래인 검찰은 한결같이 '경찰자질론' '경찰비대화'로 반론하지만, 끊이지 않는 사건사고로 상황이 녹록지 않다. 언론에선 전문가들이 아전인수식 해석으로 수사구조 개혁에 대해 설명하지만 쉽게 이해하긴 어렵다. 자칫 수사구조 개혁 논의 과정에서 국민은 배제된 채, 검·경 조직 논리에 맡겨져 방치되는 건 아닌지 우려된다. 도대체 평범한 시민에게 수사구조 개혁은 어떤 의미일까.

동네에서 치킨집을 운영하는 시민 A는 납품업체 B로부터 물건을 받기로 하고 돈을 지불했으나, B는 대금만 받은 채 연락이 두절됐다. A는 사기를 당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관할경찰서 경제팀에 사건을 접수한다. 그날 저녁, 상심해있던 A는 평상시 자신의 가게에서 행패를 부리던 동네조폭 C가 그날따라 더욱 난동을 피우자 결국 그를 신고한다. 현장은 출동한 경찰관에 의해 정리되고 사건은 관할경찰서 형사팀으로 인계된다.

수사구조 개혁이 되면 이러한 과정은 어떻게 바뀔까? 바뀌는 건 하나도 없다. 지금처럼 경찰은 사건을 수사하고 검찰에 송치한다. A가 만약 경찰이 못 미더워 검찰청에 사건을 접수해도, 그 사건은 그대로 피의자 주소를 관할하는 경찰서로 배정된다. 간혹, 검찰이 직접 수사하는 경우도 있지만, 일반 시민들이 접하는 사건의 대다수는 경찰이 수사한다. 현재 대한민국에서 형사사건의 98%는 A의 사례와 같이 진행되고 있다.

바뀌는 것이 없는데 왜 대통령이 나서서 '수사-기소 분리'를 공약했을까? 그것은 바로 악마가 숨어있는 '2%의 직접수사' 때문이다. 검찰이 98%의 수사를 직접 하지 않는 이유는 간단하다. 그들과 아무런 관계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만약 A가 그들에게 중요한 사람이라면 어떻게 될까? 위 A 사례에서 등장하는 경찰서는 검찰청으로 바뀌어 검사가 사건을 수사한다. 검찰은 언제든 원하면 직접 수사할 수 있고, 영장 청구할 수 있으며, 최종적으로 피의자를 법정에 세울지 여부를 결정한다. 담당 검사에게 A가 중요한지, B·C가 중요한지에 따라 결과가 어떻게 달라질지 충분히 예측 가능하다. 안타깝게도 '2%의 직접수사'를 견제할 기관은 없다.

검찰이 주장하는 '경찰자질론'은 어떤 의미일까. 경찰은 도저히 자질이 부족하니 수사권을 줄 수 없다는 논리인데, 국민 자질을 언급하며 민주주의는 시기상조라 주장했던 많은 독재자가 오버랩 되는 건 왜일까. 정말 대한민국 경찰이 A의 억울함을 해소하지 못할 정도로 역량이 부족한가. 만일 일부 기업범죄, 금융범죄 등 특수수사 분야에 대한 역량이 걱정된다면, 검찰이 보유한 수사 인프라를 경찰에 편입하면 될 일이다.

'경찰비대화'도 마찬가지다. A의 사례에서 보듯, 국민이 접하는 대다수의 사건은 이미 경찰이 수사하고 있다. 수사구조 개혁이 되면, 단지 '2%의 직접수사'가 증발할 뿐이다. 물론 민주주의 개혁에 종점은 없기에, 경찰은 자치경찰제 도입, 행정-수사경찰 분리 등 시대적 요구에 발맞추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이를 선결하고자 '검찰독점화'를 방치할 순 없는 노릇이다.

경찰이 수사를 하고 싶어도 검찰이 막을 수 있고, 검찰이 기소하지 않으면 법원은 판결할 수 없다. 형사소송법상 검사는 경찰서장 이상의 계급을 지휘하고, 재판 중엔 당사자, 형 선고 후엔 집행자 역할을 한다. 이런 막강한 힘을 토대로 그들은 행정·입법·사법부 내 주요 보직 곳곳에서 조직 논리를 대변하고 있다. 그 폐해의 심각성을 우리는 비싼 수업료를 지불하고 경험했다.

역사적으로 형사법은 국가가 임의 발동하는 형벌권을 견제하는 방향으로 발전해왔다. 그 이론의 기초엔 형사사법체제 속 수사관, 기소관, 법관의 건전한 긴장관계가 필수적이다. 우리 모두에게 묻고 싶다. 검사들이 자부하는 '수사 역량'과 '인권 수호 의식'이 사회를 더 나아지게 했는지, 아니면 또 하나의 특권층이 신분제를 부활시켜 민주주의를 위협했는지. 무엇이 시민 A를 위하는 길인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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