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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년 동안 함께 일해 오다가 이제 다른 학교로 가게 되는 절친한 동료와 마지막 밥 한 끼를 한 다음날, 졸업생 한명이 찾아왔다. 헤어짐이 아쉬운 때라 그런지 더 반갑고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자동차 1종 대형면허증을 자랑하며 해맑게 웃는 얼굴이 더없이 편안해 보였다. 대학생활은 과제 때문에 두세 시간만 잘 때조차도 고등학교에 있을 때만큼 힘들지 않다고 했다. 고등학생이었을 때는 과목별 등수 1등이라도 올려보려고 필사적으로 매달렸는데 대학 갔더니 등수와 나이가 뒤죽박죽이 되더란다. 고작 1년을 더 일찍 졸업하지 못해 좌절하던 자신에게로 돌아가서 그런 건 별것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다고 했다.

졸업생들이 와서 들려주는 '그때는 몰랐던 이야기들'이 있다. 과학특성화 대학을 목표로 삼아 3년 동안 책상 앞에 붙여 뒀는데 돌이켜 보니 그건 자신의 꿈이 아니라 친구들의 꿈이었고 자신도 당연히 그래야 된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런데 막상 종합대학에 입학해서 겪어보니 기대 이상으로 그곳의 분위기와 교육과정이 자신의 적성에 잘 맞더란다. 고등학교 다닐 때는 지긋지긋해서 하루라도 빨리 떠나고 싶었는데 문득 이유도 없이 다시 오고 싶어지게 될 줄 몰랐고, 대학가면 곧 여자 친구가 생길 것 같았던 친구가 2년 넘게 혼자만 혼자라는 것과, 혼자 해외 배낭여행을 떠나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는 등의 예상했던 미래가 그대로만 흘러가지 않더라는 이야기들이 많다.

삶이 가진 이런 의외성 때문에 새로운 시작과 함께 맞이하게 되는 새로운 환경과 사람들, 그리고 일이 더욱 의미 있고 기대되기 마련이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이런 의외성을 예측할 수 있다면 어떨까하는 생각이 든다. 과거에 졸업생들이 몰랐던 것들을 지금 재학생들이 안다면 고민과 불안감이 덜어질까? 졸업생들이 느꼈던 것과 똑같은 등수에 대한 스트레스와 불완전한 예측에 의한 불안감으로 힘들어 하는 재학생들에게 선배들의 이야기가 어떻게 가서 닿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지난 선후배간의 만남 자리에서 재학생들의 주된 관심은 원하는 대학에 진학하는 방법과 멋진 대학생활에 관한 것이었다. 등수가 크게 중요하지 않다든지, 대학생활이 생각과는 다르다는 등의 말들은 이미 가진 자의 여유 정도로 받아들였다. 교사인 나로서도 등수 1등은 아무것도 아니라든지, 한 해 늦게 가는 것은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등의 주장은 할 수 없다. 나야말로 소수 자리의 점수 차이로 임용시험에 낙방하고, 다음 해 시험까지 보낸 1년을 어느 다른 해 보다 힘들고 길게 느껴본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눈앞에 보이는 산의 꼭대기를 향해 거친 숨을 몰아쉬며 힘겹게 올랐는데 막상 그곳에 가고 보니 머릿속에 그리던 것과 다른 모습일 때가 있다. 또 정상으로 이어진 다른 갈림길들은 오르고 난 후에야 눈에 들어오기 마련이다. 하지만 오르는 동안 "정상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라는 말 대신 "정상에 가 봐야 볼 것 없습니다"라든지, "더 쉬운 길을 두고 이쪽으로 왔군요" 라는 말을 해 주는 사람은 없다. 우리가 산을 오르는 것은 정상을 오르는 동안의 휘어지고 가파른 길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학생들에게 나는 모든 하루(Every Single Day)를 의미 있고 가치 있게 만들라고 말한다. 하루에 한번 이상 발표하고, 자신의 생각과 의견을 내고,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하라고 당부한다. 그렇게 하면 더 즐겁게 배우고 익힐 수 있고, 자기 주도적이고 가치 있는 삶을 완성해 가게 된다. 오늘은 목표를 위해 희생되는 많은 날들 중 하나가 아닌 그 목표로 가는 과정에 있는 소중한 하루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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