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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시가 현재 추진하고 있는 산재 모(母)병원이 사실상 표류하고 있다. 시는 예비타당성 조사 결과를 기다리면서, 실현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하지만 관계 기관을 통해 감지되는 분위기는 그리 긍정적이지 않다. 예타 결과를 쥐고 있는 기획재정부는 결과 발표를 차일피일 미루고, 직접적으로 사업 추진을 주도한 고용노동부는 손을 놓았다. 여기에다 문재인 정부의 대선 공약인 '혁신형 공공병원' 약속을 놓고도 여·야는 정치 공방에 '동상이몽'하고 있는 상황이다. 울산 산재 모병원은 과연 실현 가능성이 있을까?

 3년전 KDI 자문 부정적 의견 제시
 사업 추진 주도 고용부도 TF팀 해체
 기재부 "6월 이전 건립 여부 결정"
 공공병원 설립 문제도 아전인수 해석

# "환자 절반 이상이 수도권서 발생"
울산 산재 모병원 설립과 관련해 지난 2014년 연구 용역을 맡은 KDI(한국개발연구원)는 당시 산재 관련 국내 저명 전문가인 한림대 주영수 교수에게 자문을 요청했다.
 울산에 산재 모병원을 짓는 것이 정책적으로 타당한 지에 대한 자문을 구한 것이다.
 본보가 주 교수와 전화 취재를 한 결과, 그는 당시 자신이 KDI에 보낸 의견을 구체적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울산에 산재 모병원을 짓는 것은 '넌센스'나 다름없다"고 판단했다는 그는 "부정적인 의견을 당시 KDI에 보냈고, 이에 대해 그쪽도 사실상 안되는 것으로 내부 결론 지은 것으로 기억한다"고 했다.


 구체적인 그의 의견은 울산이 위치적으로 맞지 않다는 것이다.
 그는 "산재 모병원은 전국 산재병원의 센터 역할을 하는 병원으로 다수의 산재 환자를 책임지는 임상적 능력을 담당하는 곳"이라며 "전국 산재 환자의 절반 이상이 수도권에서 발생하고, 울산은 5% 미만인데 산재 모병원의 위치로 울산은 적절하지 않다"고 설명했다.
 또 "실제적으로 산재 모병원의 위치는 수도권이 적절하고, 예전 검토 의견으로는 대전 정도가 최남단선으로 본다"고 덧붙였다.
 이와 함께 "위치적 문제 뿐만 아니라 산재 모병원의 특성을 배제한 사업 추진 방향 등에 대해서도 종합적으로 부정적인 의견을 냈고 KDI쪽에서도 대체로 수긍하는 분위기였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이 같은 주 교수의 자문을 건네 받은 KDI는 이를 토대로 보고서를 만들었고, 이를 기재부에 보고했지만 결과 발표는 3년 째 미뤄지고 있다.
 KDI 관계자는 "주 교수를 포함한 여러 전문가의 종합적 자문을 토대로 보고서를 만들었고, 이를 기재부에 보고한 상황"이라며 "지금까지 진행되는 절차에 따라 필요한 의견은 충분히 냈지만 울산시의 계속된 의견 제기로 필요한 부분은 반영하고 또 설명하고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라서 아직 결론이 나지 않은 것"이라고 현 상황을 에둘러 설명했다.
 
# 최종 예타 결과 발표 시기 두고도 온도차
전문가 자문단이나 KDI와 마찬가지로 사실상 울산시의 건의로 이 사업을 주도한 고용노동부 마저 지금은 손을 놓고 있는 상황이다.
 사업 추진 당시 근로복지공단과 함께 TF팀을 구성하고 예타 조사를 의뢰한 고용노동부는 지난 2016년 7월 TF팀을 해체했다.
 사실상 울산 산재 모병원 설립의 현실성이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근로복지공단 한 관계자는 "정치권의 입김으로 울산에 산재 모병원을 짓자는 의견이 나왔고, TF팀을 꾸려 준비를 했지만 KDI는 전문가 의견을 토대로 부정적 내부 결정을 내렸고, 더 이상 할일이 없어 TF팀을 해체했다"며 "울산에는 재활센터 건립이 더 현실 가능성이 있지 않느냐는 내부 의견도 있었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상황을 종합해보면 KDI와 전문 자문단은 울산 산재 모병원 설립에 사실상 부정적 의견을 이미 냈고, 고용노동부와 근로복지공단 마저 손을 놓은 상황에서 울산시만 사업 추진에 목을 매고 있는 셈이다.
 이 같은 분위기는 최종 예타 결과 발표 시점에 대한 기재부와 울산시의 입장 차이에서도 드러나고 있다.
 기재부 관계자는 현재까지 진행된 상황을 묻는 본보와의 전화 통화에서 "울산시가 변경된 사업 계획을 제출하고 이에 대한 추가적 검토 과정에서 시간이 걸리고 있는 것"이라며 "남은 절차는 최종 점검회의를 열어 결론을 낸 뒤 이를 발표하는 것인데, 현재 점검회의 일정에 대한 조율을 하고 있고, 조만간(지방선거 이전) 결정 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반면에 울산시 관계자는 "지난해 6월 기재부·KDI와 함께 중간 비공개 점검회의를 가졌지만 최종 점검 회의에 대한 일정 조율에 대해서는 연락을 받지 못했다"며 "울산시가 비용편익을 분석한 최종 제안을 지난해 말 기재부에 보냈고 이에 대한 검토 결과를 기다리는 중으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 울산시, 애매한 이중적 태도
울산 산재 모병원이 표류하고 있는 가운데 여·야 정치권은 이른바 대선 공약인 '혁신형 공공병원 설립' 약속을 놓고 '동상이몽'이다.
 자유한국당은 최근 기자회견을 갖고 "문재인 정부가 약속한 혁신형 공공병원이 곧 울산 산재 모병원 건립"이라는 논리를 폈다.
 공공병원 건립 약속을 지금까지 추진해 온 산재 모병원에 대입하면 다 해결될 수 있다는 셈법이다.
 민주당 측이 새롭게 주장하고 있는 국립병원 건립은 아예 불가능하다는 전제도 깔았다. 


 민주당 역시 맞대응 중이다.
 "산재 모병원과 혁신형 공공병원은 엄연히 다른 사업"이라며 "산재 모병원을 빨리 포기하고 대선 공약에 매진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이 같은 논리에 울산시를 끌어들이는 형국이다.
 민주당 관계자는 "지난해 11월 9일 당시 임동호 민주당 울산시당 위원장과 김기현 시장이 만난 간담회 자리에서 김 시장은 "더 이상 산재 모병원을 추진하지 않겠다. 대신 대선 공약인 '혁신형 공공병원' 추진에 울산시가 적극 협조하겠다"는 발언을 했다"며 "더 이상 실현 가능성이 없는 산재 모병원에 연연하지 말고 혁신형 공공병원 설립에 힘을 모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 같은 정치 공방에 현재까지도 산재 모병원을 고집하고 있는 울산시의 스탠스는 뜻밖에 이중적이다.
 울산시는 최근 언론에 공개한 '국립병원 관련 우리 시 의견'이라는 내부 문건에서 "대통령 공약인 혁신형 공공병원 건립은 현재 추진 중인 산재 모병원과 일맥상통"한다고 전제하고도, "산재 모병원이 아니더라도 지방의료원이 아닌 국립 공공병원의 조속한 설립을 요망한다"는 애매한 입장을 밝혔다.  
 김기현 울산시장도 지난 1월 2일 가진 기자 간담회에서 "꼭 산재 모병원이 아니어도 된다. 국립 병원이면 혁신형이든 산재 모병원이든 이름은 중요하지 않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김지혁기자 uskjh@ulsanpres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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