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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여자 마네킹

강봉덕

때론, 패션도 종교가 된다
묵언수행 하는 그 여자
침묵으로 한 종파를 완성시킨다
그 종파의 교리는 계절을 앞질러 가는 것
한 계절 똑같은 웃음이나 빛깔
표정을 만드는 것이다
새로운 계절에 이르기 전
그 여자의 설법은 고요하고 은밀하다
이 거리에 들어온 사람들은 주술에 걸리듯
그 여자의 짝퉁이 되기 시작한다
포교는 항상 중심에서 변방으로 퍼진다
짧은 치마처럼 간단명료한 표정
미끈한 팔다리로 사람들을 전염시키며
파격적인 노출도 교리가 된다
패션이 변할 때 마다
사람들은 새로운 표정을 만들며 순종적으로 바뀐다
경기불황이 몰려오면
그녀는 더 화려하고 빠르게 변신한다
사라진 추종자를 다시 불러들인다는 것은
침침한 눈으로 바늘귀에 실 꿰듯 힘겨운 일이지만
손바닥 뒤집듯 가벼울 수 있다는 듯
투명한 벽 앞으로 모여드는 사람들
그 여자, 화려한 변신을 시작한다

△강봉덕 시인: 경북 상주출생, '동리목월' 신인상, '전북도민일보' 신춘문예 등단, 울산문인협회 회원, 시작나무 동인.
 

한영채 시인
한영채 시인

곧 봄이다. 봄은 패션이다. 너도나도 밖으로 나가는 횟수가 더 많아질 것이다. 옷장을 열고 이 옷 저 옷을 만지다 밖으로 나간다. 마네킹이 입은 옷에 고급스러운 눈길이 간다. 마네킹이 입은 옷은 모두가 멋지다. 내가 고른 옷도 마네킹이 입은 옷이다. 옷을 입어 본 현실감은 곧 집에서 느낀다. 거울 앞에서 앞으로 보고 뒤로 봐도 깜빡 속은 느낌.
울산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강봉덕 시인이 바라본 마네킹은 어떤 마네킹이었을까. 화려한 변신은 그 여자, 마네킹으로부터 시작이다. 옷 가게엔 밤낮을 지키는 마네킹이 주인이다. 마네킹이 입은 옷은 계절을 앞선다. 유행을 낳기도 하는 패션은 종교처럼 멋을 낸다. '멋있다'는 종교를 가질 만하다. 말 많은 여자도 그 앞에선 말이 없어지는 묵언수행 하는 여자, 지나가는 사람들은 모두가 색깔 모양을 쳐다보며 종파가 된다. 가끔 나도 미끈한 팔 다리 저 가늘게 개미허리처럼 되어 봤으면 할 때도 있다. 곧 마네킹이 입은 옷이 부러워질 계절이 온다.


유행을 따를 때가 있었다. 가끔 힘든 스트레스가 오면 백화점으로 뛰어 갈 때도 있다. 그땐 영락없이 그 여자 마네킹의 레이더에 잡힌다. 그 여자는 카드를 종용한다. 값비싼 품질에 도도하게 카드를 긋고 5분간 쓴 웃음을 짓는 그 때부터 낭패다. 주부들은 거금 카드 값이 끝날 때까지 반찬 수를 줄인다든가 허리끈을 졸라매야 한다. 그 여자 마네킹의 위력은 대단하다. 가까이 선물 받을 때 마네킹은 한층 도도해 보인다. 도도한 그 여자의 옷을 입을 때도 가끔 있었지만, 지금은 그 여자의 유혹에서 벗어난지 오래다. 자연이 주는 그대로 문향이 흐르는 모습, 참이 되어가는 것으로 즐긴다. 올 봄 강봉덕 시인의 그 여자 마네킹이 입은 종교 같은 유혹에 옷 한 벌 장만해 볼까나. 한영채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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