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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울산의 두 젊은이도 희생
2010년 벌어진 천안함 폭침 사건으로 울산의 두 젊은 장병이 희생됐다. 마지막까지 살아 돌아오길 간절하게 기원했던 두 사람의 주검이 확인된 날 이들의 모교에서는 후배들의 추모식이 열렸다. 고 손수민 하사. 1985년 2월20일 울산에서 태어나 지난 2002년 무룡고등학교를 졸업한 손 하사는 대구 계명대에 진학한 뒤 2005년 해군에 입대했다. 바다가 좋아 해군 부사관 207기 통기하사로 임관한 그는 천안함 통기장으로 부임했고 투철한 군인정신이 몸에 배인 해군이었다. 울산에 할머니와 부모님, 여동생을 남겨둔 채 전사한 손 하사의 못다 핀 젊음을 눈물로 보내는 후배들의 흐느낌이 아직도 생생하다. 또 한명의 울산 출신 장병 신선준 중사는 굳게 다문 영정 속 입술만큼 다부진 청년이었다. 1981년 8월24일 울산에서 태어나 울산공고를 졸업한 신 중사는 지난 2001년 11월 해군 수병 465기로 입대해 충남함, 청해진함, 참수리호 등을 거친 바다 사나이였다. 수병들의 큰 형 같은 존재였던 신 중사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해군의 꿈을 가졌고 정자 바다를 유난히 좋아해 친구들과 무시로 바다를 찾았다고 한다.

 

천안함 폭침의 주역 김영철
그의 방남으로 분열하는 여론
전쟁 피할 수 있다면
모든 노력 강구해야하지만
선 넘으면 반드시 문제생겨

 

# 천안함 유가족 서울서 규탄시위
울산에 살고 있는 고 손수민 하사의 부모가 지난 주말 광화문 광장을 찾았다. 북한이 평창 겨울올림픽 폐막식에 천안함 사건의 배후로 알려진 김영철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을 보낸다는 소식을 들은 직후다. 손 하사의 어머니는 "김영철을 입국시킨다는 것은 우리 유족들에 아픔을 더 주는 것이다. 왜 이런 평화올림픽 잔치에 그 사람이 와야 하나. 김영철이 주범이라는 확신을 못 해 입국시킨다는 정부의 입장을 이해할 수 없다"며 울분을 토했다. 세월호 유가족들이 오랜 시간 농성을 해온 광화문 이순신 동상 앞에 천안함 46용사 유족회 유가족 60여명이 모였다. 모두 아들과 동생, 남편을 잃은 이들이다. 이들은 김영철 방남을 수용한 정부를 규탄했다. 성명에서 이들은 김영철에 대해 "2010년 당시 정찰총국으로서 3월 26일 천안함을 폭침해 승조원 46명을 숨지게 하고 연평도 포격 도발을 진두지휘한 장본인"이라며 이를 수용한 정부를 규탄했다.

# 이념의 경계서 실존하는 벽으로
한반도는 서해 NLL부터 동해 어로한계선까지 보이는 선과 보이지 않는 선이 존재한다.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어떤 이도 이 선을 넘지 못한다. 경계다. 처음은 출입의 경계였지만 점차 이념의 경계가 됐고 이제 실존하는 벽으로 굳어졌다. 경계에서는 언제나 많은 일들이 벌어진다. 평화가 새처럼 날아다니는 지역에서는 국경사무소가 허름하게 자리하고 있지만 분쟁지역은 살벌하다. 바로 그 경계가 가장 긴장감을 더해주는 곳이 한반도의 허리다. 지금 이 곳에서 또다른 긴장이 흐르고 있다. 지난 2010년 봄날, 악몽처럼 꾸었던 천안함 폭침 사건이 변신 중이다.

김정은은 평창올림픽을 한미동맹 시험대로 몰아가는데 혈안이 됐다, 국제사회가 숱한 논의와 토론으로 만들어 놓은 대북제재를 통지문 한장에 무력화 시키고 제재인물들을 하나씩 대표단에 올려 도로와 바다와 하늘로 내려보냈다. 그 끝판왕이 천안함 폭침의 주역으로 알려진 김영철이다. 북에서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의 직함을 가진 그는 김정일 시대의 대남 돌격대장이었다. 그를 올림픽 폐막식 대표로 내려보낸 김정은은 남쪽을 분열시키는 올림픽 공작이 예상보다 반향이 커지는데 만족하며 마스트베이션을 즐기고 있을지도 모른다. 실시간으로 중계하는 남쪽 방송들의 통일대교 밤샘농성 상황이나 천안함 유족들의 청와대 항의서한 전달을 안주삼아서 말이다.


김영철을 단장으로 한 북한 고위급대표단의 2박3일간의 방남은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그가 천안함의 폭침 당사자라는 점은 이미 상당부분 알려진 사실이다. 과거 정부, 정확하게 말해서 이명박 박근혜 정부에서는 천안함 폭침을 북한 정찰총국의 소행으로 판단했다. 당시 정찰총국장이 김영철이다. 폭침 두 달 뒤 국방부가 "북한의 정찰총국이 주도했다는 명확한 결론을 얻지 못했지만 과거 아웅산 테러, 대한항공 폭파 전례로 볼 때 정찰총국일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고 했다. 같은 해 11월 북한의 연평도 포격 사건으로 민간인 2명과 해군 장병 2명이 사망한 다음 날엔 김태영 국방부 장관이 국회 국방위에서 "김영철이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의 주범"이라고 말한 일도 있다.

# 사태 당사자서 연관성 확인 불가로
세상이 변했다. 과거 정권은 적폐정권이 됐고 그 수장인 박근혜는 독방에 갇혔고 이명박은 곧 독방에 갈 짐을 싸야 할 처지다. 수장이 적폐가 되니 천안함 폭침의 주적도 변한다. 문재인 정부에선 "김영철로 확정할 수 없다"는 기조다. 통일부는 "북한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인물, 어떤 기관이 공격을 주도했다고 특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국가정보원도 같은 날 "김영철과 천안함 폭침의 직접적 연관성을 확인할 수 없다"는 입장을 전했고 청와대도 엄호했다.

북한 사정에 밝은 이들은 천안함과 연평도로 이어진 2010년의 서해 도발 사건은 김정일의 치밀한 시나리오로 벌어진 일이라고 보고 있다. 아무런 영웅담이 없는 배불뚝이 아들 김정은에게 권력을 넘기기 위해 무리한 도발을 감행했고 그 때마다 김정은의 부대시찰과 격려전화를 연출했다. 그 앞잡이가 김영철이었고 과장과 분칠을 더 화려하게 해나갔다. 연평도 폭격을 퍼부은 북한정권은 며칠이 지난 뒤 "연평도 포격이 정밀조준 타격이었으며 남측에 대승을 거두었다"며 떠벌렸다. 김정은은 포격 직후 해당 부대장에게 전화를 걸어 치하했다. 무고한 민간인 마을을 포격해 잿더미로 만들고 양민을 학살해 놓고 승전축배를 드는 것은 뭐 별 놀랄 일도 아니었다. 북한 정권이 경계지대를 공포로 몰아가는 이유는 간단하다. 공포의 주도권은 자신들이 갖고 있고 이를 통해 남한내 존재하는 햇볕논리에 힘을 실어 국제사회의 제재를 무력화 하겠다는 의도다.

# 북에 이용당하는 사실 잊으면 안돼
지금 문제가 되는 것은 천안함 공격의 주역을 웃으면 맞을 수는 없다는 여론이다. 천안함을 공격한 잠수정은 북한 정찰총국 관할의 침투용이었다. 김영철의 통제권 아래에 있었다고 볼 수 있다. 당시 외교안보 고위 당국자는 "천안함에 사용된 모든 자산은 기본적으로 정찰총국이 지휘하는 것들이었다. 그래서 김영철로 특정한 것이고 미국도 같은 판단을 했다"고 말했다. 물론 지금 한반도 상황은 천안함 때와 다르다. 김정은의 핵개발 시나리오는 한반도를 어느 때보다 전쟁의 위험성이 높은 상황으로 만들어놨다. 일부 학자나 외교전문가들은 전쟁을 피할 수 있다면 모든 노력을 강구해야 한다는 취지로 "김여정·김영남도 맞이한 상황에서 김영철을 반대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이야기 한다. 동의할 수 있다. 적어도 우리 정부가 김정은의 의도를 모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세계인의 축제인 올림픽을 여는 입장에서 북한의 의도를 알지만 수용할 수 밖에 없을 것이라는 합리적 의사결정 과정을 폄하할 생각은 없다.

# 올림픽까지라는 명확한 선 그어야
문제는 우리의 명확한 입장이다. 포 떼고 차 뗀 마당에 졸개 더 떼주는게 무슨 대수냐마는 문제는 이용당한다는 사실조차 망각하면 곤란하다는 점이다. 김정은은 평창을 충분히 이용했다. 임신한 여동생을 비행기에 태우는 무리수를 써가며 돌격대장 김영철을 두발로 서울에 보냈다. 김정은이 어떤 놈을 보낸다 해도 아니, 이놈저놈 다 받아줘도 괜찮다. 올림픽 손님으로 온다면 딱 그만큼의 절차면 된다. 선을 넘으면 문제가 생기기 마련이다. 경계는 그냥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지우개 따위로 막 지워버린다고 경계가 없어진다는 착각은 곤란하다. 경계를 인식하는 모든 이들이 지우개 사용을 동의하는 사회적 합의와 그에 걸맞은 절차가 필요한 법이다. 그래서 김여정부터 김영철까지 잇단 방남은 도발의 징후만 노리는 세력과 맞선 땅에서 올림픽을 여는 담보 정도이면 그만이다. 담보의 시한은 올림픽이라고 그 선만 명확하게 그어주면 된다는 이야기다. 문재인 정부가 그 선을 넘지 않길 간곡히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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