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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난히 추웠던 겨울을 달래듯이 따스한 봄바람이 불어오는 3월이다. 3월은 시작의 계절이다. 새 학기가 시작되어 아이들의 마음을 흔들고, 여름을 지나 가을에 맺을 과실의 시작을 알리는 새순이 돋아나 농부의 마음을 흔든다. 

그 3월의 첫날은 우리 근대 민족주의 운동의 시작을 알리는 3·1 만세운동 기념일이다. 3·1 만세운동 기념일은 조국의 광복을 위하여 일신의 안위를 돌보지 않고 목숨을 바치신 순국선열들의 애국정신을 기리는 날이다. 2018년은 3·1 만세운동 이후 99주년이 되는 해이다. 올해도 어김없이 과거 애국선열들이 자주독립의 의지를 세계에 알리기 위해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던 그날의 목소리가 전국에 메아리로 퍼진 그날이 돌아온 것이다.

1919년 3월 1일은 뜨거운 날이다. 99년 전 우리의 선열들은 조국의 광복을 위해, 민족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2,000만 동포가 하나 되어 전국 방방곡곡에서 분연히 일어나 만세운동을 펼쳤다. 학생부터 노인까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았다. 1919년 3월 1일은 아픔의 날이다. 평화시위로 진행되던 만세운동 과정에서 일본 헌병들의 무차별적인 발포로 많은 사상자와 중상자가 발생했고, 일본 헌병에게 잡혀가 모진 고문 끝에 많은 선열들이 장렬히 순국하셨다.  

그리고 1919년 3월 1일은 나의 마음을 흔드는 역사의 한 페이지이다. 나는 보훈처에서 일을 시작한 지 이제 2주일 차에 접어든 새내기 보훈 공무원이다. 하지만 보훈처에 들어오기 이전에도 보훈처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고, 독립운동가분들과 국가유공자분들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보훈가족이었다. 울산보훈지청에 발령을 받고 며칠이지만 일을 하면서 찾아오시는 국가유공자 분들, 유공자 가족분들을 만났다. 비록 처음 보는 분들이지만 나는 낯설지 않은 가족과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가족의 일처럼 그분들의 일을 도와드리고 싶다고 생각했다.

최근에는 독립유공자 손자녀 분들에 대한 생활지원금을 지급하는 일로 신청서를 받고 자료를 정리하며 바쁘게 보내고 있다. 나도 그 일을 도와드리기 위해 자료를 정리하다가 스쳐 지나가면서 유공자 본인의 출생 연월이 '5'로 시작하는데 손자녀 분의 출생 연월 앞자리가 '4' 인 것을 보고 이상하다는 생각에 선임분에게 잘못된 것이 아닌지 무심코 질문했다. 나는 돌아온 대답에 나는 부끄러움을 감출 수 없었다. 독립유공자 분의 출생연도는 1800년대이고 손자녀 분의 출생연도는 1900년도라고 대답해 주셨기 때문이다. 

이렇게 1919년 3월 1일을 비롯한 독립운동의 흔적들은 글과 사진과 컴퓨터의 데이터로 남아 후세에 전해질 것이다. 이는 대한민국 정부가, 우리 보훈처가 해야 할 의무이다. 그리고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 우리가 해야 할 의무는 과거의 역사가 단순히 글과 사진과 컴퓨터의 데이터로만 남지 않도록 각자의 가슴속에 간직하고 의미를 되새기며 후손에게 그 마음을 전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특별히 3·1절은 독립운동을 하셨던 순국선열들을 기념하는 날이니 만큼 단순히 노는 날이 아닌 순국선열들에 대해 조금 더 생각하고 뜻을 기리는 날이 되었으면 좋겠다.

99년 전 독립을 외친 애국선열들의 후손으로서 인근 독립운동 관련 현충시설을 방문하고 가정마다 빠짐없이 태극기를 달았으면 한다. 국기는 3월 1일 오전 7시에서 오후 6시까지 게양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지만 연중 24시간 국기 게양제도의 시행에 따라 3·1절 전후로 달아도 무관하다. 나 또한 새롭게 시작하는 보훈처의 직원으로서, 그리고 보훈가족으로서 앞으로 우리의 역사가 잊히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따뜻한 보훈 서비스를 제공할 것을 다짐하면서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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