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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삼월이 왔습니다. 언뜻 봄바람이 살포시 다가와 살갗을 스치고 갑니다. 봄바람은 어디서 오는 걸까요? 산에서 오는지? 바다에서 오는지? 봄바람을 맞고 차가운 대지를 비집고 눈 속에서 가녀린 꽃을 피우는 설중화(雪中花)가 있습니다.

이곳에 가면 바람꽃이 있습니다. 이곳에 가면 바람꽃은 정작 변산바람꽃입니다. 바닷가 산마루에서 바닷바람을 맞고 곱고 우아하게 꽃을 피웁니다. 10여년 전 어느 지인을 따라 이곳을 방문했습니다. 아직도 골짜기에는 잔설이 남아 있고 골바람은 차가웠습니다. 산자락을 따라 오르니 돌너덜 사이사이 여기저기에 바람꽃은 군락을 이루고 환하게 웃고 있었습니다.

 

변산바람꽃
변산바람꽃
꿩의바람꽃
꿩의바람꽃
복수초
복수초
분홍노루귀
분홍노루귀

 

이곳은 울산에 있는 변산바람꽃의 집단 자생지입니다. 전국적으로 야생화 마니아들에겐 꽤 유명한 곳입니다. 그때가 되면 오르는 길목이 찾는 이의 발자국으로 반질반질해집니다. 서식지 훼손을 우려해 이곳을 알리는 것은 금기사항입니다.

변산바람꽃은 1993년 전북대 선병윤교수가 변산반도에서 처음 발견해 한국특산종으로 발표하면서 얻은 이름입니다. 그러나 변산바람꽃은 한라산에도 피고, 설악산에도 피고, 거제도에도 피고, 토함산에도 핍니다. 그리고 그 옛날에도 피었습니다. 일본에도 일본특산종으로 절분초(節分草)라는 변산바람꽃과 유사한 종이 있습니다. 같은 종인지 다른 종인지 논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만 국립수목원 국가 생물종지식정보에서는 같은 종이라 말하고 있습니다.

이곳에 가면 초입에 금빛 찬란한 복수초(福壽草)도 있습니다. 복수(復讐)와는 무관합니다. 근데 왜 복수하면 이 복수가 머리에 떠오를까요? 집안 가득 황금이 넘치고 장수를 가져다주는 꽃이라고 일본인들은 이 복수초를 무척 좋아한다고 합니다. 복수초의 원래 우리 이름은 얼음 사이를 뚫고 꽃을 피운다고 하여 '얼음새꽃'입니다. 일본식 이름을 그대로 가져오다 보니 복수초가 된 것입니다. 최근에는 어감이 좋지 않아 수복초로 하자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아직도 바꿀 것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에는 그냥 복수초와 가지가 나는 가지복수초, 제주도에 자라는 세복수초가 있습니다.

이곳에는 또 노루귀도 있습니다. 아주 귀엽고 단아하게 피는 꽃입니다. 분홍색 노루귀도 있고, 흰색 노루귀도 있습니다. 이 노루귀는 어릴 때 돋는 잎의 모양이 노루의 귀처럼 동그랗게 말리고 뒷면에 털이 보송보송하게 나 그 모습이 노루의 귀를 꼭 닮아 노루귀라는 이름을 얻었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7종이 있는데 우리나라에 3종류가 삽니다. 우리나라에선 흔하지만 세계적으론 아주 귀하신 몸입니다. 이곳엔 변산바람꽃, 복수초, 노루귀가 한 지붕 세 가족으로 약간의 시차를 두고 오순도순 살아가고 있습니다.

태화강의 발원지가 있는 백운산으로 가 보겠습니다. 백운산 자락에서는 4월이 오면 천상의 화원이 문을 엽니다. 꿩의 바람꽃, 너도 바람꽃, 애기송이풀, 족도리꽃, 연복초, 제비꿀, 덩굴개별꽃 등 수많은 야생화가 앞 다투어 꽃을 피우고 뽐냅니다. 그중에 꿩의 바람꽃은 화품(花品)이 맑고 고상하여 마치 장끼의 화려함을 닮은 듯합니다. 골짜기를 오르면 굴참나무 낙엽이 모여 있는 돌 틈 사이 순백에 연분홍빛 입술을 바른 꿩이 여기저기에서 깃을 세우고 고개를 내밉니다. 한동안 그 아름다움의 극치에 환희가 몰려옵니다. 좀 더 오르면 너도 바람꽃은 벌써 꽃을 피우고 씨방을 만들고 있습니다. 

한반도에는 꽃의 모양에 따라 홀아비 바람꽃, 쌍둥이 바람꽃, 사는 곳에 따라 들바람꽃, 숲바람꽃, 변산바람꽃 등 20여종의 바람꽃이 전국의 산야에서 봄바람을 맞으며 꽃을 피워댑니다. 그러나 정작 기본종인 그냥 바람꽃은 8월이 되어서야 느긋하게 설악산 이북의 고산지대에서 무리지어 꽃을 피웁니다.

바람꽃 종류의 속명은 아네모네(Anemone)인데 속명과 관련된 전설이 있습니다. 옛날 꽃의 신 플로라에게는 미모가 아름다운 아네모네라는 시녀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플로라의 남편인 바람의 신 제피로스가 그만 아네모네를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이 사실을 안 플로라는 아네모네를 멀리 내쫓아버렸으나 제피로스는 바람을 타고 그녀를 뒤쫓아 가서 깊은 사랑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두 사람의 사랑을 지켜본 플로라는 아네모네를 꽃으로 만들어 버렸고 슬픔에 젖은 제피로스는 언제까지나 아네모네를 잊지 못하여 매년 봄이 오면 따뜻한 봄바람을 보내어 아네모네를 아름답게 꽃피운다고 합니다. 아네모네는 그리스어로 '바람의 딸'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태화초등학교장·녹색지기단 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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