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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규원

저기 저 담벽, 저기 저 라일락, 저기 저 별, 그리고 저기 저 우리 집 개의 똥 하나, 그래 모두 이리 와 내 언어 속에 서라. 담벽은 내 언어의 담벽이 되고, 라일락은 내 언어의 꽃이 되고, 별은 반짝이고, 개똥은 내 언어의 뜰에서 굴러라. 내가 내 언어에게 자유를 주었으니 너희들도 자유롭게 서고, 앉고, 반짝이고, 굴러라. 그래 봄이다.

봄은 자유다. 자 봐라, 꽃피고 싶은 놈 꽃피고, 잎 달고 싶은 놈 잎 달고, 반짝이고 싶은 놈은 반짝이고, 아지랑이고 싶은 놈은 아지랑이가 되었다. 봄이 자유가 아니라면 꽃피는 지옥이라고 하자. 그래 봄은 지옥이다. 이름이 지옥이라고 해서 필 꽃이 안 피고, 반짝일 게 안 반짝이던가. 내 말이 옳으면 자, 자유다 마음대로 뛰어라.

△오규원 (1941~2007): 날 이미지 시인으로 유명, 시집으로 '분명한 사건' 외 다수, 현대시작법, 서울예술대 문예창작과 교수로 역임, 2007년 지병으로 사망. 연암문학상, 이산문학상, 대한민국예술상 등 수상.
 

한영채 시인
한영채 시인

3월 봄비 내리고 언제 추웠냐는 듯, 움은 쑥쑥 자라 양지바른 곳에 난초는 염소 혓바닥처럼 연한 순을 내밀고 있다. 기다리지 않아도 봄은 오고 기다림마저 잃었을 때에도 너는 온다고 일찍이 어느 시인의 말이다. 까치가 울고 새들은 지저귄다. 아침 일찍 언니로부터 전화가 왔다. 냉이를 캐러 가자는 거다. 겨울을 지난 봄밭 흙들은 부스스 일어나 부드럽고 순한 바람에 먼지를 날리기도 한다. 냉이를 캐러 나선다. 아직 산 아래 바람은 차다. 산자락에 위치한 밭에는 냉이가 지천이다. 냉이로부터 눈 부비며 더디게 봄은 온다. 밭갈이 하는 트렉트 소리 고랑을 만들고 우주의 기운을 알리고 있다.
시인의 언어에도 봄은 온다. 저 담벼락, 저 라일락, 저 별, 저 언덕의 개나리 진달래 목련 라일락 봄꽃들이다. 언어의 울타리가 되고 언어의 꽃이 되고 발질을 하며 뛰는 염소의 뒤태는 똥글똥글 언어에서 구르고, 아지랑이처럼 솟아 자유를 찾아나서는 언어의 봄길, 오규원 시인은 개똥은 내 언어의 뜰에서 굴러라. 내가 언어에게 자유를 주었으니 너희들도 자유롭게 서고, 앉고, 반짝이고, 굴러라. 그래 봄은 자유다 마음대로 뛰어라.
가대 가는 길, 생강나무 꽃이 노랗게 부풀어 있다. 며칠 후면 주위를 환하게 밝힐 것이다. 가지를 스치는 바람이 분다. 봄을 캔 냉이는 소쿠리 한 가득이다. 겨울을 지낸 파란 움파는 먹는 것보다 보는 즐거움이 더 큰 것 같다. 봄나물로 쌉싸름하게 무쳐 먹을 이 봄, 가족 밥상을 생각하며 돌아오는 길 발걸음 가볍다. 한영채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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