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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친정에 들렸다. 지금은 친정 부모님은 세상을 달리해서 안 계시지만, 어린 시절을 보낸 고향집을 찾아가는 마음은 늘 설렌다.

고향집에서 유일하게 내 흔적을 찾아 볼 수 있는 곳은 책장이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수집한 시집은 아직도 꽂혀 있으며, 어제 구입했는지 정확하게 기억나는 책들도 있다. 이번에도 책장을 두리번거리다 눈에 띈 책이 있어서 집어 들었다. 바로 이병도 역주본 『삼국유사』(광조출판사, 1982)였다.

이 책을 어떻게 구입했는지 기억이 잘 안 나지만, 대학생 시절인 1980년대에 고서점가에서 구입했을 가능성이 크다. 아니면 가족 중 누군가가 구입했을지도 모른다.

『삼국유사』는 내 상상력의 원천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단군신화에서부터 수많은 역사적 인물들의 이야기는 내가 상상의 날개를 펴기에 충분했다. 딸아이가 어릴 때 잠자리에 들기 전에 들려주는 이야기는 대부분 이 『삼국유사』에 실려 있는 이야기다. 딸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서 아마 내가 처음 사준 책이 『어린이 삼국유사1,2』일 것이다. 그림이 곁들여진 고운기, 최선경 원전번역으로 2006년에 현암사에서 출판한 것이다. 2006년이 저자 일연스님이 탄생한지 800년을 맞이하는 해여서 특별 기획으로 나온 책이란다. 그리고 그 즈음에 군위여고를 방문할 기회가 있어서, 볼 일을 마치고 산책 삼아 일연이 『삼국유사』를 집필했다는 인각사를 방문한 적이 있다. 자그마한 절로 그 당시에는 한적함을 더 했을 거라는 생각을 했었다.

오랜만에 이병도 역주본 『삼국유사』와 『어린이 삼국유사1,2』를 읽었다. 환웅과 웅녀의 단군왕검 이야기를 비롯하여 알에서 나온 신라 백제 고구려 삼국 시조의 탄생설화와 일본으로 건너가 왕과 왕비가 되었다는 연오랑 세오녀 이야기, 일본에 인질로 잡혀간 왕자를 구해낸 충신 김제상 이야기, 귀신을 부려 하룻밤 사이에 큰 다리를 만들게 한 비형랑 이야기, 지혜로운 선덕여왕의 예지력, 김유신과 김춘추, 피리로 풍랑을 일으켜 왜구를 혼내 주었다는 만파식적 이야기, 신라의 선화공주에게 장가든 백제 무왕의 이야기, 몸을 바쳐 불교를 일으킨 이차돈 이야기, 호랑이 처녀와 애틋한 사랑을 나눈 화랑 김현 이야기 등, 수많은 이야기 속 주인공들은 내게 문학적 상상력을 풍부하게 해 주었다.

더군다나 14수의 향가가 실렸다는 점은 『삼국유사』를 더욱 높게 평가해야 할 것이다. 여기에 실린 향가는 하나 같이 이야기를 동반하고 있다는 점에서 감동이 더해진다. 우리는 '서동가'가 빠져버리면 어떻게 해서 신라 선화공주가 궁중에서 쫓겨나게 되는지 알 수가 없을 뿐만 아니라, '처용가'가 빠지면 처용의 심리와 역신이 처용에게 굴복하는 이유가 불분명해진다. 죽은 누이를 위해 지었다는 월명스님의 '제망매가' 역시 향가를 이야기 할 때 빼놓을 수가 없다. 신라 사람들은 향가를 좋아하고 떠받들었으며, 대개 제사를 지낼 때 춤을 추면서 부르기도 하여 하늘과 땅, 귀신을 모두 감동시켰다고 한다. 일연은 분명 시인이었음에 틀림이 없다.

지난번 우연히 TV에서 '삼국유사 퀴즈대회'를 하는 것을 보았다. 이런 퀴즈대회도 있구나 하면서 퀴즈를 함께 풀어보겠다는 마음으로 끝까지 보았다. 삼국유사의 고장인 군위군이 청소년들에게 우리의 훌륭한 역사와 문화를 직접 배우고 체험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서 만들었다고 한다. 삼국유사 퀴즈대회를 보면서, 많은 학생들이 『삼국유사』를 읽고 참여했으면 하고 바랬다. 지금부터라도 딸아이와 『삼국유사』를 읽어가면서 삼국유사 퀴즈대회를 준비해서 언젠가는 대회에 참석하도록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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