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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을 목전에 두고 무던히도 바빴다. 두서없이 어수선한 사무실에 어르신이 노크도 없이 불쑥 들어섰다. 일에 정신이 팔려있었던 터라 갑자기 문을 열고 들어서는 바람에 많이 놀랐다. 가끔은 학생들이 일부러 작정하고 놀라게 해 혼을 내기도 한다. 그러나 낯선 이에게 무어라 말도 못하고 잠시 넋 놓고 바라보기만 했다. 그의 손에는 복조리가 수북했다.

매년 겪는 일이라 또 그때가 되었구나 싶었다. 어르신은 들고 있던 복조리 한 쌍을 먼저 내밀더니 다짜고짜 사라고 한다. 속내야 거절하고 싶음이 간절했지만 그냥 입을 다물었다. 늘 그랬던 것처럼 왠지 필요 없다고 하면 복을 쫓는 일인 것 같아서다. 그렇다고 쌓여있는 복조리를 마냥 사서 쟁여두는 것도 난감했다. 실체도 없는 것에 대해 스스로 느끼는 모호함으로 잠시 내적 갈등을 겪었다. 그 짧은 틈에 그분은 복조리 한 벌을 덤으로 더 꺼내더니 돈을 달라고 한다. 형식적이고 쓰임이 없다지만 너무도 조잡하게 만들었다. 썩 내키지 않는 것을 성의 없이 받아들고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 값을 흥정하는 것부터가 기분 좋은 일은 아니었다.

어디를 보더라도 복이 담길만한 것 같지는 않았다. 시누대나 튼튼한 대나무 줄기로 만든 것이 아니라 보리나 밀 줄기처럼 얇은 재료로 성글게 만들어서 잘못 만지니 줄기 하나가 툭 터지고 만다. 생김새의 문제라기보다 올해는 왠지 사고 싶은 마음이 덜했다. 아무리 복을 앞세운 상술이라고 해도 거듭 어처구니가 없다는 생각이 끊이질 않았다. 어른 손가락 하나가 겨우 들어갈 만큼 작아서 장식으로나 걸어두면 그나마 다행이겠다 싶었다. 허나 누가 요즘 복조리를 장식품으로 걸어두려고 할까 싶다.
학원 한쪽에 있는 창고로 가서 무더기로 쌓여 있는 복조리를 가져왔다. 그동안 매년 정초만 되면 복조리를 팔려고 오는 사람들에게서 산 것들이다. 해를 거듭하면서 먼지를 타 더러 버렸는데도 꽤 모였다. 그나마 정리가 되지 않아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는 곳에 모아 두었다. 해마다 모아둔 복조리를 처리하는 것도 난제다. 그냥 모아두는 것도 지저분하고 버리려니 왠지 들어온 복을 스스로 버리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일말의 불안함도 있었다. 그것은 오래전부터 내려온 세시풍속 때문은 아니었나 생각한다.
복조리가 귀한 대접을 받았던 때가 있었다. 복을 가져다준다는 믿음이 강해서 누구나 복조리 장수를 반겼다. 설날을 전후해서 복조리를 남의 담장 너머로 던져두고 다음날 복조리 값을 받으러 다니던 때가 있었다. 잦은 이사를 다녔던 우리는 큰 집은 팔고 되도록 두 가족이 지내기 쉬운 작은 집으로 이사를 거듭했다. 그 마지막 오두막은 단출한 두 식구가 살기에 안성맞춤이어서 우리는 더 이상 이사를 하지 않아도 되었다. 바닷가 마을 대부분이 그랬지만 우리 집에도 대문이 없었다. 정초 어느 날 아침에 일어나면 간밤에 마루 끝에 복조리 한 쌍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으레 복조리를 두고 갔던 주인이 나타나서 복조리 값을 기분 좋게 받아갔던 기억이 있다. 그런 유사한 기억의 몇 장면들이 정지된 듯 눈에 선하다.

세시 풍속으로 행해졌던 복조리가 단연 복만을 가져다준다고 여겼던 것은 아닌 것 갔다. 시골 생활에서는 없어서는 안 될 필수품이었다. 농사가 주업이었던 그때는 벼나 보리를 낫으로 베고 탈곡을 해 바닥에 널어 말렸다. 말리는 과정에서 알곡에 돌이나 이물질이 들어가기도 했다. 쌀이나 곡식으로 밥을 할 때는 곡식의 탈곡 과정에서 들어 있을 각종 이물질과 돌 부스러기를 당연히 복조리로 일었다. 만약에 조리로 쌀을 일지 않으면 돌을 씹을 위험이 있었다. 어머니는 받은 복조리를 부엌 기둥에 걸어두었고 먼저 받았던 조리는 실생활에서 많이 사용했다. 생필품으로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이다. 요즘은 색상만 화려고 조잡하게 만들어진 복조리지만 그때는 튼튼한 대나무로 야무지게 만들어서 곡식이 흘러내리지도 않았다. 농촌에서는 대부분 복조리 몇 개는 어느 집 없이 기둥에 걸어두고 살았다.

지금은 농작물이 식탁에 오르기까지의 과정이 기계화 되면서 쓰임은 없어졌다. 그런데도 일을 시작한 때부터 늘 해마다 정초가 되면 복조리를 샀던 것 같다. 그러나 이제는 그런 세시풍속이 사라진지 오래다. 허나 달리 여겨보면 사라져가는 생활문화에 대한 아쉬움과 잊고 싶지 않은 기억 사이에 있는 그분들의 잘못은 아니다. 누구나 생에 좋았던 것 하나 잃고 싶지 않은 무언가 하나의 교두보쯤으로, 언젠가 아슴푸레하게 사라지는 것에 대한 아쉬움을 붙잡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그 짧았던 기억이 잡고 있는 허상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 같다. 새해에 받은 복조리만 두고 모두 없애기로 했다. 가지고 있어도 마음이 늘 편하지 못하니 이제는 없애도 될 것 같았다. 늘 마음의 갈등만 안고 샀던 것을 이제는 부담 없이 거절할 수 있을 것 같다. 어리석게도 오랜 세시 풍속을 빗대어 인위적으로 복을 받고 싶었던 욕심이었던 것 같다. 쉽게 잊히지 않는 오래된 추억 때문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을 해본다.

아이러니 하게도 이십 일 세기를 살고 있으면서 복조리에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지금까지 이도 저도 아닌 어중간한 어디쯤에 있었던 것 같다. 이제는 내가 잘할 수 있는 복 짓는 일을 하고 싶다. 그것이 작고 하찮은 일리라도 괜찮다. 복은 사는 것이 아니라 짓는 일로 결론을 내린다. 말과 밥이 복 짓는 일의 작은 시작이었음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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