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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거는 충분하다. 영장이 언제 발부될지 몰랐다. 부정부패에 대해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하고 공명정대하게 수사했다."

경찰 수사와 관련해 자주 듣는 말이다. 일종의 언론 플레이성 수사(修辭)이다. 이른바 여론전이다. 여론전은 매우 유효하기도 하고 유혹적인 수단이 되기도 한다. 단번에 전국적인 관심을 끌 수도 있고 시민들의 환호를 받기도 한다.

울산시장 주변 수사와 관련해 한국당과 경찰의 공방이 수그러드는가 싶었는데 이번엔 울산경찰청장이 수사권 지휘를 내려놓겠다고 한다. 이와 관련한 청장의 입장문을 보니 다양한 말들이 동원됐다. 접대 골프 논란과 한국당이 김 시장 동생 구속영장 기각에 맞춰 황운하 울산경찰청장을 직권남용과 선거개입 등 혐의로 검찰 고발한 직후의 일이다.

한국당은 황 청장이 지난해 더불어민주당의 울산시장 후보인 송철호 변호사를 만나고, 지역 경찰협력단체와 골프를 친 것에 대해 '여권과 유착' '접대' 의혹을 제기하며 검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경찰은 김 시장 동생 외에 형과 친인척, 비서실장 등 모두 8명을 입건했다. 이들의 혐의를 보면 변호사법과 정치자금법 위반, 알선수재, 직권남용 등 다양하게 얽혀 있다. 선출직인 시장 측근 비리라면 더 엄중히 수사해 진상을 밝혀야 하고 경찰이 선거를 앞두고 수사를 하는 것이 '정권과 유착한 선거개입'이라면 경찰은 수사 자체를 중단해야 옳다. 그러나 황 청장은 '과도한 흠집 내기로 수사 흔들기'라고 항변했다.

논란의 중심에는 수사 시점과 의도성에 대한 의심도 있다. 야당 시장 후보로 공천 받던 날 시청 압수수색은 아무래도 '선거용 수사'라는 의심을 지울 수가 없다. 경찰이 이른바 관권 선거란 야당 공격에 빌미를 제공한 꼴이다. 여기에 수사 초기 비리경찰이 수사팀에 포함된 사실도 밝혀졌다. 그 후 청장의 골프 논란이 있었고 사천 창원 등 한국당 후보만 골라서 표적 수사한다는 비난에 직면했다.

많은 논란이 일면서 사건의 핵심은 사라지고 정치적 싸움으로 번져가기도 했다. 이 와중에 지난 1월 폭로된 울산CC의 '공짜 골프' 비리 사건도 경찰 수사가 지지부진하다는 이유로 고발한 측에서 검찰이 수사하라고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했다. 신속하고 엄중한 수사를 강조한 경찰이 머쓱해야 할 부분이다.

여기에 남구 태양광 발전설비 업체선정 비리의혹을 수사하던 경찰이 남구청장은 무혐의라며 내사 종결했고 관련 시의원은 피의사실 공표와 명예훼손 혐의로 황 청장을 검찰 고발하겠다고 한다. 김 시장의 부동산 취득 과정에 대한 의혹을 제기한 울산MBC도 왜곡보도 논란에 휩싸였다. 해당 프로그램에 인터뷰한 당사자가 왜곡보도라며 정정보도를 공개적으로 요구했다.

여기까지만 보면 경찰을 향한 야당의 공세나 의심 근거가 충분하다고 판단된다. 기획이나 함정수사, 청부수사란 단어가 과도할지는 모르지만 2015년에 인지했다는 정치후원금 문제나 동생 건도 이미 지난해 여름 여의도에서는 설로 확인된 바 있다. 언론은 경찰 수사착수 시점과 영장 신청시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도 경찰은 올 1월 수사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과연 경찰이 모르고 있었다면 무능하거나 무관심한 것이었고 첩보를 입수해 내사해 놓고 공개 시점을 노렸다면 야당 지적이 '합리적 의심'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치 공세를 차단하겠다는 의도로 수사지휘권을 내려놓겠다는 청장의 결정은 수사에 공정성을 기할 것이란 기대를 준다. 하지만 정치권의 또 다른 시비거리가 될 수도 있다는 점이 걱정이다. 김 시장 동생에 대한 구속영장은 기각됐고 이로 인해 경찰 수사는 힘이 빠졌다. 그래서 황 청장이 이 시점에서 자기는 빠지고 부하에게 지휘권을 떠넘긴다는 '책임회피'란 지적이 나온다.

흔히 '기자는 기사로 말하고 경찰은 수사로 말한다'고 한다. 섣부른 선입견으로 결과에 앞서 불필요한 말을 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울산경찰청장이 장황한 설명을 늘어놓으며 정치권과 공방을 벌이다 보면 진실규명은 멀어지고, 억울한 피의자를 만들 수도 있다.

제기된 의혹과 혐의를 뒷받침할 진술과 증거를 찾아 범죄사실을 확정하는 것이 경찰의 역할이다. 수사 내용이 진실한지, 수사는 공정하게 진행됐는지. 혐의가 법에 어긋나는지를 따지면 할 일은 끝난다. 무죄 추정의 원칙과 경찰은 수사로 말하라는 당부를 되새겼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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