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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학교 복도에는 명화가 여러 점 전시되어 있다. 누구나 한 번쯤은 봤을 법한 눈에 익은 그림들이다. 질풍노도 사춘기 중학생들의 정서순화를 위한 교장선생님의 멋진 아이디어였다. 뽀얗고 하얀 복도에 가지런히 걸려 있는 서양화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림 속 배경으로 빠져들 것만 같다. 마치 내가 그림의 주인공이 된 것처럼.

나는 사진으로만 보았던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를 직접 보았다. 고풍스럽고 화려한 루브르궁과 현대적 감각의 유리 피라미드가 조화를 이룬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은 파리의 자존심답게 위풍당당하게 자리잡고 있었다. 기대가 너무 컸던 탓일까? 모나리자는 터무니없이 작은 액자 속에 있었다. 나는 당혹감과 실망감을 애써 감췄다. 접근 제한 때문에 가까이서 볼 수도 없거니와 인파에 밀려 감상할 시간조차 짧았다. 눈썹 없는 이 작은 그림 한 점이 전 세계의 수많은 관광객들을 마법처럼 파리로 이끌고 있다는 게 놀라울 정도였다.

독일 시인 하인리히 하이네는 '좋은 그림은 내가 그림을 보는 게 아니라 그 그림이 나를 보고 있는 듯한 인상을 준다'고 했다. 오스트리아 비엔나의 벨베데레 궁전에서 내가 그랬다. 전시된 그림 앞에서 작아진 나는 예술의 거장 앞에서 겸손해 졌다.

천재화가 구스타프 클림트의 명작 '키스'가 뿜어내는 색, 형, 빛 앞에서 나는 멈췄다. 인물과 배경이 마치 한 몸 같았고 황금빛 색감이 눈부시도록 환상적이었다. 금 세공사 아버지의 영향으로 금박을 입힌 게 화려함의 절정을 더했다. 절벽 끝에서 포옹하고 있는 두 남녀가 금방이라도 추락할 듯 아슬해 보였지만 황금 날개옷을 입고 하늘로 날고픈 사랑의 자유가 승천하는 듯 했다. 삭막함과 황량함에 메말랐던 내 삶이 풍요로워지는 순간이었다. 

'키스' 그림 옆에는 손으로 그림을 만져볼 수 있는 볼록한 양각으로 된 조각품이 준비되어 있었다. 시각장애인을 위해 촉감으로 그림을 느낄 수 있도록 한 미술관의 배려였다. 시각장애인이 미술관을 찾으리라곤 생각조차 못한 나에게는 퍽 인상적인 작품이었다. 직접 눈으로 보고 느끼는 황홀한 감동에 비할 수는 없겠지만 여기에 온도를 더하여 따뜻함을 느끼도록, 진동을 더하여 잔잔한 전율이 전해지도록 하는 미술품들을 만들면 어떨까? 단순한 촉감의 배려를 넘어 정서적 교감과 감동까지 전해주는 그림은 상상만으로도 우리 사회를 더욱 따뜻하게 하는 매개가 되어 줄 것 같다.

배려에도 용기가 필요함을 깨닫게 해 준 계기가 있었다. 내가 새내기 공무원으로 근무했던 고등학교에 휠체어를 탄 신입생이 처음으로 입학을 하게 되었다. 행정실은 몸이 불편한 신입생을 위해 수천만원하는 고가의 엘리베이터를 긴급하게 학교예산을 투입하여 설치해야 할 상황이었고 예산이 부족했던 학교는 발을 동동 굴렸다. 1학년은 1층, 2학년은 2층, 3학년은 대입준비를 위해 조용한 꼭대기 3층에 교실이 배정되는 것이 관례적이었다. 그렇게 1학년이 지났고 2층으로 올라가야 할 2학년이 되자 학교는 다시 고민에 빠졌다. 휠체어 대신 학부모가 자녀를 업고서 계단을 오르내리도록 하자, 학생도우미가 돌아가며 도와주자, 그 친구가 속한 학급만 1층 교실로 배정하자 등 다양한 대안들이 나왔다.

교장선생님께서는 여러 번 교직원 회의를 거쳐  2학년 전체를 1층으로 배정하였고 3학년 때도 1층에 배정하도록 하는 당시에는 파격적인 결단을 내리셨다. 3층에 비해 시끄럽고 소란스러운 1층에서 하는 공부는 대입 진학에 상대적인 피해를 본다는 학부모 민원도 있었다. 진로진학실도 1층으로 내려야 했고 수업교실의 높낮이가 다른 학생용 책걸상도 학년에 맞게 내려야 하는 수고로움도 있었다. 하지만 학생, 선생님, 학부모의 배려로 결국 그 친구와 함께 학교를 다닌 친구들은 고등학교 3년 내내 1층 교실에서 수업을 받을 수 있었다. 교장선생님의 용기있는 결단에 힘을 실어 준 전교생 친구들의 사려 깊은 우정이 빛났던 3년이었다.

4월 20일은 제38회 장애인의 날이다. 우리가 근무하는 학교에 몸이 불편한 친구, 마음이 아픈 친구들이 있는지 살펴보자. 무심코 건넨 밝은 인사 한마디가 누군가에게는 관심받고 있다는 포근함일지도 모르기에. 서로에게 말 한 번 더 걸어주는 따뜻한 울산교육의 동반자가 되어 주자. 오늘보다 한 뼘 더 커진 용기있는 배려로 성큼 다가선 내일의 나눔이 함께하는 울산교육의 청사진을 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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