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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장미

이화은

입술이 새빨간 여자는 다 첩인 줄 알았다

손톱이 긴 여자는 다 첩인 줄 알았다

뾰족 구두를 신은 여자는 다 첩인 줄 알았다

녹슨 시간의 철조망을 아슬아슬 건너고 있는

아버지의 무수한 여인들

△이화은 : 경북 진량 출생. 1991년 '월간문학'으로 등단, 시집 '이 시대의 이별법' '나 없는 내 방에 전화를 건다' '절정을 복사하다' '미간'

 

박성규 시인
박성규 시인

경거망동하면 안 되는 일인 줄 알면서도 연초부터 야생화 탐사를 욕심내었지만 잡히는 일정마다 다른 일들이 생겨서 처음 한번만 참석하고 여태 참석하지 못했다. 아무리 시작이 반이라고는 하지만 이건 잘못되어도 너무 잘못된 일이 아닌가. 좀 더 신중하게 생각하고 실천에 옮겨야 하는데 그렇지를 못하다 보니 마음이 편하지 못했었다. 그런 와중에 탐사에 참여하신 분들로 부터 봄 꽃 소식이 수시로 날아들어서 가만히 앉아서 꽃구경을 하게 된 셈인데, 이미 알고 있는 꽃들도 더러 있었지만 태반이 모르는 꽃이라 모르는 꽃이 참 많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는 스스로 부끄러움을 감추지 못해 숨어버리고도 싶었다.


영춘화 너도바람꽃 올괴불나무 변산바람꽃 시크라멘 생강나무 홍매 납매 청노루귀 백오루귀 분홍노루귀 쇠뿔현호색 보춘화 할미꽃 산자고 솜나물 큰괭이밥 히어리 흰진달래 풀또기 얼레지 금괭이눈 만주바람꽃 홀아비꽃대 꼬리까치밥 깽깽이풀 각시붓꽃 네군도단풍 왜미나리아재비 토종목련 등등 수없이 등장하는 저들의 자태는 매혹스럽게 시선을 끌어 당겨 함께 참여하지 못한 아쉬움이 커 봄이 야속하기도 했다.
저 많은 꽃들을 마당 꽃밭에 죄다 심고 싶은 욕망도 있지만 제 자리에서 저 스스로 피었다가 지는 것도 인연중의 인연이라 함부로 손대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저 꽃들을 다시 만나려면 내년까지 기다려야 하는데 발길 닿지 않는 곳에서 내년에도 다시 피어날 것이므로 올 한해 꿋꿋하게 기다려볼거나.
대체적으로 봄은 개나리 진달래 매화 벚꽃쯤으로 생각했지만 우리 발길이 잘 닿지 않는 곳에서 차디찬 겨울을 이기고 꽃피운 저들의 삶이 마음의 중심에 자리하기 까지는 꽤나 오랜 시간이 필요할 듯하지만, 어릴 적 살았던 집 대문이나 전에 다녔던 회사의 담벼락을 뒤덮었던 줄장미가 마지막 피고나면 봄은 그 일정을 마무리할 것 아닌가. 봄은 그렇게 왔다가 가는 것 같다.
 박성규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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