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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초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 각 비서관실에 '춘풍추상(春風秋霜)'이라는 글귀가 담긴 액자를 선물했다. 문 대통령은 이 액자를 선물한 이유를 직접 밝혔다. '춘풍추상'은 채근담에 나오는 '대인춘풍(待人春風) 지기추상(持己秋霜)'에서 비롯된 말로 "남을 대할 때는 봄바람처럼 부드럽게 대하고, 자신을 대할 때는 가을 서리처럼 엄격하게 대한다"는 의미다. 문 대통령은 이 액자를 선물하며 추상이라는 문구에 대못을 쳤다. 문 대통령은 춘풍추상에 대해 "남들에게 추상과 같이 하려면 자신에게는 몇 배나 더 추상과 같이 대해야 하며, 추상을 넘어서 한겨울 고드름처럼 자신을 대해야 한다" 고 주석을 달았다. 한 마디로 문 대통령의 도덕적 잣대였다.

그로부터 두달여가 지난 시점, 김기식 사태는 갈수록 걷잡을 수 없는 상황이 되고 있다. 외유성 출장 논란에 부적절한 연수, 갑질 정치후원금에 거짓 해명까지 자고나면 새로운 의혹이 지난 여름의 오물을 들춰내고 있다. 여기에 김기식을 검증한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이 김기식이 연구소장을 맡고 있는 '더미래연구소'의 이사와 강사였던 것으로 확인되는 일이 벌어졌다. 앞서 청와대는 "조국 수석이 임종석 비서실장 지시에 따라 김 원장을 둘러싼 의혹 내용을 확인한 결과 적법하다고 결론을 내렸다"고 밝힌 바 있다. 따라서 김 원장과 오래된 이해관계가 있는 조 수석이 김 원장에 대한 검증을 제대로 했겠느냐는 의구심이 이제 의혹으로 번지는 양상이다.

문화일보가 더미래연구소의 등기부 등본과 교육 참석자 명단 등을 확인한 결과 조 수석은 지난 2015년과 2016년 2년간 김 원장과 함께 초대 이사진으로 활동한 것으로 나타났다. 2017년엔 청와대 민정수석 임명을 계기로 이사진에서 빠진 것으로 전해졌다. 조 수석은 또한 2016년 11월엔 이 연구소의 강사로서 직접 강연에도 나선 것으로 드러났다.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도 1기 강사였다. 국회 정무위원회 야당 간사 출신인 김기식은 현역 국회의원 시절이던 지난 2015년부터 이 연구소를 만들어 정무위의 피감 기업과 협회, 공공기관 등의 대관 담당자들을 모집해 최대 600만 원가량의 수강료를 받고 강연 프로그램을 운영해왔다.

강연은 주로 국정감사 기간인 9∼11월에 주 1회 10주 동안 진행됐고, 3기인 지난해엔 대통령 선거가 있던 5월을 전후한 4∼6월에 교육이 이뤄졌다. 강연료는 600만 원으로 해외 연수를 가지 않을 경우 비용을 깎아주는 구조다. 1∼3기 교육 참석자 명단엔 주요 은행·보험사·손해보험협회·생명보험협회·은행연합회·여신금융협회·한국거래소 등 피감기관의 대관 담당자들이 대거 포함됐다. SK, 현대차, 한화, 네이버, KT 등 대기업들도 상당수 교육을 신청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 금융권 참석자는 "김 원장의 보좌관이 연락을 해와 기업별로 반드시 한 명을 보내라고 말했다"며 "야당 정무위 간사의 뜻을 어떻게 거절하겠나"라고 밝혔다.

이쯤되면 과거 박근혜 정부 시절의 인사 참사가 스치듯 지나간다. 숱한 인사 참사가 있었지만 역시 대표급은 김용준, 안대희, 문창극, 그리고 이완구까지. 박근혜 정부의 국무총리 자리였다. 총리 지명자가 세간의 자질 논란에 휩싸인 첫째 이유는 직무수행 능력의 유무를 떠나 자질과 품위의 문제, 즉 도덕성에서 찬반이 갈렸다. 얼굴을 보기만 해도 피로감이 몰려오는 그런 사람이 국민들을 불편하게 했다. 딱 그 지점이다. 지금까지 나온 객관적 사실만으로도 김기식의 자리보전은 구차해 진다.

김기식 사태로 곤혹스러운 것은 문재인 대통령이 첫째겠지만 그를 보고 있는 여당 쪽은 당장 지방선거를 앞두고 속이 타들어 간다. 그와 관련된 뉴스가 나올 때마다 그를 비호하는 인사들의 면면이 여권의 주류와 뿌리가 같다는 사실이 알려질 때마다 표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지만 아직은 그 정도쯤이야 싶은듯하다. 하기야 워낙 견고한 지지에 70% 가까운 대통령의 인기는 믿을 구석이다. 믿음이 견고하면 겸손해야 할 일이지만 오만과 불통이 또아리를 틀기 마련이다. 

김기식은 그래서 당당하다. 삼성증권 사태와 채용비리 문제에 정면돌파를 외치는 등 금융기강 잡기에 나서는 모양새다. 문제는 김기식의 업무수행 능력이 아니라 도덕성이다. 아무리 기강잡기에 나서도 기자들은 그에게 거취를 묻는데 바쁘다. 난감한 일이다. 내려놓지 않는 이가 움켜쥐면 아귀의 힘은 몇 배로 늘어난다. 내려놓길 기다리는 사람들의 답답함은 안중에 없다. 스스로 인정하고 싶지 않아 부정하고 변명했던 일들이 더 부끄럽기에 시간이 지날수록 아귀에 들어간 힘은 습관이 되기 마련이다. 이 쯤되면 까놓고 이야기할 사람이 필요하다. 혼자 지난 여름의 일을 계속 부정하고 있으면 답이 없다. 스스로 김기식이라 쓰고 개혁 금감위원장이라 읽고 싶겠지만 이제 국민들은 아무도 그를 개혁의 대명사로 읽지 않는다. 그냥 거시기 하나쯤의 이율배반이라 느끼고 있다. 누군가 그 사실을 제대로 알려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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