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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상가 타입

변희수

저 돌 지독한 몽상파의 육체를 가졌다

끓어오르는 한 때를 가지지 않았다면
저렇게 줄기차게 몽상하는 자세를 유지하지 못했을 것이다

뒹굴어도 멀리 차 버려도 한결 같은 자세다
눈도 귀도 다 지워버린 자만이 들 수 있는 경계

돌은 물질이 어떻게 정신을 가질 수 있는지
정신이 어떻게 물질의 자세가 될 수 있는지 보여주는 것 같다

돌에게 모자를 띄우거나 담배를 권하는 일은 어리석다
멍하게 있는 것 같아도 돌은 침묵에 대해서
침묵만이 몽상의 육체를 완성할 수 있다는 것을 안다
안다는 것을 말하지 않는 육체는
더 이상 육체일 필요가 없지만

모른다는 것으로 완성되는 돌들의 육체
뭉툭한 몽상의 질감

비바람에 살점을 다 발라낸 근육
암만 봐도 몽상가 타입인데

꿈꾸는 물질이다

△변희수: 1963년 경남 밀양 출생. 영남대 국문과 졸업. 2011년 영남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2016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 시집 '아무것도 아닌, 모든'
 

한영채 시인
한영채 시인

돌과 바람과 여자가 많다는 그 섬에 다녀왔다. 봄꽃인 벚꽃과 유채꽃에 벌들이 날아든 것처럼 환상의 섬으로 여행자의 발걸음이 멈춘다. 보슬보슬 부드러운 흙이 섬을 헐거워지게 하고 있다. 봄은 밭을 일구어 새 씨앗을 기다리는데 하루 종일 흙을 만지고 싶다. 고랑에서 나온 돌로 담을 쌓아 돌과 돌 사이 바람이 드나들어 너와 나의 간극을 줄이고 침묵으로 소통되는 단단한 돌처럼 이웃이 되고 싶다.
우뚝 솟은 산방산 자락에서 올레 10구간이 시작이다. 돌과 바람과 여자 여행자가 걷는다. 화산폭발로 이룬 섬, 검은 돌이 여기저기 흩어져 나름대로 생각 속에 잠기고 생각이 생각을 낳기도 한다. 해안선을 돌며 파도가 일군 모래사장을 지나 군데군데 크고 작은 검은 돌들이 모여 이웃을 이룬 이곳에서 영락없이 여행자는 렌즈를 들이댄다. 저 돌은 몽상가 타입, 생각 속에 잠겨 침묵한다. 로댕은 생각하는 사람을 만들었지만 자연은 그대로의 자유를 준다. 한 때 끓어오르던 붉은 정열도 품었으리라. 대구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변희수 시인은 몽상가 타입인 돌은 멍하게 있는 것 같아도 돌은 침묵에 대해서 침묵만이 몽상의 육체를 완성할 수 있다는 것을 안다고 한다. 돌을 몽상가로 보다니 기발한 시적 아이디어다.
돌은 단단하고 변하지 않는 속성이 있다. 몽상가 타입은 어떤 것일까, 낭만과 지적 즐거움을 꿈꾸는 몽상가는 돌처럼 단단해지고 싶어 한다. 돌 속으로 들어가 꽃을 피우고 새소리가 나며 남해 금산 그 여자도 다녀가는 몽상가에서 더 단단해져 가는 꿈꾸는 물질로 물상으로 물건으로 생각해 보는 아침이다.  한영채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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