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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나물에 볶은 콩, 나이떡, 머슴떡을 함께 나눠 먹으려 농사를 짓던 목가적인 춘분 분위기는 이제 더 이상 기대하기 어렵다. 시대가 바뀌면 풍습도 풍경도 바뀐다. 그러나 농업의 가치는 영원하다. 농사가 주업인 전형적인 농촌이 많이 사라진 지금, 농업의 의미는 사뭇 퇴색했다. 농번기 농촌의 일이란 예나 지금이나 손이 부족하기는 마찬가지다. 탈농촌·고령화 추세와 맞물려 농촌의 어려움은 더욱 심화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농업가치를 헌법에 반영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농업의 공익적 기능은 새삼 이야기할 것도 없다. 따져 보자면 홍수조절, 대기정화, 생물다양성 보전, 경관가치 제공, 식량안보 등 셀 수 없이 많다. 최근 들어 식품안전, 깨끗한 환경, 쾌적한 휴식 공간 제공 등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감안한다면 농업의 공익적 가치의 중요성은 날로 커지고 있다.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그 가치는 돈으로 환산하면 농업과 임업을 합쳐 162조 원에 이르는 엄청난 금액이라고 한다. 환경과 생태 보전, 전통문화와 농촌경관 유지, 국토의 균형발전 등 농업의 다원적 공익 기능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농업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서는 시대에 맞는 새로운 농정 이념과 정신을 헌법에 담을 필요가 있다는 이야기다.

현행 헌법에는 '농'(農)을 담고 있는 조항이 두 개 뿐이다. 제9장 제121조와 123조인데, 우선 121조에는 '국가는 농지에 관해 경자유전의 원칙이 달성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며, 농지의 소작제도는 금지한다'와 '농업 생산성의 제고와 농지의 합리적인 이용을 위하거나 불가피한 사정으로 발생하는 농지의 임대차와 위탁경영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해 인정된다'는 내용이 명시돼 있다. 또 123조에는 '국가는 농업 및 어업을 보호·육성하기 위해 농·어촌종합개발과 그 지원 등 필요한 계획을 수립·시행해야 한다'와 '국가는 농수산물의 수급균형과 유통구조의 개선에 노력해 가격안정을 도모함으로써 농·어민의 이익을 보호한다' 등이 담겨 있다.

그러나 이 두 조항 모두 30년이 지난 현재, 농업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많다. 선진국에서는 농업의 공익적 가치를 오래전부터 인정하고 법률과 정책에 명시적으로 규정하여 농업의 정책적 지원을 위한 근거를 마련해 왔다. 스위스는 '연방헌법'제 104조에 독립적으로 농업조항을 두고'농업의 공익적 기능'활성화 및 생태농업 육성을 위해 재정 지원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또한 EU는 공동농업정책을 근거로 다양한 형태의 직접지불제를 시행해 농업·농촌의 공익적 기능을 지원하고 있다.

그래서 농협을 중심으로 농업계에서는 헌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쳐왔던 것이다. 농협울산지역본부를 비롯 필자가 속한 중울산농협 등 지역농협에서는 농업의 공익 가치를 헌법에 반영하기 위한 '국민공감  1,000만 명 서명운동'을 전개했고 캠페인을 통해 공감대 확산에 나섰다. 이번 농업가치 헌법반영 운동의 핵심은 헌법에 농업·농촌의 기능과 역할, 국가의 지원의무 등을 명문화해야 한다는 점이다.

농업계의 염원인 '농업가치 헌법반영'이 9부 능선에 올랐다. 대통령과 원내 5당의 헌법 개정안에 '농업의 공익적 기능'이 반영된 것이다. 농업의 공익적 가치를 명시하고 '국가는 농수산물의 수급균형과 유통구조의 개선에 노력하여 가격 안정을 도모함으로써 농어민의 이익을 보호한다'와 '국가는 농어민의 자조조직을 육성해야 하며, 그 조직의 자율적 활동과 발전을 보장한다'는 내용을 통해 농민의 이익과 발전 보장을 약속했다.

농업을 단순히 경제논리로 보지 않고 농어촌 지원에 대한 고민이 포함됐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란 평가다. 이는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진행된 농업가치 헌법 반영 서명운동에 참여한 국민들이 보여준 적극적인 관심과 응원의 결과다. 그러나 헌법개정안 국민투표를 위한 현행 국민투표법 개정 시한이 다 됐지만, 여야의 대치 국면이 심화되면서 국회는 사실상 '마비' 상태에 빠졌다. 현재 경색된 정국을 감안하면, 지방선거와 국민투표 동시 실시는 사실상 불가능하게 됐다는 관측이 정가의 중론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앞으로 있을 국회 논의와 최종 반영이 될 때까지 '국가의 식량주권을 실현하는 생명산업'에 대한 국민의 관심과 지원이 지속되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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