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득한 봄날
최승자
통과해야만 할 아득한 봄날의 시간이
저 밖에서 선혈처럼 낭자하다.
베란다 앞 낮은 산을 뒤덮으며
패혈증처럼 숨가쁘게
어질어질 피어오르는 진달래.
눈물이 나 더는 못보고
쪽문을 소리내어 꽝 닫는다.
어떻게 견디야 할지.
내 앞에 펼쳐질
봄 꽃, 여름 잎
가을 단풍, 겨울 눈꽃
닫혀버린 집안 한구석에서
인조 장미 몇 송이가
무게도 없이 깊이깊이 가라앉는다.
△최승자 시인: 충남 연기, 수도여고, 고려대 독문과 계간 문학과지성 으로 등단, 시집 '이 시대의 사랑' '즐거운 일기' '기억의 집' '내무덤 푸르고' 번역 시집 '죽음의 엘레지' '빈센트, 빈센트, 반.고흐' '자실 연구'등
가장 아끼는 시집 몇 권이 있다. 최승자 시집이다. 어쩜 사차원적 공통점이 있는 것 같아서 일지도 모른다. 그녀는 80, 90년 절망을 그 섬뜩한 언어로 극단의 미(美)를 서슴없이 표현한 시인이다, 나이 차이는 불과 저보다 서너 살 차이지만 생(生)은 수십 년이나 더 경험해본 필력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오늘 내가 이 시를 소개하면서도 시평을 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저의 독특한 잠입문장 시론을 소개하고 싶기도 하고 이 시인에게서 극단의 잠입문구가 많이 발견되는 것 같아서 연구해 보기로 한다.
꽃잎은 무게도 없는 한낮 반투명 같은 모습으로 진달래처럼 낮은 곳에서부터 저 높은 산봉우리까지 전부를 덮어 피는 꽃은 없다. 어쩜 봄이란 감당하기도 싫은 전체의 역설인지도 모른다.
특히 '쪽문을 소리 내어 꽝 닫는다' 이 문장이 이 시의 80%라 해도 된다. 내가 생각하는 잠입문장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제가 주장하고 가끔 표현하는 독특한 기법이다. 즉 시를 읽고 독자가 무언가 머릿속에서 남아있어야 할 문장이 있다. 이것은 난 잠입문장이라고 표현하고 시(詩)를 쓴다. 난 나름의 평가기준을 볼 때 항상 이것을 최우선으로 한다. 이런 것이 없으면 난 시(詩)라고 평하지 않는다. 나의 봄날 어떻게 견디어야 할지 나도 모른다. 이것이 감당할 수 없는 이 봄의 중력이 아닐까. 박진한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