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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을 '독일은 과학, 이태리는 미술, 스칸디나비아는 공예, 미국은 비즈니스'로 받아들인다는 통설은 이들 국가 이미지를 생각하면 그리 틀리지 않은 표현인 듯하다. 이런 표현에 디자인과 우리나라를 비추어 보면 단순히 디자인을 디자인으로만 생각해버리고 마는 경향이 있다. 멋있고, 세련되게 하는 것이 디자인이라고 보는 관점이 사회의 모든 영역을 낱낱이 분해하려했던 근대산업시대 눈으로는 틀리지 않다. 미술을 고미술과 현대미술을 나누고 거기서 또 공예를 나누고 나면 디자인은 완전히 다른 영역으로 분류하는 게 우리 현실이다. 나누기 좋아해서는 21세기 특히나 미래의 산업에 중요한 주제인 통섭이나 융·복합이라는 걸 받아들이지 못하게 될지 모른다. 불과 20년 전까지는 효과는 있었다고 해도 말이다. 디지털 세계에선 이런 구분은 소용이 없다.

그런데 거의 100년 전에 벌써 미술과 디자인을 융합한 작가가 있었다. 그림이면 그림, 디자인이면 디자인, 조각이면 조각 모든 분야에서 이전과는 다른 것들을 보여주고 가르쳤던 '라슬로 모호이너지'는 현대미술과 디자인의 선구자이다. 80년대 공부할 때는 '모홀리나기'(독일식 발음)로 배웠는데, 그는 바우하우스에서 그래픽디자인, 타이포그래피디자인(문자디자인) 과목을 가르쳤고, 전시가 있으면 도록편집과 디자인을 도맡아 한 교수이다. 그는 이젤을 세우고 캔버스에 유화를 그리거나 돌이나 흙으로 조각하는 미술이 아니라, 새로운 기술을 응용하고 재료의 특성을 드러내는 방식으로 바꿔야 한다고 가르쳤다. 독일이 디자인을 과학으로 받아들인다는 평을 한 이유를 여기서 찾아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는 또 타이포그래피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했다. 타이포는 소통의 도구로 가장 적극적인 형식이므로 어떤 선입관이나 경험에 얽매여 문자를 맞추면 안 된다고 했다.

 

라슬로 모호이너지, 라이트 스페이스 모듈레이터, 혼합재료와 모터, 1930, 하버드 미  술관의 부시-라이징어 미술관소장
라슬로 모호이너지, 라이트 스페이스 모듈레이터, 혼합재료와 모터, 1930, 하버드 미 술관의 부시-라이징어 미술관소장

모호이너지는 1918년 부다페스트대학을 졸업하고 소비에트연방공화국에 공산당입당을 신청했으나 주지의 아들이라고 거부당하자 비엔나로 망명한다. 그 뒤 그로피우스의 초대로 바우하우스 교수가 된다. 나치정권에 의해 바우하우스가 폐교되고 거의 10년 뒤 다시 미국으로 망명해, 1937년 시카고에 뉴-바우하우스를 열어 미국의 디자인과 사진에 큰 영향을 끼친다. 재정난으로 바로 폐쇄됐지만 1944년에 디자인 연구소로 개명하여 명맥을 유지하려 했다. 하지만 이마저도 일리노이 공과대학에 합병되었다. 이후 일리노이대학이 디자인으로 유명하게 되었음을 두말할 것도 없다.    

러시아의 절대주의 '말레비치'의 작업에 큰 감명을 받은 그는 1930년(훨씬 이전부터 만들기 시작한 것으로 보임)에 '라이트 스페이스 모듈레이터'(Light-Space Modulator)를 공개하는데, 키네틱 아트(Kinetic Art, 움직이는 조각)의 시초라고 할 수 있다. 여러 형태로 세운 것을 전기모터로 돌리고 여기에 빛을 비추어 그림자가 움직이게 하는 장면을 구현한 작품이다. 형태를 움직여 그림자를 이용한 작품으로 속도와 시간의 변화를 느낄 수 있게 기획한 것이다. 미술개념에 대한 새로운 형식을 제안하고 실천한 것이다. 예술에서 어떤 아름다움이 존재하는가 하는 물음은 의미가 없다. 모호이너지는 다만, 자신의 시대에 자신의 지리적 위치에서 즉 역사의 한 지점에서 바라본 사회적, 문화적 현상을 작품에 반영하고자 했던 것이다.

이 작품이 소장된 곳은 하버드 미술관이다. 하버드 부속미술관이 세 곳이었는데 몇 년간 보수공사를 하면서 고전적인 건물과 유리형식의 건물을 결합한 근사한 미술관으로 2014년에 새로 개관했다. 소장품도 동서양을 넘나들고 고대부터 현대까지 시간을 초월하고 있는 아름다운 미술관이다.
마지막으로 그가 했다는 말이 의미심장하다. "21세기 문맹자는 글을 읽지 못하는 사람이 아니라, 이미지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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