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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보건복지부에서 전 국민을 대상으로 우울증 정기검진을 시작할 것이라는 보도를 접한 적이 있었다. 우울증 등의 정신질환으로 인한 자살자수가 매년 꾸준히 늘어나고 있는 상황이라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 정신건강 증진대책이 시급하다고 판단했던 것 같다.

이 시기를 전후로 하여 우리사회에 인문학 열풍이 불기 시작한 것으로 안다. 교육방송을 비롯한 주요 TV방송에서 저녁 황금시간대에 유명대학의 철학과, 종교학과 교수들을 초빙하여 노자·장자(老子·莊子)를 다루고, 칸트 등 근현대철학가들에 대한 사상을 대중 앞에서 논하기 시작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러한 열풍은 가속도가 붙어 마치 인문학 책을 읽기만 하면 우리사회의 모든 문제가 다 풀릴 것 같은 환상을 꿈꾸었었다. 하지만 우리사회에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고, 오히려 젊은이들에게는 취업준비를 위한 또 하나의 고통스런 과목이 되어 버렸다.

이것은 인문학과 철학의 본질(本質)을 모르는 어리석음에서 출발했기 때문이다. 

논어 위령공(衛靈公) 편(編)에 보면 공자가 제자인 자공에게 속내를 털어놓고 이야기 했던 대목이 있다. "子曰 賜也아 女以予爲多學而識之者與아 對曰 然하이다 非與잇가 曰 非也라 予는 一以貫之니라."(사(賜)야 너는 내가 많은 것을 배워 아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느냐?"하고 묻자 자공이 대답하기를 "그렇습니다."하고 대답하자 공자께서 "아니다, 나는 하나로 꿰뚫고 있다.

정신적인 체험의 세계를 기록한 책은 껍데기에 불과하다는 것을 모르는 체, 마치 그 글들이 진리인 양 읽고 또, 읽어 본 들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는 말과 같다. 답답한 마음에서 제자인 자공에게 인격의 완성은 이것 저것 여러 가지를 배움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 내면에 본래부터 모두 갖추어져 있는 인간본성을 체험하고 깨달음으로써 이루어진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공자가 말한 "일이관지(一以貫之)"-나는 하나로 꿰뚫고 있다-라는 표현은 다소 서툰 표현일 수도 있다. 상대적(相對的) 인식(認識)의 세계가 무너진 정신적 체험을 도저히 말로써는 표현할 길이 없기에 그저 "하나로 꿰뚫고 있다"라고 말한 것이다. 

공자의 진면목을 알기 위해서는 공자의 학문체계가 중국 북송대에 주희(朱熹: 1130~1200)에 의해 성리학(性理學)이라는 사상체계와 학문으로 진화한 것에 주목해야 한다. 성리학에 있어서 인간본성을 깨닫는 방법으로 내세운 "격물치지(格物致知)"는 불교의 "공안·화두(公案·話頭)"수행방법과 동일한 체계로서 후대 학자들이 성리학을 일러 "불교선학(禪學)의 아류(亞流)"라고 평가한 이유이기도 하다.

주희(朱熹)는 공자의 사상체계가 인간내면의 심층부에 자리잡고 있는 본성의 깨달음으로부터 터져 나온 정신적 체험의 산물이지 결코 논리적인 깊은 사유의 결과가 아님을 주장하고 있다, 이것은 주희 자신의 내면적 깨달음의 체험에서 우러나온 공감대이기도 하다.

요즘 공자가 나라를 망쳤다느니 하는 책들이 나온 것을 본 적이 있다. 이것은 공자가 나라를 망친 것이 아니라, 공자의 참 뜻을 모르는 사람들이 망친 것이라고 주장하고 싶다. 공자가 수레를 타고 온 천하를 주유(周遊)하며 주장하려 했던 것은 바로 우리 모두 참된 자기를 회복하고 올바른 가치관으로 내 이웃을 사랑하며 인생의 기쁨을 느끼며 살아달라는 말인 것이다. 

만해 한용운 선생은 "님의 침묵"이라는 시에서 "날카로운 첫키스의 추억을 남기고"라는 표현을 했다. 날카롭다는 말은 그 체험의 시간이 순간적인 짧은 시간임을 말하며 불교적인 표현으로 "돈오(頓悟)"라 할 때의 돈(頓,잠깐)에 해당한다. 첫키스는 우주(宇宙)와 하나가 되어 일체된 모양을 말한다. 

근세 실존주의(實存主義) 철학의 대표자인 칼 야스퍼스(K. Jaspers, 1883~1969, 독일)는 깊은 인생문제에 정신을 집중하여 고뇌하던 중 갑자기 내재된 본성과 계합(契合)하는 순간을 체험한 후, 이것을 포괄자(包括者, das Umgreifonde)라고 이름 붙였다. 

이는 온 우주와 자신이 하나가 되어 일체를 포괄하고 있다는 뜻이다. 후에 야스퍼스가 평생을 바쳐 유럽에 불경(佛經)를 번역하여 전파하게 된 것도 바로, 그의 체험이 내면적 깨달음임을 말해주고 있다.

이와 같이 참된 인문학은 바로 우리 내면의 초월되어 있으며, 사랑으로 가득 찬 진정한 자아를 찾아가는 것이며, 또한, 그 길로 가는 방법을 가르쳐 주는 것이다. 벌건 대낮에 손을 램프를 들고 '사람'을 찾던 그리스의 철학자 디오게네스가 생각난다. 우리 젊은이들이 헛된 망상을 버리고, 자기 자신의 내면세계에 귀를 기울여 보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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