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중유검(笑中有劍)-이제 과거의 정은이가 아니랍니다
소중유검(笑中有劍)-이제 과거의 정은이가 아니랍니다
  • 울산신문
  • 승인 2018.05.15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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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영 편집이사 겸 국장

조짐이 이상했다. 백두혈통이라니. 말갛게 차려입힌 동생을 보내 청와대에서 오빠의 친서를 전달하게 한 전략은 적중했다. 흥분한 것은 오히려 대한민국 언론이었다. 특히 공중파와 종편할 것 없이 모든 방송이 '백두혈통' 운운하며 찬양고무죄를 무색하게 하는 일이 벌어졌다. 아뿔사, 햇볕의 태양광이 분광을 일으켜 드디어 남쪽을 빛의 스펙트럼으로 장악해 버렸다.

그 때부터 지금까지 악의 축 김정은은 귀염둥이로 변했고 예의와 지성을 갖춘 지도자로 변신했다. 적어도 우리 언론에서는 말이다. 세계평화를 위해 모든 것을 던진 열혈 지도자 김정은은 이제 대한민국 방송을 넘어 세계적인 연예인급으로 포장됐고, 어처구니없게 노벨평화상의 조연으로 등장하고 있다.
그런데 그 김정은은 다른 김정은인가. 툭하면 불바다를 이야기하고 연평도를 무차별 포격했던 바로 그놈이 김정은 아닌가. 고모부와 이복형을 뭉개버리고 새벽이든 심야든 천막아래 불기둥 보며 으랏차차 광명을 외치던 바로 그놈은 다른 김정은인가. 화제만 있으면 흥분지수를 올리는 대한민국 언론을 너무나 잘 아는 듯, 김정은은 이미지 변신을 완벽하게 마쳤다. 그동안 북한방송에서 비친 모습을 통해 부정적인 인물상으로 희화화되곤 했던 김정은이 이제 긍정과 평화의 코드로 자리 잡아 귀염둥이 캐릭터로 돌변했다. 이미지 변신의 속도가 이처럼 빠른 인물이 과거에도 있었나 싶을 정도로 변신의 속도가 5G급이다.

최근 한국사회여론연구소가 대학교 1학년 학생 106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남북정상회담 이전에는 66.1%가 북한 이미지에 '부정적'이라고 답했으나 이후 57.3%가 '긍정적'이라고 답했다고 한다. 특히 김정은에 대한 이미지 변신은 놀라울 정도다. 정상회담 전에는 '긍정적'이란 대답이 단 4.7%에 불과했으나 정상회담 후에는 48.3%로 10배 이상 증가했다. 연상하는 표현도 독재자·핵·잔혹감·고도비만·폭력 등에서 솔직·호탕·젊음·유머러스·귀여움·새로움 등으로 180도 변했다.

과연 김정은이 달라졌을까. 북한 문제를 업으로 삼아온 많은 학자들은 김정은의 변신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을 보이고 있다. 김정은이 남북정상회담과 북미정상회담에 응한 것은 국제적인 경제제재와 미국의 군사압박 등으로 궁지에 몰린 탓인 만큼 진행과정을 조심스럽게 지켜보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신중론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문제는 우리 언론이다. 냄비근성에 길든 대한민국 방송은 연일 김정은 이미지 변신에 몰두하며 얼마전까지 괴물이었던 세습독재의 상징을 평화의 전사로 홍보하고 있다. 
김정은이 누구인가. 지구상에 남은 마지막 세습왕조의 후예이자 골수까지 '빨갱이'인 김일성 독재의 살아 있는 화석이다. 공산독재의 역사는 잔혹하다. 중국의 경우 40여 년간 절대권력을 휘두른 마오가 가오강과 류사오치, 린뱌오까지 찍어낸 것도 독재의 절대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였다. 공산국가의 원조인 소련 역시 그랬다. 스탈린 1인 체제하의 소련은 부표처럼 떠돌아다니던 공산주의 이론가 레온 트로츠키가 눈엣가시였다. 트로츠키는 서유럽 공산주의 지식인들 사이에서 큰 지지를 받았으나 스탈린과의 권력투쟁에서 밀렸고 결국 제거 당했다. 멕시코에서 숨어 지내던 그는 1940년 스탈린의 사주를 받은 암살자의 등산용 곡괭이에 머리를 찍히는 변을 당했다. 원조 공산국가의 독재자들을 흠모해온 김일성 역시 1인체제를 굳건히 하기 위해 피의 숙청을 마다하지 않았다. 

할아비의 코스프레라는 김정은은 고모부 장성택을 찍어내고 독재의 축을 하나로 만들었다. 그리고 지난 6년간 김정은은 군부와 노동당의 절대 복종과 충성을 강요하며 수시로 핵을 쏘아올려 김씨왕조의 세습완성을 자축했다. 문제는 패악질과 핵놀음의 뒷배가 사라졌다는 점이다. 경제재제가 강화되고 미국의 무력시위가 엄습하자 버틸 힘이 떨어졌다. 좌파정권 10년이 남긴 유산과 중국과 러시아라는 뒷배는 김정은의 역겨운 뱃살을 유지하는 영양분이지만 그 유효기간도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래서 김정은은 변신이 필요했다.

미국과의 한판 대좌를 벌이기 전에 김정은이 해야 할 일은 분명했다. 이른바 시진핑 보험이다. 요미우리는 지난 7~8일 중국 다롄에서 열린 북·중 회담에서 김정은이 시진핑에게 "미국이 비핵화를 완료하면 경제적 지원을 하겠다고 하지만, 약속을 지킬지 믿을 수 없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시진핑의 답은 합의하면 지원한다는 조건이었다. 외신들은 시진핑으로부터 경제 지원에 대해 전향적인 발언을 얻어낸 김정은이 평양으로 돌아온 다음날 폼페이오 국무장관을 만났고, 이 자리에서 완전한 비핵화 의사를 전했다고 보도했다.

보험에 남쪽의 우호지분까지 확보한 김정은의 행보는 말 그대로 예능급이다. 이제 그의 행보를 두고 욕지거리를 뱉으면 이상한 사람이 되는 묘한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김정은의 변신이 북녘동포들에게는 햇살이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아는 탈북민들이 고향사람들을 위해 전단지에 칩과 달러를 넣어 날리는 행위는 반역이 됐다. 어느 날 불시에 강제로 붙잡혀 고문과 노역을 당했던 억류미국인들을 풀어주는 순간 김정은은 은혜로운 인간으로 돌변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그래서 김정은은 웃는다. 가능한 남쪽 방송의 카메라가 비치는 곳이라면 언제 어느 때라도 두툼한 볼살을 삐죽거리며 나는 옛날의 정은이가 아니라고 두손 비비며 이야기 한다. 역겹지만 현실이 그렇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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