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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들의 식사

이경례

땅따먹기 하고 있다 꽃들이
한뼘한뼘 손가락을 부채처럼 펼쳐서
환한 허공을 야금야금 따 먹고 있다
키가 멀대같은 감나무 옆구리에 붙어
산수유나무가
연신 웃음꽃 피우고 있다
봄날의 승승장구에 기세등등한 산수유 꽃잎들이
허공 두레상에 둘러앉는다
아래층일랑은 산수유에게 다 내어 주고
위층을 소리 꽃들이 먹는다고
나잇살만 먹었지 잔꾀라곤 도무지 모르는 감나무의
두툼한 손바닥으로
시끌시끌 새들 날아와 꽃 피우고 있다
양푼에 숟가락 걸쳐
허공에 가득한 봄을 맛나게 먹는다
풋것에 비빈 찬밥을 너도나도
긁어 먹는다
사이좋게 꽃들끼리 나눠먹는다
달디 단 허공, 한 채가
먹어도 먹어도 줄지 않고
자꾸 늘어난다

△이경례: 울산 생, 2006년 '심상' 신인상, 2009년 '영남일보' 문학상으로 등단. 시집 '오래된 글자'

 

한영채 시인
한영채 시인

19세기 인상파 에두아르 마네의 '풀밭위의 식사'가 생각납니다. 작품 속에서 나체의 젊은 여성과 신사들이 앉아 점심을 먹는 장면, 푸르른 풀밭 위에 꽃들의 식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산수유 목련 모란이 지고 장미의 계절 오월의 꽃들이 웃기 시작했습니다. 지나가는 행인을 보고 응시 하듯이 손짓을 하듯이 꽃들은 저마다 땅따먹기 하듯 피기 시작했습니다. 손을 뻗어 허공을 야금야금 먹기도 합니다. 이제 느림보 감나무가 잎을 틔웁니다. 시끌시끌 새들이 날아와 지저귀자 손바닥만한 이파리를 키웁니다. 허공을 빌어 봄꽃들은 허공 양푼으로 향기를 비빕니다. 사이좋게 꽃들이 나눠 먹습니다. 지나가는 오월의 그림자도 나눠 가집니다. 울산에서 활동하는 이경례 시인은 달디단 허공, 한 채가 먹어도 먹어도 경계가 줄지 않고 자꾸만 늘어 가는 오월이라고 합니다.
경주 불국사 옆자리에 '동리목월 문학관'이 아담하게 자리하고 있습니다. 저도 한 때 사월 목련이 흐드러진 입구 터널을 몇 해 건너다닌 적이 있습니다. 시작(詩作) 수업을 거리에서 하듯 독수리 오형제가 날기도 했습니다. 울산에서 경주까지 시를 좋아 하는 문우와 함께한 시간을 새록새록 기억합니다. 서둘러 문학관으로 가기 전 벚꽃 핀 불국사 뜰을 거닐기도 하고 그늘아래 자릴 펴고 김밥과 차를 나눠먹으며 풀밭 위의 식사로 즐거운 한 때가 있었습니다. 마네가 봤으면 어땠을까요? 오월의 꽃들이 나체로 다가옵니다. 그들의 향기는 만리를 갑니다. 우리들의 풀밭 위 만찬의 기억도 오랜 시간을 차지 할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가위 바위 보 땅따먹기 한번 해 볼까요?
 한영채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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