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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미래를 비추는 거울이다.
한반도에 봄기운이 감돌고 다시 명운이 걸린 북미회담을 기다리고 있는 즈음에 이 말을 음미하며 민족을 갈라놓던 역사를 돌아보는 것은 결코 무의미한 일이 아닐 것이란 생각이다.

근대사의 해방정국에서 백범김구는 이승만 전대통령과 함께 양대 축인 인물이면서 각기 다른 주장으로 다투고 대립하는 라이벌이었다. 흔히 백범을 우직한 인물로 평하지만 과연 그는 우직하기로 말하자면 세상 누구도 대적할 수 없는 정치가였다. 길을 가다가 마주친 일본군장교를 맨손으로 때려눕히고 그의 칼을 빼앗아 가슴에 꽂은 다음 흘러나오는 피를 빨아먹은 백범의 우직함은 말 그대로 단적이었다. 그러나 그 우뚝한 민족지도자의 가슴에 끓고 있던 애국정신을 누가 따라갈 수 있을까? 모스크바3상회의(미·영·소)에서 한반도를 5년 동안 신탁통치하기로 결정하자 이승만과 김구는 다 같이 뜻을 모으고 반대했었다. 그러다가 이승만이 남한단독정부를 먼저 수립한다는 주장을 함으로써 두 사람은 의견 차이를 못 좁히고 그만 돌아서고 말았다. 백범은 단일민족인 우리가 어떻게 둘로 나뉘어 살 수 있는가? 하는 주장을 하고 극구 반대하고 나섰다. 이승만으로서는 서둘지 않으면 남한마저도 민주정부를 세우는 일이 잘못될 수 있다는 것이었고 백범은 그렇게 하면 북쪽의 정부를 세우는데 빌미를 주고 남북이 갈리게 될 것이란 주장이었다. 백범은 단호했다. 김일성을 만나 담판을 짓겠다고 평양행을 서두르게 된다.

백범이 평양을 가면서 3.8선에 이르렀을 때 반대파 시위대가 나타나 길을 막았다. 그들의 강력한 저지를 아랑곳하지 않는 백범은 뇌성 같은 소리를 질렀다. 황소 백 마리를 끌고 와서 나를 잡아당겨도 민족이 둘로 나뉘어 살 수 없다는 나의 주장을 한 치도 물러서게 할 수 없을 것이다. 길을 비켜라! 갈 길이 바쁘다! 그렇게 달려간 백범이 김일성을 만났으나 이미 늦은 때였다. 김일성은 소련군이었고 소련군의 점령 하에 있게 된 북한이었다.

백범은 돌아와 구국운동에 혼신을 다했으나 하늘은 끝내 그에게 기회를 허락하지 않은 채 위대한 민족지도자를 조국과 영원히 떨어지게 하고는 생명까지 거두어들이고 말았다. 민족이 울고 산천초목이 함께 울었던 죽음이었다. 배후에 숨은 자의 사주를 받은 안두희의 총탄이 최후로 몰아넣고만 것이었다.

북한에 진출한 소련군은 남한의 미군과 달리 6만3,000명의 일본군을 무장 해제시키고 억류하여 시베리아 등지로 보내 노역에 종사시켰다. 만주나 북한에 거주하는 일본인 관리들도 그와 같은 신세를 변치 못했다. 해방의 기쁨을 안고 돌아오는 해외 동포들도 많았고 학도병으로 끌려갔던 장정들이 물밀듯이 고국으로 몰려오고 있었던 그런 시기에 아니 모두가 가슴벅차있을 그 때 조국 땅에는 쐐기가 박혀버렸다. 소련군이 3.8선의 왕래를 막아버렸기 때문이다.

3.8선은 남북이 넘나들 수 없는 사선이 되어버렸다. 돌아보면 우리는 8.15 해방을 맞았을 때 모두가 하나 되어 열광했었다. 그러나 그 열광은 완전한 광복에 의한 열광이 아니었다. 완전한 광복은 한반도에서 삶을 누리는 모두에게 담겨져 같이 열광하고 새 출발을 해야 할 것인데 둘로 갈라진 채 기회를 놓쳐버린 우리였다.

다시 말해 이승만과 김구가 같이 하지 못 해 원통한 일이지만 그런 대로 두 민족지도자로부터 이어진 사상이 한쪽은 보수로 또 한쪽은 진보로서 각기 저마다 나라발전에 이바지했다. 한쪽이 산업발전으로 나라를 지켰으며 또 한쪽은 민주사회를 이룩한 것이다. 어느 길을 가야 할 것인가? 갈 길은 뻔하다. 민주주의가 꽃 피는 자유의 나라,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평화를 구가 하는 통일된 나라가 될 때까지 달려가는 길이다. 이 소망의 길로 가기 위한 염원이 녹아 기적 같이 우리에게 감동으로 찾아온 것이 판문점 남북정상회담이었다. 지구상에서 가장 살벌하게 선을 긋고 철책으로 막아 지뢰를 묻은 결계선. 그 꿈에도 사무치는 경계를 훌쩍 넘어 기적같이 그가 성큼 성큼 걸어와서 대통령의 손을 잡고 말했다.

"이렇게 쉽게 올 수 있는 길이 왜 그렇게 멀어보였던지…" 하는 순간 세계가 놀라고 지독하게 밉던 그의 얼굴이 환해보였다. 야합이나 쇼가 아닌 것으로 보였다. 그 시간 TV를 시청한 많은 국민들도 형용할 수 없는 감동을 느꼈을 게 분명해 보인다. 문제는 지금부터 우리가 가져야 할 마음 자세다. 북미 회담을 지켜보면서 들뜨지 말고 지극히 냉정하게 지극히 냉철한 편견 없는 마음으로 나라를 위한 한 마음이 되는 것이다. 맥스선더 훈련을 이유로 고위급회담을 무기한 연기한 북한이다. 앞으로도 어떤 이유로 이 같은 일이 있을지 모른다. 그래서 더욱 담담하고 차분해야한다. 해방정국의 두 민족지도자가 다툼과 대립으로 같이 하지 못한 하나의 뜻, 그것을 거울로 삼아 모두가 하나의 뜻으로 뭉쳐야 한다. 그리고 이 민족이 융성하며 웅비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치지 않을 때 후손들에게 진정한 평화의 나라를 물려준 자랑스런 선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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