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詩선] 건미역
[시인의 詩선] 건미역
  • 울산신문
  • 승인 2018.05.22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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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미역

이미희

물 만난 줄기, 딸려오는 바닷소리들
폭염으로 주저앉던 어느 날의 상고가
이파리들의 생기를 돋운다.
거룩한 물빛을 두르고 태어난 우리처럼
저도 그럴 때가 있었나 보다
양수와 놀던 응석들이 물물이 돋아난다

바다의 배꼽에서 나온 질긴 탯줄
자잘한 물결이
파도를 긁어내고 물살을 벗겨내
처절한 뿌리를 내린 것이다
포말이 숨구멍 제재로 아물 때까지
새살이 오르고 덧 올라 차오른 것이다

물속이 꽉 찬다
원초의 웃음보다 더 우렁찬 헤엄
타임캡슐이 기억하는 바다들이
한 가닥 한 가닥 미끄럼질 한다
세상이 마르기 전까진
절대 말라가서는 안 된다
그는 까맣게 타들어 간 것이 아니라
환하게 부풀기를 꿈꾸었을 뿐

△이미희 시인: 울산, 한국방송통신대학 국어국문과, 에세이문예 수필등단, 시세계 시등단, 한국에세이 작품상 수상, 등대문학상, 동서 문학상, 포항바다 문학재 공모전 수상, 국제펜한국본부 회원, 울산문인협회 회원, 남구 문학회 사무국장, 시나브로 시문학 동인회 회원, 시집 '꽃물을 보았니'.

 

박진한 시인
박진한 시인

건미역을 읽으면서 한편의 선명한 영화를 본다. 시인은 어린 시절 바닷가에서 놀던 것들에 대한 자잘한 그리움을 마른미역이 물에서 부풀어 오르는 만큼이나 회상을 잡고 싶어 한다.
첫 화면부터 서서히 밝아오는 페이드인(Fade in), 화면을 끼워 넣는 인서트(Insert), 미역과 어린 시절의 비유적 형상 기법이면서 영상의 오버랩(Over Lap)과 같으며, 현재에서의 타임캡슐 안을 들여다 보는 클로즈업(Close Up)까지, 시인이 영화 기법을 의도적인지는 모르지만 독특한 개성이 드러나 있다. 읽다 보면 '정지용의 유리창'과 같이 조용하면서 내면의 강력한 느낌을 표현하고 있다. 감춤과 드러남의 비중이 적절히 표현되어, 마치 화면을 몇 장면(Scenes)보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시인이 계획적이든 아니든 '물속이 꽉 찬다'는 그날을 만나 그랬었지, 끝없이 부풀려 내고 싶은 감정과 '절대 말라가서는 안 된다'면서 세월을 잡고 싶기도 하다. 과거를 잡으면서 인서트인(Insert in) 화면을 점점 둥글게 키우는 기법까지 동원된 느낌이다.
시(詩)는 독자가 어떻게 읽느냐에 따라 감정이 다르다. 아마도 나의 해석이 시인과는 다소 거리가 있을 수도 있지만, 평을 하는 입장에서, 같은 시인으로서 나름의 개성이 있다. 저는 잠입문장이란 것을 쓰고 있다. 이 시는 시론과 시나리오 기법을 섞임을 볼 때 내레이션(Narration) 기법이 우선하면서 특별한 무게를 만들었다 천근.
박진한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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