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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2학기 대학원 박사과정 사회철학, 고전윤리학 수업은 나에게 여러 가지로 의미가 깊었던 수업이었다. 학부에서 부족했던 지식을 쌓을 수 있게 되어, 학생들에게 조금 더 깊이 있는 지식을 전달할 수 있었다. 그리고 전공인 교육학 과목이 아닌 철학과 수업을 통해 공부의 영역을 확장하며 학문간의 교류를 스스로 체험할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이었다.

사실 이 두 가지 의미보다 나에게 가장 큰 의미는 바로 내가 몰랐던 일반 시민의 인문학에 대한 열정이었다. 사실 교육학 전공 수업은 대부분 나처럼 교사분들이라서 수업의 구성원에 대해서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철학과 대학원 수업은 기존의 내가 석사와 박사과정을 포함하여 다녔던 대학원과 확연히 달랐다.

나의 전공인 교육학 수업을 듣는 분들은 거의 교사분들이다. 직업이나 하는 일이 모두 비슷하다. 철학과 수업을 듣는 분들은 같은 직업인 분들이 한 분도 없었다. 지역의 행정기관 및 대기업에 근무했던 고위직 퇴직자, 지역 의과대학 교수, 약사, 일반 가정주부 등 내가 가지고 있던 생각으로는 대학원 철학과 수업에 다소 낯설어 보이는 분들이었다. 

식사를 하고 차를 마시면서, 조심스럽게 대학원을 오게 된 동기와 왜 철학과를 택하셨는지를 물어보았다. 한 분씩 공부를 하게 된 동기를 들을 때마다 대단하다는 놀라움과 교육 분야에 종사자로서의 부끄러움이 내 마음속에 공존하였다.

퇴직 후에 또는 여가시간에 해외여행, 쇼핑, 텃밭 가꾸기, 골프, 종교활동 등 다양한 활동을 해 보았지만 항상 무언가 공허한 느낌이 들었는데 독서 모임 활동을 하면서 책과 사람들과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면서 그 허전한 것이 채워지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래서 조금 더 삶에 대한 깊이 있는 공부를 하고 싶어서 지역에 강좌들을 찾아 보았지만, 인문학과 관련한 강좌는 찾기가 어려워 대학원을 택하게 되었다고 하였다.

인문학에 대한 갈증과 욕구를 느끼시는 분들이 생각보다 지역에 많다는 것이 더 놀라웠다. 하지만 이분들의 갈증과 욕구를 해소하는데 지역의 여건이 좋지 않다는 것이 안타까웠다.

이러한 안타까운 마음만 가져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사회철학 수업에 참가하시는 몇몇 뜻있는 분들이 일반 시민이 가장 친근하게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학교에서 인문학 강좌를 열어봄이 어떻겠냐고 제안을 하셨다. 그래서 이왕이면 학교에 학생들과 학부모님들도 함께하면 더욱더 의미 있는 강좌가 될 수 있을 것 같아 교장선생님께 제안을 드렸고, 흔쾌히 승낙해주시고 적극적으로 도와주셔서 '울산 시민과 함께하는 철학아카데미'가 탄생하게 되었다.

지난 4월 14일 토요일에 첫 개강을 한 '울산 시민과 함께하는 철학아카데미'는 강연 제목 그대로 울산 시민이면 누구나 참가할 수 있으며, 월 1~2회 진행되고, 매 회 마다 한 가지 주제를 가지고 2시간 동안 울산대 철학과 김진 교수님 강의와 참가자들의 질문과 토론으로 진행된다. 

첫 수업은 철학이란 무엇인가를 가지고 교수님의 강의와 참가자들의 질문과 교수님의 답변으로 수업이 진행됐다. 사실 철학이라는 학문이 어렵고 추상적이라는 편견으로 수업이 지루하지 않을까라는 걱정을 많이 했다. 하지만 첫 번째 강의에 참가하신 분들 모두 이번 아카데미가 제목 그대로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보니 세대 간의 다양한 생각을 들어보며, 공감할 수 있는 시간을 갖게 되어서 너무 좋았다고 하였다.

서울이나 수도권지역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광역단체가 중심이 되어 인문학 강의와 비교하면 우리의 아카데미는 규모에 있어서는 비교를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번 아카데미는 이제 지역의 초, 중, 고등학교가 학생뿐만 아니라 지역민들과 '인문학'이라는 주제로 함께 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주었기에 그 의미가 남다르다고 생각한다. 학교라는 곳이 이제 자라나는 청소년들만의 학업의 공간이 아니라 지역민의 학습과 문화의 공간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동안 울산은 산업도시로서 이미지가 강하여 인문학과는 다소 거리가 멀게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시교육청에서 주관하는 독서, 인문학 강연이 내가 근무하고 있는 학교에서의 '열린 강좌'로 확산된다면 '산업도시 울산'이 아닌 '인문학 도시 울산'으로 바뀌지 않을까 생각한다.

작년과 올해 화제가 되고 있는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 '호모 데우스'에서 미래사회에서 인간이 살아남을 수 있는 최고의 무기는 바로 상상력과 소통이라고 하였다. 이번 아카데미를 통해 조금 더 많은 사람들이 참가하여 철학을 통해 상상력을 키우고, 다양한 사람들과 소통의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 인문학은 그 누구를 위한 것이 아니라 바로 나를 위한 가장 이타적인 공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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