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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뚱한 수리점에서는 무엇을 고칠 수 있을까요? 저녁이 되면 엉뚱한 수리점 문 앞에는 수리할 물건을 들고 온 어른들이 줄을 서기 시작했어요. 소이가 보기에 그 물건들은 고장난 곳이 없어 보였어요. 소이는 어른들을 유심히 지켜보다가 의자에 앉아있는 아저씨에게 다가가 왜 멀쩡한 의자를 가지고 왔냐고 물었어요. 아저씨는 삐거덕거리는 곳을 찾아야 하니까 조용히 해달라고 합니다. 소이는 자기 방 의자도 삐거덕하지만 정말 재미있다면서 자기 의자도 고쳐야할지 물어봅니다.
방귀 소리가 너무 커서 고치러 왔다는 아저씨에게는 친구들이 들었다면 다 좋아했을텐데 왜 고치려고 하는지 되묻는답니다. 옷장 안에 넣은 물건을 도무지 찾을 수가 없어서 수리하러 왔다는 아저씨에게는 숨바꼭질할 때 숨으면 딱 좋겠다고 합니다. 쓸모없다는 강아지풀도, 물웅덩이도, 김이 서리는 거울도 재미있는 놀잇감으로 여기는 소이에게는 고칠 물건으로 보이지 않는데 어른들은 모두 불편해하고 있습니다. 


"너는 뭘 고치러 왔니? 아저씨는 무엇이든 고칠 수 있단다. 말해 보렴"
"정말요? 그럼 이 빗자루가 진짜 새처럼 날 수 있게 고쳐 주세요! 빗자루를 타고 구름 위를 날아 보고 싶어요"
"뭐라고? 진짜 새처럼 날 수 있게 고쳐 달라고? 그렇게 만들 수는 없어. 하지만 청소할 때 쓰는 빗자루로 튼튼하게 고칠 수는 있지. 그렇게 고쳐줄까?"
깜짝 놀란 소이는 도망치듯 집으로 돌아와 창문 밖 수리점을 보면서 생각했어요.
'왜 재미있는 걸 재미없게 만들려고 하는 걸까? 난 절대 고치지 않을 거야'
 

장경숙 아동문학가
장경숙 아동문학가

쓸모 있는 것과 쓸모없는 것을 정하는 기준은 무엇일까요? 누가 그 기준을 정할 수 있을까요? 주인공 소이의 눈높이로 바라본 어른들의 세상은 너무나 재미없어 보입니다. 작가는 똑같은 잣대로 상대를 바라보고 평가하는 어른들에게 일침을 가합니다. 착한 사람과 나쁜 사람, 좋은 것과 나쁜 것으로 나누는 이분법적인 사고를 아이들에게 강요하고 있지는 않는지 되돌아보게 만듭니다.
물을 만나면 물을 맞고 놀고, 눈이 내리면 뛰어나가 눈을 즐길 줄 아는 아이들에게 물웅덩이를 메우고 눈을 치우는 어른들의 모습이 어떻게 보일까요? 웅덩이를 메우고 소음을 줄이고 눈을 치우는 것이 동심을 앗아가는 행위임을 어른들은 알기나 하는 것일까요? 노는 방법마저도 학원에서 배워야만 하는 세상입니다. '엉뚱한 수리점'에서 빗자루를 타고 노는 소이에게 기발하고 엉뚱한 상상을 배워보는 것은 어떨까요?  
 아동문학가 장경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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