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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울주군 언양읍 반구대 안길 285번지에 있는 집청정(集淸亭)이 있다. 조선 숙종 39년(1713) 운암(雲巖) 최신기(崔信基, 1673∼1737)가 건립한 정자이다. 집청정은 반구정(盤龜亭)으로도 불렸다.

운암은 집청정 바로 앞 시냇가 바위면에 반구(盤龜)라는 한자를 크게 새겼다. 또한 같은 바위에 학(鶴)를 새겼다. 학 머리부분 위에는 학소대(鶴巢臺)라는 한자를 작게 음각했다. 이러한 사실은 조선 영조 때의 학자 식산(息山) 이만부(李萬敷·1664~1732)가 쓴『식산선생별집』<반구기(盤龜記)〉에서 확인된다.

학을 새긴 바위를 조선 말기 학자 포산(苞山:현재 현풍) 사람 눌제(訥齊) 곽전(1839년∼1911)은 시(詩)를 통해 화학암(畵鶴巖)이라 불렀다(울산 삼호동의 눌재삼거리와 눌재로는 곽전의 호를 딴 도로 이름이다). 또한 생몰년 미상인 오명혁(吳命爀)은 암학(岩鶴)이라 했다.

같은 실물 크기의 오산(鰲山) 태화강가 바위에 새긴 학은 천학(天鶴)이라 불렀다. 집청정 앞으로 흐르는 계곡이 대곡(大谷)이다. 대곡의 풍광을 승람하기위해 전국의 시인묵객들이 집청정을 찾아 작품을 남겼다. 그 자료를 운암의 9세손 최경환이'집청정시집'으로 정리했다.

그 후 울산대곡박물관(관장 신형석)에서 성범중 교수(울산대 국어국문학부)의 역주로『역주 집청정시집(譯註 集淸亭詩集)』(2016)을 발간했다. 시집속에는 집청정을 다녀간 283명(중복 23명)이 지은 주옥같은 한시 406수가 수록돼있다. 시에는 주로 집청정 주변의 풍광을 표현하고 있다.

그 한시중에 노학(老鶴), 태금(胎禽), 선학(仙鶴), 백학(白鶴), 청학(靑鶴), 생학(笙鶴), 현학(玄鶴), 유조(幽鳥), 우객(羽客), 학령(鶴翎), 등 학 상징 시어(詩語)를 표현한 81수를 확인했다. 특히 운암이 직접 큰 바위에 새긴 학과 학소대 글자는 350여년이 지난 현재에도 뚜렷하다. 유인(幽人)은 어지러운 사바세상을 떠나 그윽한 곳으로 들어가 사는 은자(隱者)를 가리키는 말이다. 유조(幽鳥) 역시 은자를 비유하여 골짜기 넓은 습지인 구고에 사는 학을 가리키는 말이다.

81수 가운데 학이 표현된 대표적 싯적 표현을 소개한다.

'달이 밝은 때에는 석대(石臺) 앞에서 학 울음소리를 듣네(臺前聽鶴月明時)','소나무가 늙었거늘 학이 춤출 때가 없겠는가?(松老可無鶴舞時)','햇살과 바람 속으로 신선의 수레인 양 학이 지나가네(仙光風過鶴翎)','학은 차 달이는 연기를 피하여 난간 밖으로 오네(鶴避茶烟檻外來)','벼랑 가운데에 깃들인 한 마리 학이 갑자기 보이는데(半壁忽看棲獨鶴)','반구대에는 학도 머물고 있네(盤龜鶴亦留)','골짜기에는 천년 사는 학이 춤을 추고(洞舞千年鶴)'黃濂,'오래된 소나무는 늙은 학이 깃든 곳임을 알수 있고...(松古可知老鶴處)','학이 우는 때는 달빛이 소나무 그림자를 채로 치네...(月篩松影鶴鳴時)','시내가 내는 소리는 구름 속의 학 울음소리인 듯하네...(溪響聲疑雲鶴鳴)','늙은 중은 깊은 구름 속에 깃들인 학을 엿보고...(深雲老釋窺捿鶴)', '늙은 학이 어느 해에 떠났기에...(老鶴何年去)', '울리는 생황과 섬세한 춤은 오늘 필요하지만...(鳴笙細舞要今日)', '이내 오르는 구름 끝에는 푸른 학이 소리를 내네...(嵐高雲末鶴音靑)' ,'천년의 일월에 학은 늙어가네(日月千年鶴老時)', '숲속의 학은 누른 가시나무 지팡이를 맞이하여 춤추고(林鶴舞迎黃棘策)','옥피리 소리에 검은 학이 춤추고(玉簫舞玄鶴)' 등 이다.

이와같이 학이 지속적으로 시어로 등장할수 있었던 것은 집청정 마주보는 계곡 큰 바위에 새겨진 학이 있기 때문에 대곡과 집청정을 찾은 시인묵객들에게 자연스럽게 끌어다 쓰는데 별 무리가 없었던 것이다.

소개한 싯구에 보듯이 시인이 사용한 시어 학은 생학, 청학 등으로 각자 다르게 표현하고 있지만 학(鶴)을 소재로하고있다는 점에서는 일치하고 있다. 이러한 표현은 생물학적 혹은 자연과학적 관찰보다는 모두 인문학적 상징으로 접근했지만 아름다운 시적 표현임은 누구도 부정못할 것이다.

특히'벼랑 가운데에 깃들인 한 마리 학이 갑자기 보이는데','반구대에는 학도 머물고 있네(盤龜鶴亦留)'라는 싯구는 화학암을 배경으로 활용했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다. 현재도 집청정 부근에는 경관이 좋아 많은 사람이 찾는다. 굽이굽이 흐르는 대곡천으로 학이 날아들어 두 나래를 훨씬펴서 우쭐우쭐 춤을 추었을 것이라는 상상은 예나 지금이나 한결같다는 생각을 지울수는 없다.

현재 울산 지명 변천사 가운데 화성(火城), 굴화(屈火), 개지변(皆知邊) 등은 모두 넓은 습지를 의미하는 명칭이다. 마채, 삼산, 대도섬 등 염전이 바탕된 염포 이름 역시 넓은 습지가있기에 가능했다. 더불어 광활한 습지는 뜸부기, 오리류, 도요류, 황새, 두루미 등 다양한 물새들의 건강한 서식지였다.

학은 상상의 새인 봉황과 달리 실제적 동물이며 조류 가운데 몸집이 대형이다. 새중에 큰 키에 붉은색 이마, 흰 색과 검은 색이 적절하게 조화된 고운 깃털을 갖고있으면 다른 새들이 모두 그를 부러워한다. 학이 그렇다. 울음소리 또한 크고 길게 우는 생태를 천성적으로 타고났다.  수 많은 닭 무리에 한 마리의 학이라는 상징적 의미의 군계일학(群鷄一鶴)이라는 표현 역시 양보다 질이라는 의미를 적절하게 표현한 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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