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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여년 전 아네스 수녀님은 학성동에서 '요셉의 집'을 열고 울산에서 처음으로 무료급식 운동을 전개했다. 하지만 끝내 공짜 점심은 없었다. 누구나 100원 이상을 내도록 했다. 

무료급식소가 굳이 돈을 받는 이유를 물었더니 가난하다고 모두 공짜를 바라지 않으며 100원이라도 낼 수 있는 능력과 자존감을 존중하면서 혹 누군가의 공짜 심리를 경계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지금 골목마다 동네마다 예능학원이나 소규모 강사활동가들이 하나둘 사라지고 있다. 울산시나 구군이 모두 전국을 도는 서울의 유명 강사를 데려와 하는 공짜 강좌 때문이다. 문화복지를 늘리겠다는 취지는 좋으나 시민의 세금으로 뜨내기 같은 강사에게 고액을 주고 자기 시민은 죽이고 있다. 그것도 우리 세금을 제 맘대로 쓰고 있다. 

'국공립'이란 글자를 달고 있는 시설, 특히 어린이집이나 미술관·박물관도 이용하는데 점차 무료가 늘어나고 있다. 당연히 사립 시설들은 직격탄을 맞는다. 세상에 공짜를 마다할 사람이 얼마나 될까. 주차비 몇 천원도 따지면서 잔돈을 꼭 챙기는게 세상 인심이다. 어느 시설이나 한 달에 한 번 무료입장을 실시한다면 단돈 1,000원인데도 로또 맞은 듯 환호한다.

돌아 온 선거철에 어김없이 '공짜 공약'이 넘치고 있다. 후보들이 공짜 복지 공약을 남발하기 때문이다. 무상급식은 이제 더이상 공약도 아니게 됐다. 너도나도 무상급식에 무상 교복, 무상 교과서, 무상 수학여행, 청년수당, 취준생 수당, 결혼비용 지원에 무상 산후조리원 운영, 노인 버스요금 무료, 가정용 태양광 지원 등 전국적으로 공짜 공약이 차고 넘친다. 

아이만 낳으면 죽을 때까지 모든 걸 공짜로 해주겠다는 후보가 나올 판이다. 학교만 가면 아침 점심 저녁을 무상으로 먹이고 등·하교 교통비까지 대주겠다고 할지 모른다. 문제는 실현가능성이고 예산이다. 

그런데 정작 후보들은 예산에 대해 말하고 있지 않다. 무슨 돈으로 할 것인지 곳간 걱정하는 후보가 없다. 대체 무상 복지에 드는 그 많은 돈을 누가, 어떻게 마련하겠단 말인가. 당장 먹기는 곶감이 달다. 그렇다고 유권자가 유혹을 당해서는 안 된다. 선거에는 똑똑한 유권자가 필요하다. 재원 대책을 따져보는 등 공약을 꼼꼼히 살펴보고 옥석을 가려줘야 한다. 공짜 복지는 결국 내가 내야 하는 세금이다. 그 공짜는 미래 세대에게 무거운 짐으로 넘어간다. 

지난 대선 공약이었던 '명절 고속도로 통행료 면제'를 보자. 빚에 허덕이던 한국도로공사는 이 공약 실행으로 1,000여억원 매출 손실을 감수했다고 한다. 서울시는 미세먼지 대책으로 시내 차량 운행을 줄이겠다고 지난 1월 사흘간 지하철 요금을 면제하느라 150억원의 예산을 썼다. 지난해 신고리 5·6호기 원전 건설 중단으로 인한 손실 1,200억원도 관할 공기업인 한국수력원자력이 떠안았지 않은가.  이게 다 누구 호주머니에서 나온 돈인가 말이다. 모두에게 공짜로 다 주겠다는 정책은 누구나 쉽게 내 놓을 수 있다. 유권자를 끌어당기는 달콤한 유혹이다. 하지만 한번 시행되면 국가·지방 재정에 큰 부담을 주는 반면 모든 부담은 우리가 져야 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세계 최초로 기본소득 정책을 실시했던 핀란드가 2년여 실험만에 이를 중단했다. 스위스 국민들은 성인 1인당 매달 270만원을 주겠다는 기본소득 법안을 국민투표에서 스스로 부결시켰다. 국민 77%가 반대해 없던 일로 했다. 스위스와 핀란드의 인구는 각각 850여만명과 550여만명으로 우리보다 훨씬 적은 나라인데도 우리보다 부자다. 이런 부자 나라들도 미래 재정이 걱정돼 보편복지를 조심스럽게 실험하는 현실이다. 

공짜 치즈는 쥐덫에만 있다고 하지 않는가. 공짜 점심은 없다는 말처럼 이 세상에 정말 공짜는 없다. 공짜를 위한 돈이 문제이고 내가 공짜로 뭔가를 얻어가면 누군가는 반드시 그와 같은 대가를 치러야 하는게 세상 이치다. 정부는 다른 예산을 줄이거나 세금을 더 거두거나 빚을 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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