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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해서 컴퓨터를 켜고 업무를 살펴보는데 갑자기 눈앞에 책이 쑥 나타났다. "읍장님, 우리 군 올해의 책 선포식에 선정된 책인데 읍장님이 먼저 읽어 보세요" 하며 직원이 책을 보여주었다.
울주 성인의 책으로 선정된 이기주 작가의 '말의 품격'이었다.

아뿔싸, 이 책은 벌써 읽었는데. 어쩔 수 없이 직원들이 읽어보라니 나는 '날마다 말의 품격을 생각하는 사람이 되자'라고 한줄 소감을 간단하게 적고 우리 직원들도 이 책을 읽고 말의 품격을 높이자고 덧붙였다. 

이 책을 읽으면서 느낀 점 중 하나는 오늘날 우리는 품격(品格)이란 말을 사주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품격이란 무엇일까? 책을 읽는 내내 품격이란 단어가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그는 책 서문에서 이렇게 적고 있다.

'나는 인간의 말이 나름의 귀소 본능을 갖고 있다고 믿는다. 언어는 강물을 거슬러 오르는 연어처럼, 태어난 곳으로 되돌아가려는 무의식적인 본능을 지니고 있다. 사람의 입에서 태어난 말은 입 밖으로 나오는 순간 그냥 흩어지지 않는다. 돌고 돌아 어느새 말을 내뱉은 사람의 귀와 몸으로 다시 스며든다.'

말의 본성과 중요성을 이야기한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우리는 설화(舌禍)의 무서움을 정확하게 알아야 한다. 누구나 사회생활을 하면서 많은 말을 하게 된다. 말은 타인과 의사소통을 하는 방법이다. 그런데 이 말이 종종 실수를 한다. 그 이유는 말은 누구나 너무도 쉽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마치 숨쉬기처럼 쉬운 것이다. 그것의 큰 단점은 실수를 또 쉽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실수가 사람들을 폐인(廢人)으로도 만든다.

나 역시 남들 앞에서 말을 하는 것이 어렵다. 그래서 될 수 있으면 앞에 나서지 않으려고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서게 되면 간단하게 할 말만 하고 정작에 해야 할 말은 제대로 못하고 마칠 때가 많다. 그래서 말을 잘하는 사람을 보면 무척 부럽다. 이렇게 된 것은 물론 내 잘못이 크지만 한편으로는 고등학교 국어시간에 처음 만난 논어(論語)의 문장과도 상관이 있다. 지금도 틈틈이 논어를 읽지만 그때 논어는 정말 대단한 책이었다.

특히 제1편 학이(學而)편 첫 문장인 '학이시습지, 불역열호(學而時習之, 不易亦說乎)'와 '교언영색, 선의인(巧言令色, 鮮矣仁)'이란 문장이 그렇게도 좋았다. 그 중에도 교언영색, 선의인이란 문장은 '말을 교묘하게 하고 얼굴빛을 곱게 꾸미는 사람들 중에는 좋은 이가 드물다'란 뜻으로 이해해서 말 잘하는 이들을 항상 경계했는데, 이것이 잘못된 생각이었다는 것은 많은 세월이 지난 뒤에 알았지만. 물론 지금도 말만 잘하는 사람을 보면 나도 모르게 경계를 하게 된다.

나는 평소 실없는 농담을 잘 해도 상대방에게 기분 나쁜 말을 하지 않으려고 하지만 가끔 술을 마시면 취중에 나도 모르게 말을 많이 한다. 그래서 술 깨는 아침이면 바로 술자리에서 얼마나 실없는 이야기를 했는지 그 기억을 더듬어 보며 후회를 하게 된다. 서로 술김에 한 말이겠지만 그래도 후회가 되는 게, 혹시나 하지 않아야 할 말을 했을까 하는 것이다. 그래서 술자리는 간단하게 끝내는 것을 좋아한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아직도 취중에 한 말과 실수에 대해서는 너무나 관대(寬大)하다. 이것은 반드시 바로 잡아야 할 우리 사회의 큰 병폐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말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말이 적으면 근심이 없다는 말이 있듯이 이 책에서는 말로 인해 결국 화를 자초하고 만다는 사실의 예를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중국 당나라 시대 재상 풍도(馮道)는 설시(舌詩)에서 '구시화지문, 설시참신도(口是禍之門, 舌是斬身刀)'라고 했다. '입은 재앙을 부르는 문이요, 혀는 몸을 베는 칼'이니 말을 아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흔히 말한다. "말처럼 쉬운 것이 어디 있냐고" 그러나 정작 말처럼 쉽게 악연을 만드는 것 또한 어디 있는가. 올해는 25년 만에 돌아온 '책의 해'다. 울주군의 2018년 올해의 책 선포식에 발맞추어 울주가 선정한 '말의 품격'을 읽고 우리 다 같이, 품격 있고, 아름다운 삶을 살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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