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조선시대 전국 고을에는 중앙에서 파견된 관리가 지방의 행정을 관장하는 관아가 세워져 있었다. 관아의 건물은 크게 객사와 동헌으로 구분된다. 이 중 수령이 정무를 행하던 청사인 동헌은 성격상 집무를 보는 공간인 외아와 가족들이 생활하는 내아로 나뉜다. 또한, 동헌 전면에는 문루가 설치돼 위엄도 갖췄다.

울산에도 중구 동헌길 167(북정동) 일대에 울산동헌이 자리잡고 있다. 울산광역시 유형문화재 제1호인 이 동헌의 외아(반학헌)와 내아는 1980년대에 복원되었고, 이 시기에 문루가 있던 자리에는 단층의 평삼문도 중건됐다. 하지만 최근 1910년대에 촬영한 울산동헌의 문루인 가학루(駕鶴樓)의 사진 자료가 새롭게 발견되면서 그때서야 원형 구조를 정확히 파악할 수 있게 됐다.

이 때문에 울산 중구청은 유구한 울산 역사의 중심 공간으로서의 의의를 고양하고, 지금까지 진행해 온 문화도시 활성화의 또 다른 계기를 마련하기 위해 조선시대 동헌의 문루인 가학루 복원사업을 추진했다.

가학루의 원형 복원을 위해 2015년 초부터 문화재 발굴조사와 고증 기본계획을 수립했다. 이후 실시설계를 통하여 울산광역시문화재위원회 심의를 거치는 등 복원공사에 들어가기 전 3년여의 시간동안 철저한 고증과 문화재전문가의 자문을 거쳤다. 또한 조성 중인 시립미술관과 연계된 공원조성계획을 반영하는 등 행정 절차를 진행했다.

가학루는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팔작지붕을 올린 2층 누각이다. 복원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자재인 목재는 우리나라에서 생산되는 육송을 사용했고, 중구청은 최고의 목재 선정을 위해서 전국의 목재를 찾아다니기도 했다. 기둥의 형태도 고증자료와 최대한 가깝도록 복원하기 위하여 공장에서 일률적으로 제재한 목재가 아닌 나무껍질만 제거한 자연적으로 굴곡진 원형 기둥을 사용했다. 자연석을 그대로 기둥 하부의 주초석으로 사용한 것도 같은 이유였다.

편액(현판)도 고증사진에 동일하게 초서체로 제작했고, 대들보에는 가학루와 관아를 상징하는 학과 용을 그려 넣어 의미를 더하는 등 원형복원에 역점을 뒀었다. 참고로 가학(駕鶴)이란 울산을 주장하는 계변신이 학을 타고 내려와 울산 고을을 다스리는 수령으로 하여금 선정을 베풀도록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전해진다.

사라진 문화재가 복원되는 것은 현재를 살아가고 미래를 준비하는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안겨준다. 예부터 선조들은 건축물에 보편적 가치 등을 부여하였다. 서울의 경복궁을 중심으로 한 4대문에는 숭례문, 흥인지문, 돈의문, 숙정문이라는 이름을 붙여 조선건국 이념인 '인의예지(仁義禮智)'를 담았다. 종묘는 전통적인 가치와 유교적 조상관 등을 담아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도 지정됐다.

이와 같이 우리 울산동헌의 가학루도 백성을 위해 선정을 베풀겠다는 관료로서의 각오와 정신을 선조들이 담은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이 정신은 현재에도, 후세에도 정부와 공직자로서 지켜야하는 보편적 가치이다. 그래서 복원된 가학루를 통해 고증과 복원의 기술이나 당시의 건축미를 엿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선조의 가르침을 기리는 자세를 견지해 감상하고 후세에 정신과 문화재를 함께 잘 물려주어야 한다.

중구청은 2017년 말 복원된 가학루를 더 알리고 단순한 감상의 대상이 아닌 접근하여 느낄 수 있도록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문루와 함께 복원된 2층의 북을 '2017 울산동헌 가학루 제야의 북소리' 행사를 통해 시민들이 직접 치고, 소원을 빌 수 있도록 했다. 매주 금요일 저녁 진행되는 '울산동헌 금요문화마당'과 '동헌씨의 품격' 등 많은 문화 행사를 시행해 많은 분들이 동헌을 찾고 느끼며, 가학루도 보고 즐기도록 하고 있다.

가학루의 복원으로 옛 모습을 되찾아가 가는 울산동헌을 많은 분들이 가족과 연인, 친구와 함께 방문하여 선조의 깊은 가르침은 물론, 생활 속에서의 즐거움도 느껴보길 오늘도 가학루 기둥에 기대어 바라본다.

저작권자 © 울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