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잘못 든 새가 길을 낸다

강경호 

한 줄의 시도 못 쓰고 있을 때
길을 잘못 든
지금까지 보지 못한 새 한 마리 날아들었다
놀란 새는 내 관념의 이마를 쪼다가
출구를 찾으려 발버둥 쳤다
책에 부딪혀 깃이 빠지고 상처를 입은
새를 바라보는 동안 고통스러웠다
새는, 이 따위 답답한 서재에서는 못 살아 하며
푸른 하늘과 숲을 그리워하면서도 쉽게 나가지 못했다
두렵고 궁금하고 불량하고 불온하고 전투적인
피투성이가 된 새를 바라보는 동안
나도 피투성이가 되었다
새가 소설집에 부딪치고, 시집에 부딪치고
진화론에 부딪치고, 창조론에 부딪치는 동안
산탄처럼 무수히 많은 새끼를 낳았다
새는 겨우 출구를 찾아 날아가 버렸지만
새가 낳은 수많은 새끼들
내 마음의 서재에 살게 되었다
또다시 잘못 든 새가 그립다.

△강경호: 전남 함평 출생. 1977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 '언제나 그리운 메아리' '알타미라 동굴에 벽화를 그리는 사람' '잘못 든 새가 길을 낸다'등. 현재 계간 '시와 사람' 발행인 겸 주간
 

박성규 시인
박성규 시인

겨우내 초라하게 들녘을 지켜왔던 벌판이 어느 날부터 물을 채우더니만 이젠 초록 바다가 되어 있었다. 변함에 있어서 그리 긴 시간이 필요한 것도 아니었다. 남북회담이니 북미회담이니 6·13 지방선거가 있다 해도 들녘은 아무런 말없이 제 분수를 지키고 있었다. 평화로운 풍경으로 돌아와 무척이나 기뻤다. 그런 벌판에 왜가리가 하늘을 지켜주고 개구리가 땅을 지키는 세상이 얼마나 평화로운 지는 가까이 살지 않으면 감흥이 별로 없을 것 같다. 그런 풍경을 앞에 두고 시를 쓰자니 마음이 자꾸 풍경에 빼앗겼고 책을 읽자니 마음이 뒤숭숭한 요즈음 내 자신의 출구가 새삼 궁금해졌다. 직장생활을 그만두고 나름대로 전원생활을 한다고는 하지만 온전한 생활이 아니다 보니 낯선 타향을 떠도는 이방인 같다는 생각을 종종 해댔다. 풀밭에 채소 씨앗을 조금 뿌리고 나서 몇 안 되는 채소를 위하여 그 많은 풀을 뽑아야 하는 세상처럼 나 하나를 두고 저 많은 삼라만상의 주인들을 물리칠 수는 없는 노릇이고 보면 나도 지금 길을 잘못 든 것일까.  강경호 시인의 고충이 곧 나의 고충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동병상련의 인연일까. 지나간 시절을 그리워하고 있는 것일까. 이왕 그럴 거라면 실컷 외로워 보자. 외롭다 보면 무언가 손에 잡히는 것이 있지 있겠지. 고민만 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라고 하지만 외로워 한다는 것에 대해선 죄가 없지 않을까. 한 줄의 시를 쓴다는 것이 이미 정해진 일이라면 시를 써야지. 시가 아니라 무엇인가를 하겠다고 마음을 먹었으면 그 일을 이루도록 해야지. 되돌아보면 그리운 것은 누구나 마찬가지일 테니 서두르지 말고 한 걸음씩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가야겠지.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라면.   박성규 시인

저작권자 © 울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