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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를 듣다보니 송창식과 윤형주가 불렀던 <하얀 손수건>이란 노래가 흘러나온다. "헤어지자 보내온 그녀의 편지 속에/ 곱게 접어 함께 부친 하얀 손수건/ 고향을 떠나 올 때 언덕에 홀로 서서/ 눈물로 흔들어주던 하얀 손수건" 이게 언제 적 노래인가. <웨딩 케익>과 더불어 트윈폴리오의 이별 노래 가운데 가장 유명하고 자주 불렸던 노래인데, 하도 오랜만에 듣다보니 멜로디보다는 '하얀 손수건'이란 가사가 도드라지게 귀에 들어온다. 아마 요즘은 손수건을 잘 사용하지 않고, 그것도 이별의 선물로 하얀 손수건을 보내는 일이 드물기 때문인가 보다.   

그러고 보니 '사랑 손님과 어머니'에서도 옥희 엄마는 하얀 손수건을 보냄으로써 사랑방 손님에게 넌지시 이별의 뜻을 고하고, 손님도 얼마 뒤 짐을 꾸려떠난다. 흰색이 주는 색채 상징성과 눈물을 닦는데 사용하는 손수건의 이미지가 겹쳐져 하얀 손수건 하면 이별을 떠올리게 된듯하다.

하지만 손수건이 이별이나 눈물만을 상징하는 것은 아니다. 로맨스 소설에선 손수건 때문에 남녀가 만나 사랑에 빠지기도 한다. 고전 연애소설의 진수를 보여주는 『채봉감별곡』에서 강필성과 채봉이 만나는 것도 채봉이 떨어뜨린 손수건 때문이다. (그래서 만남을 위해 일부러 손수건을 떨어뜨려 놓기도 한다. 이때는 손수건에 이니셜이 새겨진 경우가 많다. 체취를 연상 시키는 엷은 향수 냄새도 동반한다.) 오래전 샘터사에서 펴낸 『노란 손수건』에는 손수건에 관한 가장 감동적인 이야기가 나온다. 5년 만에 출소한 남편이 그냥 지나칠까봐 마을 입구 참나무 가지가지마다 노란 손수건을 매달아 나부끼게 했다는. 환영의 깃발처럼, 환희의 물결처럼 펄럭이는 노란 손수직은 새로운 만남과 희망을 상징하는 손수건이다.

그리고 또 다른 손수건의 예. 로버트 드니로가 나이 든 인턴 벤으로 나오는 는 영화 <인턴>에서 벤은 젊은 직원들과 달리 늘 손수건을 들고 다닌다. 그리고 "손수건의 가장 큰 용도는 빌려 주는 것"이라고 말하며 눈물을 흘리는 직원들에게 손수건을 내민다. 이때 손수건은 경험 많고 연륜이 묻어나는 벤이 건네는 위로와 응원이다. 이별이든 만남이든 위로이든 이처럼 손수건에는 언어의 한계를 뛰어넘는 감정과 의사 전달력이 있다.

아마 손수건에 관한 가장 오래된 기억은 초등학교 입학식에서 달았던 손수건이 아닌가 한다. 그때는 왜들 그리 코를 많이 흘렸는지 입학할 때 아예 왼쪽 가슴에 손수건을 접어서 옷핀으로 매달고 다녔다. 제대로 된 손수건이 없어서 광목이나 포플린 조각 같은 것을 달고 다니기도 했다. 하지만 대개의 경우는 손수건이 아닌 소매로 코밑을 스윽 문질러 나중엔 소맷부리가 꼬질꼬질하고 반질반질해졌다. 그러니까 내게 손수건에 관한 기억은 낭만이나 우아함과는 거리가 먼 매우 현실적인 것이다. 손수건을 챙기게 된 건 중학교 이후부터다. 한창 꾸미고 다닐 때니 일요일마다 다리미로 손수건을 다렸다. 교복을 다리고 남은 열로 손수건을 다린 다음 코바늘로 뜬 주머니에 넣어가지고 다녔다. 금방 다려 네 귀가 반듯이 접힌 손수건을 만지면 따뜻하고 단정해서 다림질이 잘된 교복을 입은 것처럼 기분이 좋았다.

손수건은 대개 물 묻은 손이나 얼굴을 닦는 데 쓰이지만 그뿐 아니라 오염물을 닦는 걸레, 풀밭이나 벤치에 앉을 때 펼치는 깔개, 응급조치를 하는 붕대, 그리고 스카프나 보자기, 머리끈 등, 참 다양한 용도로 사용된다. 초등학교 때 소풍을 가면 거의 매번 수건돌리기 놀이라는 걸 했는데, 수건돌리기 말고도 눈 가리고 하는 술래잡기나 이인삼각을 할 때도 손수건을 이용했다. 활용도 높은 물건이지만 그만큼 잃어버리기도 쉬웠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내게 로맨틱한 만남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래서 친구들 생일 선물도 책 다음으로 손수건을 많이 했던 것 같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손수건을 갖고 다니지 않게 되었다. 물티슈라는 편리한 물건이 있고, 화장실마다 세면대 근처에 종이 티슈가 갖춰져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래저래 생겨 난 손수건들은 사용할 기약도 없이 서랍장 안에 고이고이 모셔졌다. 마침 얼마 전, 재활용업체에서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다고 비닐봉투 수거를 거부하는 사태가 일어나자 정부에서 비닐봉투 사용을 규제하고 나섰다. 그 즈음 일회용품 사용을 줄이고 쓰레기 제로에 도전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소개된 적이 있다. 그들은 비닐봉투 대신 장바구니를, 종이컵 대신 개인 컵을 들고 다니는 것은 물론, 종이 티슈 사용을 줄이기 위해 손수건을 갖고 다닌다고 했다. 사실 컵은 나도 오래전부터 갖고 다니고 있지만 손수건은 생각을 못했다. 종이 티슈가 주는 편리함에 길들여진 것이다.

<인턴>을 볼 때 나도 벤처럼 손수건을 갖고 다녀야겠다는 생각을 잠시 했었다. 하지만 생각에 그치고 실천하지 못했는데, 생각 없이 뽑아 쓰는 종이 티슈가 환경에 부담이 된다는 '불편한 진실'을 비닐봉투 사태를 통해 다시 한 번 확인하고, 이제라도 손수건을 들고 다니기로 마음을 굳혔다. 손수건은 가볍고, 접을 수 있어 휴대가 편하다. 그리고 누구의 선물인지, 어디에서 샀는지 떠 올릴 수 있어 종이 티슈에 비해 훨씬 감성적이고 낭만적이다. 단조로운 일상에 어떤 기대감도 줄 수 있으니, 이런 물건, 다시 지니고 다님직 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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