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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자

이정록

병원에 갈 채비를 하며
어머니께서
한 소식 던지신다

허리가 아프니까 세상이
다 의자로 보여야
꽃도 열매도, 그게 다
의자에 앉아 있는 것이여

주말엔
아버지 산소 좀 다녀와라
그래도 큰애 네가
아버지한테는 좋은 의자아녔냐

이따가 침 맞고 와서는
참외밭에 지푸라기도 깔고
호박에 똬리도 받쳐야겠다
그것들도 식군데 의자를 내줘야지

싸우지 말고 살아라
결혼하고 애 낳고 사는 게 별거냐
그늘 좋고 풍경 좋은데다가
의자 몇 개 내놓는 거여

△이정록: 1964년생, 1989년 대전일보 신춘문예에 시 '농부일기' 199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 '혈거시대(穴居時代)' 당선, 현재 '비무장지대' 동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2001년 제20회 '김수영 문학상' 2017년 제5회 '박재삼 문학상' 등 수상, 시집 '벌레의 집은 아늑하다' '풋사과의 주름살' 외
 

한영채 시인
한영채 시인

담장은 줄장미의 의자다. 그 붉던 오월이 담장에서 맥없이 지자, 마당 안 백합과 붉은 접시꽃이 자리를 지킨다. 마당은 온통 꽃밭이다. 꽃받침은 꽃을 받치는 기도이자 순정의 의자다. 절정은 순간의 빛으로 온다. 빛은 시간과 함께한다. 매 시간마다 변화하는 자리에는 푸르고 그윽한 향기를 뿜어낸다. 자연이 주는 향기는 무한대의 의자다. 오래된 나무의자가 마당 구석에 있다. 나무 의자에 빛이 내려앉는다.
남산 솔 마루 길을 걷는다. 숲이 우거진 나무 그늘로 한참 걷다보면 등 어리엔 온통 땀에 젖는다. 잠시 나무의자에 기대 깊은 들숨과 날숨을 쉬는 사이 소나무 향기가 푸르게 다가온다. 누군가 다녀갔을 의자, 한참 기대고 앉아 기쁨과 슬픔이 이별이나 아픔도 상처를 지우듯 잠시 쉬었다 갔으리라, 그들의 깊은 서사를 기록하는 의자는 오늘도 의연하다. 더위에 지친 발걸음소나무 그늘에서 기다려준 나무의자가 고맙다. 지나가는 발걸음도 자리를 펴고 앉는다. 내가 앉은 자리가 바로 안락의자다. 자연이 주는 충만한 사물은 모두 나를 받쳐주는 공손한 의자다.
아버지 학교와 어머니 학교에 심어져 있는 시인의 어머니는 사랑이 남다르다. 어머니의 말씀을 시로 받아 적는 이정록 시인은 행복하다. 허리가 아프니까 세상이 다 의자로 보여야~ 꽃도 열매도, 그게 다 의자에 앉아 있는 것이여~시인의 의자는 바로 어머니에서 온다. 어머니는 자식의 의자이기도 하고 자식 또한 늙은 부모의 의자가 되기도 한다. 나도 때로는 누군가에게 어떤 의자가 되기는 하는지, 했는지, 내가 기댄 의자는 무엇이었을까? 누구였을까? 어떤 것이었을까? 의자에 기대 잠시 생각해보는 은유의 유월이다.  한영채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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