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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의 대표가 마주 앉을 때 북측의 대표들이 고자세, 이른바 갑질의 언동을 보이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라 수두룩할 정도다. 얼마 전 장성급회담에서 북측대표인 안익산은 "다시는 이런 회담 하지 맙시다!"하고 일갈을 가하고는 마무리 발언을 한 다음 자리에서 일어섰다. 우리로서는 예민할 수밖에 없는 서해북방한계선에 대한 북측의 주장을 선뜻 받아들이지 않는 것에 대한 불만을 노골적으로 쏟아놓은 것이다. 하긴 우리에게서 쌀지원을 받으려할 때 역시 이보다 더한 갑질을 어김없이 보였던 북측이었다. 2006년 7월에 가졌던 남북장관급회담에서 북측의 권호웅 단장은 선군정치가 남측안보에 크게 기여하고 있으니 그 대가로 쌀 50만톤을 달라고 했다. 구걸하는 입장에서 이렇듯 황당하고 어처구니없는 소리를 마구 해대고 있다 보니 회담을 맡아 주관하는 해당부처 관계자의 고충도 익히 알만한 일이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우리는 대화의 끈을 놓지 않고 있을 때에 미국은 미국대로 시끌시끌한 일이 생겼다. 참으로 어줍잖은 일이었다. 지난 12일 열린 북미회담 뒤에 북한인민무력상 노광철에게 트럼프 대통령이 거수경례를 하는 모습을 본 미국국민들이 거센 비판을 쏟아놓게 되었다. 엄연한 적국일 뿐 아니라 북한주민의 인권을 짓밟았을 그에게 세계 자유국가의 최고지도자가 공경하는 뜻의 거수경례를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고등학교 과정을 뉴욕군사학교에서 마쳤기 때문에 거수경례가 몸에 배었을 것이다.

그러나 상대가 먼저 해오는 경례를 예의적인 답례로 했을 뿐인데 이게 왜 말썽이 되는 것일까? 아마도 문화의식의 차이에서 오는 이유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눈을 돌려 국내를 봐도 그렇다. 북의 김여정이 오빠 김정은의 특사자격으로 청와대를 방문했을 때이다. 임종석 비서실장이 문재인 대통령과 김여정이 악수하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환하게 웃은 적이 있다. 이를 두고 어느 대학교 여교수가 그 광경에 허탈했다는 글을 신문에 실은 적이 있었다. 그 광경이 왜 허탈할 정도였나는 알바 없다. 아마도 주적의 우두머리의 동생으로 와서 우리와 적대하는 집단의 주요 인물이었기에 그랬을 터이지만 나의 생각은 그렇지 않다. 밝게 웃는 얼굴은 찡그리는 얼굴보다 낫다. 설령 그가 원수였더라도 내 집을 찾아온 손님이었다. 그 손님이 또 보통 손님인가? 역사에 크나큰 죄를 지으며 민족의 진로에 길을 막는 아픔을 주다가 이제 늦게나마 헛된 망상을 접고 우리를 찾아 제 발로 걸어온 같은 핏줄의 형제가 아닌가? 네놈들을 죽여야 내가 산다 하는 적대감만을 키우며 싸우고 또 싸우며 살아왔던 바보 같은 우리들이었지만 새로운 역사를 쓰자면서 손을 내민 그 집단을 어찌 외면 할 것인가? 우리는 그들보다 더 잘 살면서 그들을 맞고 베풀고 따뜻한 사랑의 손을 내밀며 막혔던 장벽을 허물고 서로가 오가는 대변화의 시대를 열고 있는 것이다.

가슴에 손을 얹고 조용히 생각해보자. 지금 우리는 그토록 소리친 평화통일의 신작로, 그 출발점에 서있다. 꿈에도 소원으로 빌던 이 길의 출발점에서 또 한 번 묘한 역사의 변화를 슬기롭게 넘어야하는 시점에 놓여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우방의 트럼프와 김정은의 흥정 가운데 김정은이 바라는 것과 트럼프가 원하는 의견이 모두 만족함 속에서 이룰 수 있느냐 없느냐에 국가의 명운을 걸고 있다. 그런데 행여 김정은의 오판으로 잠복시켜놓은 핵이 있다면 무자비한 멸망의 비극이 닥치는 끔직한 찰나에 서 있는 것이다. 아직도 속마음을 명경처럼 알 수 없는 그가 행여 감추는 것이 있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크게 손해 볼 일이 아니라면 모른 척도 하고 못 들은 척도 하면서 어르고 달래야하는 처지에 있는 것이 아닐까? 일정기간을 그렇게 지나야할 처지에 있는 것이 아닐까?

그도 아니면 어찌할 것인가?
사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면 머릿골이 흔들거린다. 가령 이런 경우를 떠올려보자. 이 경우는 극히 부질없는 환상이지만 미사일 10문 정도는 갖고 있어야 한다. 동무! 이리와 보라우! 내 인민들에게 말하지만 핵 하나도 없이 탈탈 털어봐! 트럼프가 왜 나를 기다리며 푸틴과 시진핑이 날 만나 주갔어! 안그래? 안되 갔어 통전부장 보자 그래.
아참! 여정동무는 나와 같은 혈통이야!
인민이 고깃국으로 밥먹게 된다지마는 배부르게 살아봐! 사형대에 설 놈도 없고 제잘난 듯 설치는 놈뿐이 된다구. 남반부를 보라우! 그 무질서한 꼬락서니가 뭐! 국가라구 그러나 내 동생 여정 동무 영원한 내 동지! 동지는 걱정 말라우!
그러니 동지는 이 오빠와 운명을 같이 하는거야? 응?

그렇다. 실로 담배연기 같은 상상조차해서 안 될 소리다. 그래서 말하건대 남북관계. 통일로 가는 길을 두고는 모두가 자중하며 모두가 신중해야 할 것이다. 그것을 위한 민족의 의지가 강하고 투지가 튼튼하다면 하늘은 그 길로 드는 문의 빗장을 반드시 열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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