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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로시간 단축이 몰고 올 사회적 파장이 예상보다 높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1주 근로시간을 52시간으로 줄이는 개정 근로기준법 시행을 앞두고 고용노동부에 제도 연착륙을 위한 경영계 건의문을 전달했다. 제도 시행 후 반년 이상의 계도기간을 거치고 탄력적 근로시간제 단위 기간을 확대해 달라는 내용이다. 당정청은 기다렸다는 듯 6개월간 계도ㆍ처벌 유예기간을 주기로 결정했다. 문재인 정부 소득주도 성장의 핵심 축인 '주 52시간 근로시간 단축'을 연착륙시키고 부작용을 줄이기 위한 행보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당장 내달 1일부터 시행되는 근로시간 단축 여파로 울산을 비롯한 전국 대부분의 지자체는 '버스 대란'이 예고된 상황이었다. 버스 회사들이 구인난에 시달리는 판국인데 대책 없이 근로시간만 단축되면 운전기사 부족으로 버스가 멈춰 설 수밖에 없는 구조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울산에 있는 대기업들의 사정도 급박하다. 이들 대기업들은 근로시간 단축 대상으로 적용받게 된다. 기업 현장의 혼선이 가중되는 것은 예견된 일이었다.

가장 문제가 되는 업종은 조선업이다. 조선의 경우 공기를 맞춰 내야하는 업종의 특성상 사실상 때에 따라 근로시간 초과가 불가피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특히 해상 시운전은 해상에서 수행되는 작업 특성 때문에 근로시간 단축에 따른 문제가 가장 심각하게 발생하는 현장으로 꼽히고 있다. 해상 시운전은 건조된 선박을 선주(船主)에게 인도하기 전에 계약서에 따라 각종 성능과 기능을 검증하는 것으로 선박 건조과정의 최종 단계다. 건조된 선박이 운항되기 위해서는 수많은 장비와 시스템들이 유기적으로 통합, 운영돼 전문지식을 보유한 고기량 근로자들이 시운전 기간 동안 계약사양을 시험하고 검증하고 있다. 군함, 잠수함 등 특수선은 6개월에서 1년, 해양플랜트는 수개월 이상 소요된다. 당초 근로시간 단축은 새로운 일자리 창출을 가져온다고 요란한 홍보를 해왔다. 무엇보다 철저한 준비가 선행돼야 할 일이었지만 시행부터 하고 보자는 식의 정부 정책이 빚은 참사다.

새 제도의 시행 이전에 근로시간 단축과 관련한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을 완비하고, 탄력근로제 도입 등 보완 대책에 나서야 한다. 6개월이라는 시간을 번 만큼 지금부터 당장 대책을 찾아야 한다. 이대로 가면 혼란은 자명하다. 너무나 뻔한 혼란을 두고 그대로 돌진하는 것은 사업장을 시험대상으로 삼는 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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