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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지인으로부터 오랜만에 연락을 받은 적 있다. 전화로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대화를 이어가던 중 지인이 먼저 힘들었던 이야기를 꺼냈다. 그녀는 평소 성실하게 살아왔으며 학업도 계속 이어나가 적지 않은 나이에 대학원에 재학 중이며 커리어 또한 차분하게 쌓아나가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재산도 알뜰히 모으는 생활력 강한 여인이었다. 그러나 주위에서 친하게 지내던 사람이 그녀를 시기질투를 해 무척 고통스러웠다는 내용의 이야기였다.

그녀의 주위 사람이 시기질투를 이기지 못해 걸핏하면 화를 주체하지 못하고 깔보고 어떤 점이든 흠을 잡아 그녀를 깎아내리고자 했던 것이다. 시비를 걸고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고 한다. 그 일로 마음이 여린 그녀는 자존감이 떨어지고 상처를 받았다고 전했다. 이야기를 듣고 가진 것이 많을수록 강해야 한다고 솔직하게 말해주고 싶었지만 그녀에게 위로가 될 이야기는 아니었기에 단순히 공감해주고 힘내라는 이야기만을 전했을 뿐이다.

전화를 끊고서 생각해보니 시기질투를 일으키는 것은 당사자 잘못이 아니다. 그녀의 경우에도 어떤 자랑도 하지 않았고 묵묵히 본인의 학업과 커리어를 이어나갔을 뿐이다. 또한 근검절약을 통한 알뜰함이 습관화돼 재산이 잘 모였을 뿐이었다. 그녀의 지속적인 발전에 상대방은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결핍이 잘못된 방법으로 감정이 표출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결국 상대방 마음의 빈곤으로 본인 스스로도 비참해지고 가까운 사람도 잃게 되었다. 시기질투란 받는 사람보다 하는 사람이 더 고통스러운 법이다. 받는 사람은 무시하면 그만이지만 시기질투를 하는 사람의 마음의 빈곤은 쉽게 채워지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상대방도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없었을 것임을 짐작해 본다. 가까운 사이에서 본인의 상황과 그녀의 상황이 너무나 다르다는 것을 알고 그것이 견딜 수 없이 비참하고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이후 그녀는 상대방과의 관계 개선을 위한 부단한 노력을 했다고 전했다. 본인의 인간적인 면모를 계속 보여주는 한편, 자신을 낮추어 가며 상대방을 존중으로 대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대방의 시기질투는 그칠 줄 몰라 결국 거리를 두게 되었다고 전했다. 상대방과 연락을 끊고 거리를 두니 그녀는 다시 자존감을 되찾고 더 이상의 감정 소모를 하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한마디 덧붙였다. 비슷한 부류의 사람들과 어울리면 더 이상 이런 일은 없다고.

그녀가 겪은 일을 잘 알기에 무슨 뜻인지 이해할 수 있었다. 상황적으로 비슷한 사람들끼리는 서로의 결핍을 느끼지 못하므로 시기질투가 발생할 염려가 없다는 의미였다. 그녀를 이해하면서도 상대방의 고통스러움도 안쓰럽게 느껴졌다. 넓게 생각해 본다면 메마른 현대사회의 단편이기도 한 마음의 빈곤이 시기질투와 같은 양상으로 표출될 수 있다는 점에서 상당히 유감스럽다. 시기질투 보다는 타인과의 비교의식을 버리고 자신을 사랑하며 올바른 자존감으로 마음을 채우기를 희망해 본다. 

시기질투로 얻을 수 있는 부분은 없다. 앞서 언급한 그녀의 상대방도 시기질투 없이 대했다면 서로 고통스럽지 않았을 것이고 관계를 계속 유지할 수 있었을 것이다. 오히려 상대방의 성실함과 발전적인 면모를 보고 본인의 발전 계기로 만드는 것도 올바른 방향이었을 것이다. 시기질투의 민낯은 무서우리만치 자신을 잘 보여준다. 자신의 부족함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과 진배없다. 타인을 시기질투 하기에 앞서 그 정도로 소모되는 감정을 차라리 자신을 위한 발전적이고 긍정적인 에너지로 쏟아보는 것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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