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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 가나이다"( 시편 90편 10절)

울산 기독문화연대 창립 후 첫 재능 기부 봉사 공연을 하며 전한 성경 말씀의 구절이다. 지난 6·13 지방선거로 나라가 분주한 때 울산 기독문화연대 예술인들은 투표 후 요양병원으로 자선 공연을 다녀 왔다. 그 뜻깊은 재능기부 공연 때의 봉사 활동과 단상을 함께 나눌까 한다.

투표 후 달란트 아트센터로 시간 맞춰 출연진들이 모여 들었다. 당일 재능기부 봉사 대원은 홍승례 위원의 색소폰 연주, 박혜정 무용단의 공연이 펼쳐질 예정이었다. 그 외 봉사자들을 위해서도 꼼꼼히 간식거리들을 까만봉지마다 나눠 싸오신 박 위원님의 정성에 감사하며 봉사처로 길을 나섰다.

도착한 요양병원은 시설이 깨끗하고 주변 환경도 밝았다. 공연 셋팅후 수요 예배와 함께 시작되는 요양병원에서의 공연을 위해 우리는 각 병실을 돌며 병약한 노인분들을 휠체어에 태워 예배처로 모셔 왔다. 재능기부 공연 때보다 더 긴장해 조심히 모셔야할 때란 것을 깨닫는 시간이었다. 60여 분의 어르신들이 한자리에 모여 먼저 성경 본문 말씀을 토대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시간이었다.

"하나님 당신의 제단에 꽃 한 송이 바친 적이 없으니 절 기억하지 못하실 겁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잠든 깊은 밤에는 당신의 낮은 숨소리를 듣습니다. 그리고 너무 적적할 때 아주 가끔 당신 앞에 무릎을 꿇고 기도를 드립니다. 어떻게 저 많은 별들을 만드셨습니까. 그리고 처음 바다에 물고기들을 놓아 헤엄치게 하셨을 때 저 은빛 날개를 만들어 새들이 일제히 날아오를 때 하나님도 손뼉을 치셨습니까.(중략) 아무 말씀도 하지 마옵소서. 여태까지 무엇을 하다 너 혼자 거기에 있느냐고 더는 걱정하지 마옵소서. 그저 당신의 야윈 손을 잡고 내 몇 방울의 차가운 눈물을 뿌리게 하소서. 하나님"

한국 지성인을 대표할 만한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이 영성으로 회심하며 쓴 어느 무신론자의 기도라는 시를 낭송할 땐 모두 눈을 감은채 지난 날을 회심하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눈시울을 적셨다. 지금 세대는 요양원에서의 생을 마감하는 것이 일반화된 삶의 풍습이 됐다. 몇 일 전에도 요양원에서 생을 마감한 지인의 모친상을 다녀왔다. 다행히도 기독인이고 권사 직분으로 신앙 생활을 하다 소천하셨다. 긴 세월 살아오며 가슴팍 한가운데 왜 상처가 없을까? 지난 후회와 가족간에 다 씻지못한 상채기들이 회한으로 남아 마지막 이른 곳이 요양원이다.

하지만 생채기 난 마음에 몸마저 병약해져 누웠다해도 회복 기회가 없는 것은 아니다. 몸과 마음이 쇠약해져 다음 생을 소망할 때가 기회인 것이다. 삶과 죽음은 숨 한숨 쉬다 못 쉬는 짧디 짧은 한 순간 차이다. 그 한 숨의 시간이 남아 있을 때가 다시 영원히 사는 기회인 것이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겐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1:12)

그 기회가 다시 사는 영생의 기회임을 전할 때 요양원 어르신들은 일제히 "아멘!"이라고 답했다. 그때의 가슴 뭉클한 감동은 잊을 수 없었던 하루였다.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 가나이다"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그렇다. 우리 모두는 한 번 태어났으니 죽는 것은 하나님의 절대 진리다. 하지만 우리가 하나님 앞에 어떤 모습으로 서야할지 다시 깨닫게 한 귀한 시간이었다. 리고 되돌릴 수 없는 상채기 회한으로 아파하기 보단 가족·지인들과의 용서를 통해 사랑을 회복하며 천국 소망을 바라고자 다짐한 뜻깊은 시간이었다. 그리고 그 시간을 제공한 울산 기독문화연대의 메시지와 재능기부 봉사 공연에 모두가 감사했던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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