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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로시간 단축이 시작됐다. 제도는 퇴근 후의 삶을 지원하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는 최근 '핫 키워드'가 된 이른바 '워라밸'(워크 앤드 라이프 밸런스·Work and Life Balance)에 기초한다. 주 52시간 근로를 골자로 하는 이 제도는 2004년 도입된 주 5일제에 버금가는 노동의 일대 변화로 받아들여진다.

물론 맞는 말이다. 한국이 OECD 국가 중 연간 노동시간이 두 번째로 긴 나라인데다 직장인 대다수가 정시 퇴근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에 견주면 그렇다. 또 장시간 근로로 건강권을 침해받거나 삶의 질 저하를 견디고 있는 상당수 근로자의 현실을 돌아보면 더욱 그렇다.

다만 이같은 공감대는 근로시간 단축이 '생산성 향상'을 전제로 할 때 가능하다. 그러나 경영계의 반응은 사뭇 다르다. 현실적으로 감당하기 힘든 제도로 인해 회사 운영 자체가 어려워졌다며 한숨을 내쉬고 있고, 임금이 대폭 줄어들었다며 아우성치는 근로자도 있다.

석유화학이나 조선업계는 당장 연간 수개월씩 단행하는 정기보수와 시운전에 제동이 걸렸다. 고도의 기술진이 수십명에서 수백명씩 투입돼 설비를 점검하는 이 기간은 기업 안전과 직결된다. 최대한 빠른 정비를 위해 집중 근로가 불가피하기 때문에, 근로시간을 준수하려면 유휴 인력을 각오하고 고임금 근로자를 추가 고용해야 한다. 회생을 기약하며 구조조정을 시도하고 있는 지역 사업장에서 볼 때 인력보강은 먼나라 얘기일 수 밖에 없다.

이러니 누구를 위한 근로시간 단축이냐는 원성이 터져 나온다. 근로시간이 줄어 납기를 지키지 못하면 줄소송에 직면할 기업에서는 차라리 벌금을 무는 편이 훨씬 낫다는 볼멘소리까지 나온다. 결국 직장이 있어야 퇴근 이후 삶도 있다. 정부의 섣부른 일반화로 기업이 나가떨어진다면 근로시간 단축은 오히려 삶의 질 향상이나 고용 확대에 역행하게 된다. 무엇보다 산업별 근로 시스템에 대한 정부의 현미경 분석이 절절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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