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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구 학산동에 있던 옛 울산역이 남구 삼산동(현 태화강역)으로 옮겨간 1990년대 초반 무렵 잠시 남외동에 거주한 적이 있었다. 기억으로는 당시 병영사거리를 지나는 도로 일대에는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원도심을 관통하던 기찻길을 철거하고, 공사장용 펜스를 설치하며 무언가를 짓거나 혹은 도로포장을 했던 게 아닌가 싶다.

지금은 번영로, 구교로, 학성로 등 차도만이 중구와 남·북구를 이어주고 원도심 곳곳을 관통하고 있어 과거에 이 지역을 지났다는 기차는 어디로 갔는지 흔적조차 보이질 않는다. 현재 모습으로 원도심에 있던 추억이 가득한 기찻길이 지났던 곳인지 전혀 알 수 없을 정도로, 불과 이십여 년 만에 완전히 변해 버렸다.

평소에도 철도에 관심을 갖고 있던 필자는 반구2동 주민센터에 발령받고 업무를 파악하고 추진하는 틈틈이 기차의 흔적을 찾아보려고 노력했다. 우리 반구2동도 기차가 지나다녔던 지역이고 현장업무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기찻길 흔적을 찾을 수 있을거라 짐작했지만 찾기 힘들었다.

철도가 활발히 운영되던 70~80년대의 옛 울산역과 울산철교 사진 몇 장만이 인터넷에서 검색될 뿐, 구체적으로 어떤 지역을 어떤 경로로 지나고 있었는지에 당시를 살아보지 못한 나로서는 알 길이 없었다. 단지, 화합로와 구교로를 교차하는 사거리가 '구 철길 사거리'라는 이름으로 남아있어, 반구2동도 옛날에는 기찻길이 있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나마 알게 해줄 뿐이었다. 이외에는 오랫동안 살아온 토박이 주민들의 구술과 과거 위성지도를 통해 옛 병영역이 있던 병영삼일아파트에서 학성공원 방향으로 이어졌을 기찻길의 윤곽을 추측해볼 수 있었다.

돌이켜보면, 비단 기찻길뿐만 아니라 역사적 사실과 많은 사람들의 기억과 추억을 간직한 시설들이 개발 붐에 밀려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경우가 많다. 서울의 동대문야구장은 근대스포츠역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었지만 지금은 조명탑만이 덩그러니 남아 그 역사를 힘겹게 간직하고 있을 뿐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DDP)라는 완전히 다른 시설로 바뀌었다. 그리고 조선시대 양반들의 행차를 피해 숨어들어 생긴 피맛골은 뒷골목의 생선구이와 대포 한 잔 으로 서민의 애환을 달래주었던 곳이지만 현재는 명칭만 그대로일 뿐 추억과 정감이 없는 현대식 시설로 바뀌어 그야말로 맛이 없어졌다. 

그나마 이 지역은 워낙 유명한 곳이고 많은 사람들의 왕래가 있었기에 과거 사진과 서적 등을 통해 과거 역사를 쉽게 찾아보고 확인할 수 있지만, 우리의 향수와 추억이 깃든 골목길, 옛 초등학교와 그 주변 등 대부분은 쉽게 헐리고 없어져 기억을 더듬거리며 찾아봐야 하는 처지다. 크게는 우리 원도심을 지나던 기찻길이 그랬고, 작게는 내가 살던 고향 동네가 그랬다.

도시가 많은 기반 시설들을 확충하고 생활 편의를 증대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노력하고 그 결과 점차 생활환경은 좋아짐에 틀림없고 도시 재개발도 당연히 필요한 일임에는 반론이 없다. 다만, 그 도시가 발전하고 변화하는 과정에서, 사람들의 추억이나 향수를 위해 한 번 더 생각해볼 여지는 있다. 단순히 개발이익만을 따라가지 않고, 과거의 맛과 정취를  그리면서 새롭게 변화하고 발전해가는 방법 또한 있을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몇 년 전부터 근대역사자산에 대해 그 가치를 공감하고 관광자원으로 활용하는 지역이 많이 생겨났다. 우리 중구도 울산큰애기길 조성사업을 통해 많은 분의 추억을 간직한 원도심을 스토리텔링으로 되살리고 도심곳곳을 이야기를 따라 여행할 수 있도록 했고 이런 기조로 재생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앞으로도 이를 통해 과거 명소들이 단순히 우리의 머릿속 추억과 기억만으로 묻어놓지 않고, 도시재생을 통해 도심 곳곳에서 함께 숨 쉬며 이어져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갈 수 있으리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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