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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철이다. 우타가와 히로시게의 '다리에 쏟아지는 소나기'만큼 소나기를 서정적으로 표현한 그림은 드물다. 어스름한 저녁, 쏴아아 다리에 쏟아지는 빗줄기, 이리저리 맘 급한 이들의 발걸음. 그 와중에 비를 피하기 위해 머리에 쓴 것들은 제각각이다. 얼굴은 보이지 않지만, 다리에 있는 사람들 마음을 고스란히 읽히게 한다. 이 그림은 '우키요에'라는 일본 다색 목판화로 '명소 에도 100경' 시리즈 중에 하나이다.

1800년대 일본 에도(지금의 동경)는 상업이 발달하면서 자본이 형성되자, 상인들 사이에 다양한 취미들이 생겨났다. 일본씨름 스모나 공연의 일종인 가부키 등이 엄청난 성황을 이루었다. 여기에 일본 미술문화에 독특한 장르인 다색 목판화도 발전에 발전을 더했다. 이것은 서로 친밀감 혹은 신뢰를 쌓기 위한 수단의 하나로 달력이나 선물로 주고받는 것에서 시작되었다. 손으로 그린 그림보다는 저렴하면서 많은 이들에게 동시에 선물로 줄 수 있는 것이었는데, 자신만의 개성과 품위를 알리기 위해 돈을 아끼지 않고 인쇄하다보니 점점 세련돼졌다. 유명한 화가에게 작품을 의뢰하거나, 목판을 파는 조각사나 인쇄공을 고용하는데 심혈을 기울였다. 그러자 돈이 잘 벌리는 사업으로 퍼지면서 더욱 다양하고 유명한 화가의 그림으로 제작되면서 에도를 대표하는 문화가 됐다.

 

우타가와 히로시게作 '다리에 쏟아지는 소나기' 명소 에도 100경 시리즈, 34×22.5cm, 1857.
우타가와 히로시게作 '다리에 쏟아지는 소나기' 명소 에도 100경 시리즈, 34×22.5cm, 1857.

 

우키요에의 기본적인 제작방법은 화가가 그린 그림을 조각공이 정교하게 목판으로 파고, 그것을 인쇄공이 종이에 찍는 것이다. 다만 색을 얼마나 분리해서 여러 판을 만드느냐에 따라 정교함이 차이난다. 하지만 작품 혹은 예술이기보다는 이익을 내야하는 상품이기에 추가제작을 하거나, 인기 있는 것들은 판을 줄여 찍거나 가지고 있는 색으로 바꾸어 대량으로 찍어내기도 했다. 또 남녀가 성교하는 장면이나 남녀의 성기를 과장한 그림(일명 춘화)을 찍어 책으로까지 만들어냈다. 그래서 한때 우키요에의 내용을 신고해서 검열을 받아야 하는 일까지 생겼다. 이처럼 인기가 넘쳐 생산량이 넘쳐나자 유럽에 수출되는 도자기를 포장하는 용지로 사용되기에 이르렀다.

도자기를 포장한 종이에 인쇄된 그림이 예민한 시각을 가진 유럽 화가들에게 눈에 띈 것은 당연했다. 처음 발견한 이는 '마네'라고 하는데 섬세한 묘사와 단순한 색채 그리고 다양한 화면구도를 알아보고 주변의 인상파 친구들에게 알렸다. 그 중에서 고흐는 '비 내리는 다리', '자화상'에 배경으로 사용하였고, 특히 '탕기영감의 초상화' 배경에는 여러 장의 우키요에를 그대로 베껴 넣었다. 일본에서는 상품 혹은 포장지에 불과했던 것이 인상파 화가들에게는 그들의 예술세계를 창조하는데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이런 현상을 미술사학계에서는 '자포니즘'(Japonism)이라고 부르는데, 19세기 후반에 서양미술에 나타난 일본미술의 영향과 일본적인 취향을 즐기고 선호하는 현상을 말한다. 이것은 곧 우키요에부터 시작된 것이다.

'우키요에' 이름은 15세기 무렵 근심어린 세상이라는 뜻인 '우키요'라는 말에서 나왔다. 나라가 안정되고 평화시대가 되자 어느 덧 당장의 행복을 따르려는 세태로 변했다. 그러자 우키요는 즐기고 살자는 '우키우키'라는 말로 바뀌었는데, 이것이 에도시대 후반에 '새로운 유행' 혹은 '당대풍(當代風)'이라는 뜻이 되었다. 여기에 그림이라는 뜻인 '에'를 붙여 우키요에는 새롭게 유행하는 그림 혹은 '당대(現代) 그림'이라는 의미로 해석하면 정확할 것이다.

목판화는 판화제작 특성상 원본은 사라지고 복제품만 남는다. 하지만 남아있는 수많은 우키요에는 하급품으로 취급하지 않는다. 그것은 판화라는 장르의 독창성을 인정하는 것이기도 하고, 그 자체가 독창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원본을 원작가의 감독도 없이 베껴낸 것은 단지 복제일 뿐이다. 겉모습은 모방할 수 있지만, 작가의 예술의지는 모방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복제는 '품(品)'의 'ㅍ'도 붙이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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