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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설마가 현실이 됐다. 현대중공업 노조(금속노조 현대중공업지부)가 오늘 전 조합원을 대상으로 7시간 파업과 '상경투쟁'에 들어가기로 한 것이다. 2014년부터 5년 연속 파업이다. 노조의 올해 파업 결정은 많은 아쉬움이 남는다. 회사 경영상황이 어느 때보다 좋지 않기 때문이다. 해양사업은 이달 말이면 일감이 바닥나 공장이 가동중단에 들어간다. 2,600여명에 이르는 직원들이 일손을 놓아야 하지만 마땅한 해결책이 없다.

더욱이 3년째 신규 수주에 실패하면서 언제 다시 공장이 가동될지 기약조차 없다. 최근 언론 보도에 따르면, 많은 공을 들이던 미국 쉐브론의 해양설비 공사는 국내 대우조선해양이나 싱가포르 업체가 수주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다 해양공장이 일시 가동중단이 아니라 완전히 문을 닫게 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을 더한다. 더욱이 다른 사업도 일감 부족에 매출 감소를 겪으며 보유한 자산을 팔고 유상증자를 통해 간신히 어려움을 이겨내고 있다. 회사가 이 지경인데 노조는 힘을 합치기보다는 총력 투쟁으로 임금 인상과 고용 보장 등을 쟁취하겠다며 강경한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이에 대해 많은 조합원들조차 "지금 파업을 한다고 무엇이 달라지나"며 회의적인 반응 일색이다. 지난 4월 말 실시한 쟁의행위 찬반투표에서도 전체 조합원의 51.7%만이 파업에 찬성해 지난 수년간 찬성률 중 가장 낮았다. 최근 노조가 주최한 각종 집회에 참여한 인원도 수백명에 불과해 전 조합원의 10분의 1에도 미치지 못했다.

시민들의 시선은 더 싸늘하다. 노사가 힘을 합쳐 위기극복에 매진해도 모자랄 판에 또 다시 파업을 한다며 탄식하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린다. 이런 가운데 현대중공업 노조는 해양 유휴인력 같은 시급한 현안에 대한 해결보다는 세 불리기에 치중, 빈축을 사고 있다. 노조는 지난 9일 임시대의원대회를 통해 현대중공업지부와 하청지회, 일반직지회를 통합하는 이른바 '1사1노조' 시행규칙 제정안을 통과시켰다. 이 과정에서 여러 현장조직들과 다수 조합원들의 1사1노조에 대한 반대가 잇따랐다. 조직형태를 변경하는 중차대한 사안인 만큼 소수 대의원이 아닌, 전 조합원의 의견을 들어 결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노조 집행부는 조합원 총회 대신 대의원 표결을 강행해 결국 어느 회사에도 없는 1사1노조를 선택했다. 그런데 노조는 대의원표결로 1사1노조가 확정된 양 홍보하고 있지만, 절차상 문제 등 많은 논란이 불가피해 보인다. 특히나 과반에 가까운 대의원이 반대표를 던진 표심에서 보듯 현장조직의 반발과 효력에 대한 위법성 여부를 놓고 노노간 갈등마저 우려된다. 문제는 1사1노조로 통합 한다고 당면한 현대중공업의 과제들이 해결될 것 같지는 않다. 지금 현대중공업이 직면한 가장 현안은 잇단 해양공사 수주 실패로 인한 일감 부족이다. 그렇다면 노조는 일감 확보와 함께 해양 유휴인력 문제에 대한 해결방안을 찾는 것이 급선무다. 파업을 한다고 없는 일감이 생길 리 만무하다.

지금 울산의 사정은 비관적이다. 당장 조선업의 위기로 인구가 급격히 줄고 있고 고용의 질도 급락하고 있다. 송철호 울산시장이 취임 첫날 민선 7기 첫 민생 행보로 현대중공업을 방문해 노사와 함께 조선산업 위기 극복과 고용안정 방안을 모색한 것도 위기를 직감했기 때문이다. 이에 앞서 기획재정부 오규택 재정관리국장 등 7명이 고용위기지역 현장방문을 통해 정부지원이 시급한 사업을 발굴하기 위해 동구 퇴직자지원센터와 남목 전통시장을 방문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얼마 전 현대중공업은 사내소식지 인사저널 1292호에 '해양을 살리는 길은 우리 손에 달렸다'는 글을 통해 직원들의 뼈를 깎는 자기희생을 촉구하기도 했다. 이 글에 따르면 국제유가가 급락한 2014년 후 발주된 해양분야 7개 사업 가운데 중국과 싱가포르 컨소시엄이 3건, 삼성중공업 3건, 아랍에미리트가 자국 공사 1건을 각각 수주했으며, 현대중공업은 7개 입찰에 모두 참여했으나 단 한건도 수주하지 못했다. 회사는 수주 실패의 원인으로 높은 고정비를 지목했다.

현대중공업은 "국내 경쟁사들과 원가 손실을 감수하면서까지 도전적인 가격을 제시했지만 훨씬 낮은 금액을 써낸 중국과 싱가포르를 상대하기엔 역부족이었다"며 "이들 조선소의 근로자 임금은 80~169만원으로 국내와 비교 자체가 불가한데다 최근 유럽 업체와의 컨소시엄으로 기술력까지 확보해 해양 분야 시장을 빠르게 잠식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 다른 원인으로는 납기 지연과 안전사고를 꼽았다. 현대중공업은 "지금 상황에 대해 해양분야 전문가들은 회사의 체질을 저비용·고효율 구조로 바꾸지 않으면 정상적인 영업활동으로는 후발주자들을 이길 가능성이 없다고 경고했다"며 "해양사업이 영구 중단되는 일이 없도록 근로자들의 '자기희생'이 절실히 필요할 때"라고 호소했다. 현재의 상황을 잘 드러내는 호소로 읽힌다. 파업과 투쟁은 동력을 얻어야 힘이 있다. 지금은 무엇보다 위기를 극복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현대중 노사는 머리를 맞대고 회사를 살리는 길이 무엇인지 깊이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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