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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부자도시 시절 당시 과포화 상태에 도달했던 울산의 유통업계가 최근 장기불황에 최저임금 인상, 근로시간단축 등의 여파로 최악의 보릿고개를 보내고 있다. 수퍼마켓이나 편의점 등 소규모 업체들이 체감하는 경기는 반토막이 나는가 하면 조선업 몰락의 직격탄을 맞은 동구에서는 홈플러스가 매각되는 등 유통공룡들 역시 맥을 추지 못하고 있다. 이 바람에 피서와 추석 등이 낀 3분기에 '특수'는 커녕 오히려 폐업을 걱정해야할 처지에 놓인 소매유통업체들은 울산지방경찰청을 찾아 제도 개선을 건의하는 등 생존 활로 찾기에 나섰다.

# 90% 이상 "유통시장 정체·위축"
울산상공회의소(회장 전영도)가 17일 내놓은 '2018년 34분기 소매유통업 경기전망지수(RBSI)' 조사 결과에 따르면 3분기 전망치는 '93'으로 여전히 기준치(100)를 밑도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편의점(66)이 전분기(113) 대비 절반 가까이 하락했고, 봄철 나들이객 증가에 따른 기대감에 전분기(110) 평균 이상을 기록했던 슈퍼마켓(100)도 동반하락했다.

이들 업체는 소규모로 분류되는 영세상인들로, 유통업계 최대 성수기인 3분기에 최악 실적을 전망하고 있는 것이다. 3분기에는 하계 휴가 및 추석 명절 등 계절적 호재가 있는 시기로, 통상 비수기 매출을 만회하는 '특수시즌'으로 분류된다. 실제 대형유통업체인 백화점(109)은 지난 분기(84)보다 크게 상승한 것이라는 예측이 나왔다. 경기전망지수는 울산상의가 관내 52개 표본 소매유통업체를 대상으로 조사한 뒤 이를 수치화한 결과다.

RBSI(Retail Business Survey Index)는 소매유통업체들의 현장 체감경기를 수치화한 것으로, 0~200 사이로 표시되며, 100을 넘으면 이번 분기 경기가 전 분기에 비해 호전될 것으로 예상하는 기업이 더 많음을 의미하며 100미만이면 그 반대이다. 향후 유통시장 전망에 대해서도 '현재수준에서 정체될 것'(46%)이라는 응답이 가장 많았고, '현재보다 위축될 것'(44%), '상당기간 성장할 것'(10%) 순으로 나타났다.

유통업계는 지역산업의 고용 불안과 금리 인상 우려, 체감물가 상승 등으로 소비심리가 좀처럼 개선되지 않고 있는 것을 경기 불황의 근본 원인으로 꼽았다. 여기다 최저임금 인상과 근로시간 단축 등 정책 변화로 한동안 어려움이 더욱 가중될 것으로 우려했다. 실제 슈퍼마켓 및 편의점 업계는 줄도산을 우려하는 아우성이 터져나오고 있다. 울산시슈퍼마켓협동에 따르면 편의점과 슈퍼마켓 매출이 평균 30%씩 하락했다. 조합은 3분기부터는 인건비조차 감당하지 못해 폐업하는 업체들이 줄을 이을 것으로 예상됐다.

차선열 울산시슈퍼마켓협동 이사장은 "원래 10명 안팎이었던 종업원을 절반인 으로 줄였다"며 "하루 12시간씩 운영되는 슈퍼마켓 특성상 근로시간을 준수하면서 최저임금을 맞추면 대기업 수준의 임금을 지급해야하는데, 반대로 매출은 절반 가까이 줄어든 상황이다보니 인건비 부담이 너무 커져버렸다"고 말했다. 차 이사장은 "동네슈퍼의 경우 직원 1인당 평균 320만 원 월급을 지급하고 있다. 숙련도에 따라 450~500만 원을 받아가는 직원도 있다"며 "현재도 적지 않은 금액인데, 최저임금과 근로시간 단축까지 감안하면 30% 증액 지급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편의점과 슈퍼마켓 점주들은 이날 울산지방경찰청을 방문해 정부에 최저임금 등 정책 조정을 건의해달라고 호소했다. 울산시수퍼마켓협동조합은 황운하 지방청장을 만난 자리에서 △최저임금 인상폭 하향 조정 △최저임금 위원회에 소상공인 대변인 참석권 부여△소득세 감면 △카드수수료를 현행 최저 2.5%에서 1.5%로 하향 평준화해 줄 것 △중소기업벤처기업부와 울산시에 소상공인지원부서 신설 등을 요구했다.

# 동구 홈플러스 매각 등 대형마트도 흔들
울산에는 수퍼마켓 1,200여 곳, 편의점 1,500여 곳 등 2,700여 곳의 소매유통업체가 운영되고 있다. 사정이 어려운 건 대형마트도 마찬가지다. 울산지역 대형마트의 3분기 경기전망지수(88)는 지난분기(79)보다 소폭 상승했지만 여전히 100을 한참 밑돌았다.

특히 동구의 경우 조선업의 장기침체와 맞물리며 홈플러스가 매각되는 등 공룡업계도 흔들리고 있다. 홈플러스 울산 동구점은 최근 부동산투자전문펀트인 '대한제21호위탁관리부동산투자회사'에 매각됐다.(본보 7월17일 8면 보도) '대한제21호'는 지난달 말 이 점포를 1,475억 원에 인수했다. 취득세와 중개수수료 등 이번 거래에 소요된 비용은 108억 원이다.

홈플러스 동구점 관계자는 "원래 임대해 사용하던 점포였고, 이번 조치는 쉽게 말해 건물주가 바뀐 형태"며 "영업은 그대로 진행된다"고 말했다. 대형마트 매각 바람에 관련업계 종사자들은 고용 불안에 시달리고 있다. 홈플러스 동구점 관계자는 "타 지역의 경우 투자회사가 매장을 사들인 이후 이를 되파는 과정에서 용도를 바꿔버리는 바람에 직원들이 원거리로 분산배치되는 등 혼선이 빚어직 것을 본 직원들 입장에서는 많이 불안하다"고 말했다.

울산 유통업계의 과포화에 따른 문제가 경기침체에 따라 표면화되고 있고, 이것이 정책적 변화와 맞물리면서 한동안 구조정이 이어질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울산중소상인살리기네트워크 이승진 사무국장은 "20년 전 편의점이 들어서기 시작하고 대형마트가 줄줄이 입성하면서 울산의 유통업계는 수년 전 이미 과포화 상태에 이르렀다"며 "슈퍼의 경우 자본력이 있는 개인사업자가 체인형 마켓을 늘려왔고, 마트도 건물을 팔아 임대하는 방식으로 공급을 이어왔다. 이 과정에서 자본력이 상대적으로 약한 영세업자가 위기에 몰렸고, 유통업자가 아닌 투자자에게 팔린 대형마트가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상태에 놓인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사무국장은 "여기에 최저임금 등 정책적 여파가 기폭제가 되면서 경영애로가 심화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울산상의는 지역 중소상인들과 종사자들을 위한 정책적인 뒷받침이 요구된다는 입장이다. 울산상의 관계자는 "고용안정을 통한 내수회복과 규제 완화를 통한 지역경제 활성화 방안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하주화기자 usj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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