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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철호 호가 출범하면서 울산의 정체성 찾기가 한창이다. 반구대암각화의 바위그림에서 회화의 원형을 찾는 송 시장은 시립미술관의 세팅을 새롭게 구상중인 상황이다. 울산의 문화적 원형을 어디에서 찾을 것인가는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다. 지금 울산의 시화는 장미, 시목은 대나무, 시조는 백로로 지정돼 있다. 한 도시의 대표성을 띤 새와 나무는 그 도시의 정체성과 직결된다. 대나무는 울산 하면 떠오르는 십리대숲과 연결되고 백로는 푸르디푸른 댓잎위에 한 살이를 엮은 하얀 순백의 생명체로 연결된다. 여기서 주목할 부분이 바로 백로다. 울산은 백로의 최대 서식지를 가진 곳이다. 순백의 상징이자 선비의 또다른 상징인 백로는 우리민족이 가장 좋아하던 새였다. 하지만 백로는 우리나라에만 8개 지역의 집단서식지가 확인되고 전 세계적으로 분포도가 광활한 새이기도 하다. 특히 울산의 경우 백로가 오랜기간 서식지로 자리해 왔지만 지역색과 특징을 보여줄 만한 연결고리는 드물다는 문제가 있다. 일반적으로 울산과 새를 연결하면서 백로보다는 학을 떠올리는 이유도 아마 연결고리가 부족하기 때문일 듯하다.

울산과 학은 여러모로 연결성이 많다. 지난해 대곡박물관에서 바로 울산과 학의 연결성을 제대로 보여주는 기획전시가 열렸다. 무학산과 학성, 학등, 비학, 학소대, 학천 등 '학'(鶴)자가 들어간 지명부터 조선시대 울산도호부 관아 동헌의 이름까지 학은 울산 곳곳에 걸려 있었다.  동헌 정문은 가학루였고 객사는 학성관이었다. 신라 말과 고려 초 울산은 각각 '신학성'과 '학성'이라는 별호로 불리기도 했다. 1933년 발간된 <울산군향토지>에는 당시 범서면과 청량면 일대에 학이 날아온 것으로 기록돼 있다. 대곡박물관의 전시회 이름은 '학성, 학이 날던 고을 울산'이었다.

울산에 살면서 자주 떠올리는 상상은 역사시대 이전에 펼쳐졌던 이 지역의 신비로운 모습들이었다. 자료가 없으니 증명할 길은 그다지 많지 않지만 살아보니 곳곳에서 울산의 원형을 발견하게 된다. 눈을 감으면 올여름 극장가에 다시 돌아온 쥬라기 시리즈보다 더 리얼한 공룡시대의 울산부터 반구대암각화를 새긴 선사인들과 고래가 뒤엉켜 부서지는 거대한 포말이 스크린처럼 펼쳐진다. 어디 그뿐인가. 선사문화 1번지인 대곡천이 큰 물결을 이루고 넘실대는 동해가 영겁의 기운을 밀어주고 당기는 불멸의 땅이 그림처럼 펼쳐지는 곳이 울산이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울산은 동쪽 무룡산부터 서쪽 문수산까지 한반도의 광활한 산자락이 동해로 뻗어가는 종착지다. 그 산세에 굽이친 다섯자락의 강이 동해를 향해 내달리는 모습은 가히 비경이다.

경치의 문제가 아니라 생태학적으로 울산은 원시시대부터 온갖 식생의 보고가 될 자산을 갖춘 드문 지역이다. 그 흔적이 공룡발자국과 고래유적, 학과 관련한 전설로 남아 이 땅이 예사로운 곳이 아니라고 웅변하고 있다. 실제로 울산은 오래전부터 학이라는 신성시된 새의 영역이었다. 아마도 오래전 울산은 태화강, 회야강, 외황강이 동해로 흘러가며 늪지가 발달해 시베리아에서 날아온 학(鶴)이 삶의 터전을 잡았는지 모를 일이다. 문제는 그 많던 학이 모두 사라졌다는 점이다. 물론 오랜 학 문화는 여전히 남아 있지만 온전한 우리 학의 모습은 완전히 사라졌다. 연어가 돌아오고 조개섬 일대에 바지락이 살아나고 있지만 학은 여전히 무소식이다. 그런데 새롭게 출범한 송철호 호가 울산의 정체성을 부각해 보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니 참으로 반가운 소식이다.

이미 국내에서는 경북대 조류생태환경연구소가 학 복원에 앞장서고 있다. 경북대 조류생태환경연구소는 오래전 일본 오카야마(岡山)현에서 학 2마리를 기증받아 북유럽쪽 학과 번식에 성공해 40여 마리의 학을 복원한 곳이다. 오카야마는 학을 관광브랜드로 만든 곳이다. 울산지역 기초단체와 경북대는 이미 학의 복원에 대한 공감대 형성도 마친 상황이다. 문제는 왜 울산에서 학을 복원해야 하는가에 있다.

울산은 역사적으로 학이 집단 서식하는 곳이었으나 산업단지 개발로 학이 완전히 사라졌다. 사라졌으니 복원해야 한다는 이야기는 근거가 부족하다. 문제는 미래를 위한 투자다. 과거의 흔적을 미래의 먹거리로 만들어가려는 작업이 투자의 근거가 된다. 세계의 수많은 도시가 미래 먹거리를 과거의 문화에서 찾고 있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울산의 학은 과거이기도 하지만 현재진행형일 수도 있다. '천신이 금신상을 입에 문 쌍학을 타고 계변성에 내려 왔다'는 계변천신 설화는 울산의 역사시대를 여는 고리다. 태화강부터 동천강, 여천천, 외황강, 회야강이 만들어 놓은 광활한 늪지대가 학의 놀이터였고 태화루와 돋질산, 학성 등은 울산 사람들이 학과 조우하던 조망포인트였다.

대한민국 근대화의 기수로 과거의 역사와 생태 환경을 헌납한 울산은 이제 과거를 복원해야하는 숙명과 마주하고 있다. 그 작업의 중심에 학의 복원이 들어간다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학은 한민족의 상징이자 오랜 문화적 코드이기도 했다. 울산에 학춤이 남아 있고 지명과 학교명이 남아 있는 것이 학이다. 무엇보다 울산을 대표하는 학춤이 살아있고 그 전승의 문화가 오늘도 열두폭 순백의 저고리를 펼쳐 하늘 한자락 휘감는 곳이 바로 울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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