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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울산에서는 연일 찜통더위를 씻어줄 밝은 소식이 날아들었다. 현대자동차 노사가 집중교섭 마지막 날인 20일 극적으로 잠정합의안을 도출해 여름휴가 전 타결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소식이다.

현대차 노사는 이날 울산공장 아반떼룸에서 21차 본교섭에서 올해 임금 및 단체협상 잠정합의안을 이끌어냈다. 잠정합의안에는 기본급 4만5,000원 인상(호봉승급분 포함), 성과급 및 격려금 250% + 280만원,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한 전통시장 상품권 20만원 지급 등이 포함됐다. 올해 교섭의 최대 쟁점이던 완전한 주간연속2교대제 시행방식도 합의했다.

노사는 하루 8시간 근무 기준에서 1조(오전 6시 45분∼오후 3시 30분·식사시간 40분 포함) 근무자가 5분, 2조(오후 3시 30분∼0시 30분·식사시간 40분 포함) 근무자가 20분 더 일해서 발생한 총 25분의 연장근무를 없애면서 임금 보전과 생산물량 유지 효과를 내는 방안을 논의해왔다. 노사는 내년 1월 7일부터 임금을 보전하면서 2조 심야근로를 20분 단축해 0시 10분에 일을 마치기로 하는 반면 근무시간 단축으로 인한 생산물량 감소분을 만회하기 위해 라인별 시간당 생산 대수(UPH)를 0.5대 늘리기로 했다. 노사는 사회양극화 해소를 위해서는 부품 협력사에 500억원 규모의 상생협력기금을 지원하기로 했다.

이 밖에 '라인별·차종별 물량 불균형 해소방안'과 '비가동 요인 최소화 방안'도 마련해 생산현장에서의 노사간 소모적 마찰을 줄이는데 공동 노력키로 하는 대타협을 이뤄냈다. 올해 임금협상 기간 모두 2차례 부분 파업으로 1만1,487대(2,502억원 상당) 생산차질을 빚은 것으로 회사 측은 추산했다. 이는 지난 2011년 무파업 이후 최소 규모다. 이번 잠정합의안은 5월 3일 노사 상견례 이후 두 달여 만에 나온 것이다. 올해 잠정합의안이 비교적 빠르게 도출된 것은 미국의 관세폭탄, 글로벌 판매 실적 부진, 정부의 자동차 개별소비세 인하 등 대내외 악화된 여건의 압박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문제는 이같은 잠정합의가 조합원들의 총의로 모아져 노사상생의 원동력이 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현대차 노조가 올해도 파업의 깃발을 들었을 때 현대차는 물론 울산시민 모두에게는  충격이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25% 자동차 관세폭탄 예고로 전 세계 자동차 업계가 비상이 걸린 상황에서 파업까지 나선다면 현대차는 중대한 위기에 직면할 것이라는 걱정 때문이었다. 내수 부진에다 수출이 타격을 받아 지금도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파업까지 계속된다면 그 피해는 역대급이 될 가능성이 컸다.

울산시민들이 현대차 노사의 협상과 파업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는 것은 현대차 자체의 피해도 피해지만 지역경제, 나아가 국가경제에 미치는 악영향이 크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의 자동차산업의 사정을 돌아보면 파업을 할 만한 상황이 못 된다는 건 누구나 알 수 있는 일이다. 당장 미국의 '통상전쟁' 압박 때문에 우리 자동차업계는 바람 앞의 등불신세다. 트럼프 행정부는 미국에 들어오는 외국산 자동차에 대해 최고 25%의 추가 관세를 부과할 방침이다. 11월 미국 중간 선거를 앞둔 트럼프 대통령은 상무부를 더 닦달할 게 뻔하다. 추가 관세가 공식 발효되면 현대차와 기아차의 대미 수출은 치명적 타격이 불가피하다. 한국차는 연간 85만대 가량 미국에 수출되는 데 그 대부분이 현대 기아차다. 이렇게 되면 수출을 아예 포기하거나 미국에 공장을 증설하는 길 밖에 없다. 그만큼 국내 일자리는 줄어들게 된다.

그런 상황에서 현대차 노조가 잠정합의를 이끌어 낸 것은 진정한 고민의 결과라 생각한다. 이제 현대차 노조원 모두는 냉정한 눈으로 현실을 직시해야 할 시점이다. 얼마전에 한국GM 군산공장이 결국 폐쇄돼 수천명의 근로자가 길거리에 나앉은 것을 똑똑히 보았을 것이다. 현대차라고 이런 사태에서 예외일 수는 없다. 평균 연봉이 1억원이면 임금근로자 상위 10%에 해당한다. 그러면서 파업을 일삼는 노조를 고운 눈길을 보낼 국민은 없다. 지금 울산은 말 그대로 장기 경기 침체에 빠졌다. '전국 최고 부자 도시'라는 명성도 잃었다. 실업자 수와 실업률 역시 악화하는 추세다. 경기 침체로 인구 유출도 계속되고 있다. 많은 이들은 울산의 장기침체 국면은 조선·자동차 등 주력산업의 성장세 둔화를 꼽고 있다. 장치산업에 의존하다 새로운 먹거리 창출에 한발 늦어버렸다는 이야기다.

많은 경제전문가는 무엇보다 울산의 침체는 자만과 무사안일, 미래를 볼 줄 모르는 나태에서 빚어진 결과라는 보다 혹독한 진단을 한다. 그 좋은 예가 최악의 노사관계다. 미래를 위한 투자가 늦었다는 이야기를 하는 이도 있지만 아직 늦지 않았다. 이를 위해서는 노사의 의식변화와 정책의 변화, 시민의식의 대대적인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현대자동차 노조가 바로 이 어두운 울산의 그늘을 벗어던지고 미래를 향해 다시 뛰는 모습의 주역으로 거듭나 주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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