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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현대문학의 기수라 불리는 작가 아베 고보(安部公房, 1924~1993)의 대표작 중에 『모래의 여자(砂の女)』(1962)라는 소설이 있다. 
내가 이 소설과 처음 만나게 된 것은 대학교 3학년 때다. 당시는 지금처럼 일본 소설이 번역되어 쏟아져 나오는 분위기 하고는 상당히 거리가 멀었지만, 일본어를 전공하고 있어서 주로 일본 소설을 골라서 읽곤 했었다. 

우연히 고서점가에서 발견한 이 책이 내 인생을 바꾼 한 권의 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후로 아베 고보를 연구하기 위해 일본 유학을 갔다 왔고, 그리고 지금 까지도 아베 고보에 대해서 연구를 하고 있으니 말이다.

아베 고보는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특징 없이 그려내고 있다. 등장인물들은 이렇다 할 신체적 특징이나 얼굴 특징 등이 거의 나타나 있지 않다.
게다가 대부분 혼자 고립해 있거나 종교적인 색채도 없거니와 인간사회에서 누구나가 인정하는 가치에 대한 기준도 없다.  

『모래의 여자』는 내용 자체는 아주 단순하다. 
도시에 살고 있던 한 남자가 해안가로 곤충채집을 떠난 채 행방불명이 된다. 그러나 그 남자는 해안가 모래사구의 여자가 혼자 사는 한 집에 갇히게 된다. 그리고 그 집에 사는 여자와 집을 모래로부터 지키기 위해 밤마다 모래 퍼내는 일을 하면서 살게 된다. 그는 처음에는 탈출하려고 온갖 방안을 모색하지만, 결국 모두 실패로 돌아갔다. 그러다가 그 남자는 모래 사구 지역에서 물을 만들어내는 저수장치를 발견하고 새로운 희망에 차서 탈출할 생각을 하지 않고 7년 이상 살게 되었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은 '남자'와 '여자' 그리고 마을 사람들이다. 
'여자'에 대해서는 소설 제목인 『모래의 여자』에서 그 특징을 살펴보기로 한다. 

먼저 특이한 점은 '모래'와 '여자'라는 보통 그 연관성이 적은 이미지가 '~의'라는 조사에 의해 연결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 조사 '~의'의 의미는 일반적인 비유나 속성의 의미도 아니고, 장소나 소속의 의미도 아닐 것이다. '~~의'가 의미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모래'와 '여자'와의 관계라 할 수 있다. 즉 '모래의 성질을 갖고 있는 여자', '모래와 같은 여자', 또는 '모래 속에 사는 여자'라는 의미일 것이다. 

여기서 모래의 성질을 끄집어 내 보면, 모래는 절대로 쉬지 않는다는 것이다. 조용하게, 그러나 확실하게 지표를 덮고 바람 부는 대로 끊임없이 움직이는 성질을 갖고 있으며, 그 끊임없는 흐름으로 인해 어떤 생물도 받아들이지 않는다.

'여자'는 모래에 순응하면서 모래에 침묵하면서 지내며, 모래가 없으면 자신의 존재의 의미도 없다고 생각한다.
'남자'는 어느 날 해안가로 곤충채집을 하러 떠났다가 모래 사구의 깊숙한 곳에 사는 모래의 집에 갇이게 되어 아무리 탈출을 시도해도 번번이 실패하고 만다. '남자'는 이러한 자신의 모습을 냉담하게 바라보는 마을 사람들과 그곳에 머무르게 하려는 '여자'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교사이면서 곤충채집이 생의 보람이라고 느끼는 '남자'는 신종 곤충을 발견하여 그것으로 인해 자신의 이름이 곤충도감에 올라가 자신의 이름이 반영구적으로 후세에 남겨지길 원했다. 일상성에 찌는 '남자'는 일상성으로 부터 탈피하기 위해 여행을 떠나고, 곤충채집에 자신의 존재의 이유를 발견하려고 했지만, 결국 모래 사구에서도 반복되는 일상이 펼쳐진 것이다. 

'남자'는 '여자'와 살면서 모래에 대한 인식에 변화가 생긴다. 모래 속에 파묻어 둔 나무통에 물이 고이는 것을 발견하고 모래가 갖고 있는 현실적인 유효한 생산성에 놀란다. 그리고 '남자'는 이 발견을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어 한다. 물론 말 할 대상은 마을 사람들 이외에는 없다. 어느새 '남자'는 외부에서 흘러들어 온 고독한 타인이 아니며, '남자' 역시 모래 사구 지역은 증오의 대상도 아니고 서둘러 탈출할 필요가 없는 곳으로 바뀐 것이다.

작가는 유동성이 강조된 모래 사구에 감금이라는 극한 상황을 설정해 놓고, 그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남자'와 '여자'를 그렸다. 어쩌면 끊임없이 바쁘게 흘러가 버리는 현대사회를 모래 사구에 빗대어 그렸는지도 모른다. 그 속에서 이름 없이 불려지는 '남자'와 '여자'는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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