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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재일교포 작가 이양지(李良枝, 1955~1992)의 소설 『유희(由熙)』의 주인공 '유희'를 만나보고자 한다. 
이 작품은 1989년 일본에서 가장 권위 있는 문예상인 아쿠타가와(芥川)상을 수상한 작품으로 작가 이양지를 작가의 반열에 오르게 했다. 

나는 이 작품을 그 당시 나오자마자 사서 읽었다. 일본 유학을 앞둔 시기여서 아쿠타가와 수상작을 기다리기라도 한 듯이 사서 읽었다. 물론 이양지라는 작가를 알게 된 것도 이때부터였다. 
뒷 표지에 실린 작가 사진을 보고 상당한 미모의 작가라고 생각한 기억도 생생하다. 
작가 이양지는 재일교포 2세로 일본에서 출생했다. 1980년에 처음으로 한국에 왔다가 2년 뒤에는 서울대학교 국문학과에 입학을 한다. 그러나 바로 휴학을 하고 일본으로 돌아가 창작활동을 하다가 1984년에 복학을 하고 1988년 졸업을 한다. 

그 후 이화여자대학교 무용학과 대학원에 입학해서 우리의 전통춤에 관한 연구를 했다. 그 다음해인 1989년에 『유희(由熙)』를 발표해서 일본에서 제100회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하기에 이른다. 

그 이후에는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창작활동과 한국전통춤에 관한 연구를 하다가 1992년 이 세상을 달리하고 말았다. 당시 향간에 떠돌던 사망 이유는 과로사였다. 이번에 자료를 조사해 보니 심근경색이라고 한다. 

내가 작가 이양지의 사망 소식을 접한 것은 일본 유학시절이었다. 30대 후반의 젊은 나이에 요절한 작가 이양지의 소식에 참으로 가슴아파했으며, 집필 중이던 장편소설 『돌의 소리』는 미완성인 채 유작이 되고 말았다. 내 속에 자리 잡고 있는 주인공 '유희'를 끄집어내어 오랜만에 읽어 보니 그 감상이 남달랐다. 

작가가 작품 후기에 『유희(由熙)』를 집필하게 된 동기에 대해서 “나는 나 속에 있는 '유희'를 매장하고 싶었던 것이다"라고 기술하면서, '유희'를 버리고 '유희'를 뛰어넘지 못하면 작가의 몸속에 흐르는 고통으로 다가오는 한국인으로서의 피를 끊을 수도 없고, 정신적으로 자립할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그 당시에는 이것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잘 기억이 안 나지만, 지금은 너무나도 가슴 저리에 다가오면서, 내가 일주일에 한 번씩 이 글을 쓰면서 내 속에 있는 수많은 소설 속 주인공들과의 작별을 하는 의식과 일맥상통하는 것 같아 묘한 기분이 들었다.

소설 『유희(由熙)』의 주인공 유희는 S대 유학생으로 서울에서 하숙을 하게 된다. 하숙집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하숙집을 여러 번 옮기면서 유희에게 있어서 한국은 아버지의 조국의 나라가 아니라 환멸과 절망의 이미지가 강한 나라였다. 

한국 사람은 금방 화끈 달아오르고 흥분하기 쉬워서 당황할 때가 많다는 이야기, 학생들이 식당 바닥에 함부로 침을 뱉고, 쓰레기를 쓰레기통에 버리지 않고, 교과서를 빌려주면, 볼펜으로 낙서를 해 놓고 사과도 하지 않고 아무렇지도 않게 돌려주고, 외국인이라고 하면 비싼 값에 팔려고만 한다는 등의 이야기가 작품 곳곳에 나온다. 유희가 본 한국, 한국인의 모습이다. 이런 장면에서 소설 『유희(由熙)』는 다분히 작가 이양지의 자서전적인 성격이 강한 작품이라고 하겠다. 결국 유희는 한국인을 더 이상 이해하지 못해 한 학기만 더 다니면 졸업인데 자퇴서를 내고 일본으로 돌아가고 만다. 

어쩌면 이러한 유희의 결정은 많은 재일 교포들이 겪고 있는 갈등일지도 모른다. 유희가 한밤중에 소주를 마시고 울면서 “저는 위선자입니다. 저는 거짓말장이입니다. 우리나라(한국)를 사랑 할 수 없습니다"라고 종이가 찢어지도록 펜으로 눌러쓴 고뇌야말로 작가의 내면의 울분이었는지도 모른다. 

작가 이양지의 죽음에 다시 한 번 애도를 표하며, 그녀의 다른 작품도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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