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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 정약용 선생은 더위를 식히는 법으로 '소서팔사(消暑八事)'를 이야기했다. 더위를 물리치는 여덟 가지 일이다. 그 내용은 △소나무 숲에서 활 쏘기 △느티나무 아래서 그네타기 △대자리 위에서 바둑 두기 △연못의 연꽃 구경하기 △숲 속에서 매미소리 듣기 △비 오는 날 한시 짓기 △강변에서 투호놀이 △달 밤에 발 씻기는 옛 선비들이 더위를 식히는 대표적인 방법이었다. 시원한 계곡물에 발 담그고, 청량한 산바람을 맞으며 유유자적(悠悠自適) 풍류를 즐기는 것, 우리네 선비들의 피서법이었다. 요즘에야 환경이 바뀌어 에어컨이 없으면 독서와 풍류도 남의 일이지만 말이다.

지난달 11일 울산지역에 발효된 폭염특보가 가을의 시작을 알리는 입추(立秋)에도 기세가 꺾일 줄 모르고 계속되고 있다. 폭염이 지속되면서 햇살이 뜨거운 한낮, 해수욕장이나 계곡에는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고, 더위를 피해 내 집 가까운 곳에서 힐링을 즐기는 사람들로 피서 풍경이 바뀌고 있다. 여름 폭염이 피서철 분위기마저 바꾸고 있는 것이다.

최근 떠오르고 있는 피서 트랜드 중 하나가 '북캉스'다. 책(book)과 바캉스(bacance)가 합쳐진 신조어 '북캉스'는 옛 선비들의 지혜로운 피서법을 차용했다고 할 수 있다. 북구지역 구립도서관 7곳에서는 지난 7일부터 여름을 맞아 다양한 북캉스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요즘 구립도서관은 감성피서, 알뜰피서를 즐기려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1인용 작은 텐트가 도서관 열람실 한 켠을 차지했다. 아이들이 텐트를 하나씩 차지하고 앉아 책 읽기 삼매경에 빠졌다. 도서관 안 텐트는 시원한 물 흐르는 계곡 옆이 부럽지 않다. 저녁이면 도서관 프로그램실은 영화관으로, 강연장으로 변신한다. 낮 시간에는 아이들에게 무서운 그림책도 읽어주고, 도서관 곳곳에서 그림책 원화 전시도 만날 수 있다.

몇 해 전 까지만 해도 북구지역 도서관에서는 방학을 맞은 아이들에게 도서관에서 하룻밤 보내기, 여름방학 독서교실 등의 프로그램을 운영했는데 올해 처음으로 여름 특화프로그램을 계획해 주민들을 맞고 있다. 보통 도서관 독서문화 프로그램은 유아와 어린이, 성인 등 계층별로 운영하는 시간대가 달라 남녀노소가 한 자리에 모여 있는 풍경을 볼 수 없지만 최근에는 어느 도서관을 가더라도 가족과 함께 하는 모습을 쉽게 접할 수 있다. 도서관이 가장 인기 좋은 피서지임은 어느 누구도 부인하지 못한다.

기후 변화로 매년 무덥고 긴 여름이 지속될 것 같다. 주민 삶의 질을 한 단계 높이고, 고단한 일상의 쉼표가 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내실 있게 준비하는 것도 도서관 운영 담당자의 역할일 것이다. 우물을 파듯, 탑을 쌓듯 꾸준히 도서관에서 책과 함께 한다면 책 읽는 습관이 몸에 배어 스스로도 깜짝 놀랄 정도의 대단한 힘이 생겨날 것이다. 무작정 더위를 피한 단순한 도서관으로의 발걸음이 아니라, 부모가 자녀들이 보는 앞에서 책 한 권을 읽음으로써 자녀의 미래까지 생각하는 시간을 가져 보기를 바란다.

이번 주말에는 시원한 도서관으로 '북캉스'를 떠나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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