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내일은 광복 73주년을 맞는 광복절이다. 전국적으로 각종 행사가 펼쳐지고 울산에서도 다양한 광복 맞이 행사가 열린다. 울산시와 각 구군도 제73주년 광복절을 맞아 태극기 달기 운동을 대대적으로 펼치고 있다. 울산시는 전 시민의 태극기 달기 동참을 이끌어 내기 위해 15일까지 지역 방송매체, SNS(울산누리), 아파트 밀집지역 동참 유도 등에 적극 나선다. 또 새마을협의회, 바르게살기운동협의회 등 민간단체를 통한 캠페인, 전단배부, 가두방송 등 동원 가능한 모든 홍보활동을 적극 추진한다. 주요 간선도로변 가로기는 12일부터 15일까지 4일간 게양하고, 14일부터 15일까지 이틀간은 시내버스 안내 방송 및 시내버스에 태극기를 부착해 운영한다.

우리가 광복을 기념하는 일은 내일의 위대한 여정을 위한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울산의 경우 광복 73주년이 또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바로 울산 출신 박상진 선생이 있기 때문이다. 울산은 박상진 선생 등 애국충절의 열의를 온몸으로 실천한 열사들의 고장이다.

울산에서 광복절은 그래서 더욱 의미가 깊다. 광복절을 맞아 우리는 새로운 각오가 필요하다. 그 첫째는 청산되지 못한 일제강점기의 상처를 제대로 치유하는 일이다. 일제는 조선인들이 자신의 역사와 전통을 왜곡되게 알도록 해 일제강점기에 교육을 받은 이 땅의 청소년들이 자국의 조상에 대해 부정적인 지식을 갖게 하려는 목적으로 전방위적인 역사왜곡을 자행했다. 그 잔재가 여전히 우리에게 남아 있다.

울산의 경우 일제 잔재에 대한 청산은 요원하다. 박상진 열사가 있고 충절의 고장이라 이야기 하지만 실제로 역사의식은 저급한 수준이다. 그 대표적인 것이 울산이 구마모토와 맺은 우호도시협약이다. 울산하면 잊을 수 없는 것이 왜장 가토 기요마사, 가등청정(加藤淸正)이다. 경상도 민요 '쾌지나 칭칭나네'가 '쾌재라, 청정이 도망간다'에서 유래했을 정도로 조일전쟁 7년간 울산을 본거지로 조선인 학살·납치 강간을 자행한 원조 사무라이다.

가토가 울산을 지배할 당시, 정확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지만 다양한 사료를 유추해보면 폭압의 정도가 추잡하고 악랄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지만 필자가 1990년 온산공단 방도리 앞 춘도를 탐방했을 때 이 섬을 지키던 노인이 전해준 이야기도 가토에 대한 구비전승 사료였다. 춘도는 조일전쟁 당시 화살촉에 사용되는 대나무가 우거진 곳으로 유명했는데 왜장 가토는 춘도의 절경에 반해 이 곳에 거처를 짓고 별장처럼 사용했다고 한다. 별장에 음주가무는 필수로 울산 각지의 어린 처자 수십명을 끌고와 춘도에서 향락의 도구로 사용했다는 이야기와 그 원혼이 춘도 동백으로 피어나 봄이 오기 전 목을 자르듯 핏빛 꽃송이를 떨어뜨린다는 이야기는 오랜 시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는다. 그 가토가 조일전쟁 하사품으로 받은 땅이 구마모토다. 어리석은 한 언론인이 울산마찌라는 친근한 이름 하나에 반해 구마모토와 울산을 친구로 만들었다는 이야기는 2010년의 일이다.

가토의 발바닥을 닦고 왜놈의 오물을 치우는 종살이로 끌려간 옛 울산인들이 무더기로 모여살던 동네이름을 가토는 울산마찌로 정해 울타리 밖으로 도망치지 못하게 했다. 그 왜장 가토의 구마모토는 사쿠라와 울산동백, 그리고 끌려간 울산 사람들이 공존하는 묘한 공간이다. 세월이 흘러 울산 대표단이 구마모토에 가서 공연도 하고 구마모토 일인들이 울산에서 춤을 추고 노래를 불렀다. 벌써 몇년째 이어지는 교류다. 몇해전 처용문화제에서는 개막행사에 오프닝행사까지 구마모토대표단에 할애하려다 항의를 받기도 했다. 

무엇이 잘못됐고 어디서부터 고쳐야 하는지 아무런 개념이 없다. 과거는 지나간 일이 뿐인데 뭘 그리 비판적으로 보느냐고 이야기하는 이도 있다. 과연 그럴까. 지나간 일일 뿐인 과거를 갖고 한치도 양보를 하지 않는 쪽은 일본이다. 가슴을 울리는 반성은커녕 인정조차 하지 않는 그들 앞에서 스스로 해맑은 웃음으로 악수를 청하는 것이 울산  이었다면 그 웃음의 권한은 누구에게 받은 것인지 묻고 싶다. 이 문제는 추진과정부터 책임소재까지 분명히 따질  필요가 있다. 잘못된 과거는 지금이라도 고쳐야 마땅하다.

이 뿐만이 아니다. 아직도 일제 손으로 조작된 우리의 역사가 2차 세계대전 이후 유네스코의 텍스트가 됐고, 날조된 고대사가 고스란히 세계인들의 동북아 교과서가 되어 오늘까지 암울한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는 사실이다. 뿐만 아니라 정확한 수도 파악되지 않는 위안부 희생자나 강제징용 희생자들의 문제는 여전히 용서되지 못한 역사로 남아 있다.

이번 광복 73주년은 그래서 우리에게 더 많은 책임을 요구한다. 여전히 과거사는 한일관계에 발목을 잡고 있고 일본의 정치지도자들은 진정성을 담은 사과에 관심이 없다. 이럴 때일수록 스스로 당당하게 일본 제국주의 망령과 싸워나가야 한다는 결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저작권자 © 울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